유니클로 그레이 케이블 니트팬츠
출산 전까지는 놈코어룩이 좋았다. 풍덩해도 똑 떨어지는 맛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웨딩드레스 입고 애를 키운 것도 아닌데, 놈코어마저 현재의 추레함을 상당히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무심하지만 한 끗이 있을 수 없다. 모든 옷에 정말 무심해져야 한다. 딸은 조리원 퇴소 이튿날 내 가슴에 응가를 했다. 몸 상태도 나락을 가고 옷 상태도 나락을 가고. 그때 산 바지가 이 유니클로 그레이 꽈배기(케이블) 니트 팬츠다.
그나마 집에서 가까웠다. 신체 사이즈부터 생활패턴까지 다 뒤집힌 사람에게 뭘 사실 건지 친절하게 물어보며 혼란을 더하지 않는 매장이기도 했다. 입어 보고 사야만 했다. 이제 어떤 옷이 맞을지 나도 몰랐으니까. 나락을 갔다면 락스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글램 록이나 비주얼 록 말고 그런지 록.
이 바지는 아이가 신생아이던 시절부터 거의 한 몸으로 살아왔다. 딸 백일 케이크를 놓고 세 가족이 사진을 찍을 때도, 친정아빠 칠순 가족모임에도 이 바지를 입었다. 니트지만 입어도 속옷 라인이 부각되지 않으면서 의도한 척 몸선을 따라 여유 있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때는 이 정도가 나름 꾸안꾸 스타일이라며 꾸민 옷이었다. 여기에 항상 매치하던 니트 스웨터 2종까지 삼각편대로 겨울을 났다. 얼마나 정신없이 살았는지 알 만하다.
수도 없이 아이를 안아 올리며 생긴 마찰, 침과 분유 얼룩을 지우느라 사정없이 돌아간 세탁기의 회전력이 이 바지의 직조를 영원히 재편했다.
처음 샀을 때의 단정하고 톡톡했던 케이블 조직은 이미 사라져 시스루 니트와의 경계에 걸쳐 있다. 서 있는데도 곧 무릎을 꿇을 것처럼 융기해 있고, 허벅지와 종아리 안쪽에는 세월의 마찰이 빚어낸 보풀이 미샤 앤 퍼프의 팝콘니트처럼 작렬해 있다.
하지만 그냥 내가 커트 코베인이다 생각하고 입는다. '생존과 시간'만이 만든 텍스처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 바지의 노고를 덜어 주려고 14온스짜리 새 조거 팬츠를 한 장 주문했다. 그러니까 2026 FW 꾸안꾸 놀이터룩 되겠다. 그렇다고 이 너덜너덜한 니트 팬츠와 헤어질 마음은 아직이다. 락 페스티벌 아직 안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