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받는 사람에서 의심하는 사람으로
나만의 보금자리에 정착한 후 ‘잘 살아야만 한다’고 스스로 부여한 강박 때문이었을까, 스쳐 지나가며 바라본 이웃들의 풍경이 마냥 좋게만 보였었다. 그런데 몇몇 불안이 감도는 사건들이 일어났다.
사건 하나.
다음 날 가족 집들이를 앞두고 청소기라도 미리 돌려놓자 싶었다. 9시 전에 끝내기 위해 퇴근길 걸음을 재촉했다. 드디어 8시 40분 청소를 마치고 한숨 쉬고 있을 무렵, 갑자기 안내방송이 울렸다. “아래층 세대를 위해 배려해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전형적인 층간소음 안내멘트였다. ‘조용한 줄 알았는데 여기도 비슷하네’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사건 둘.
며칠 후 아침, 지하철 첫 차를 타기 위해 조급한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뭔가에 가로막힌 느낌이 들었다. 힘을 줘서 빠져나오니, 웬걸 자전거 한 대가 떡 하니 문을 막고 있었다. ‘이 자전거가 왜 여기에 있지? 옆집 분이 긴급히 두고 가셨나, 그래도 경우가 없는데...’ 하고 여러 생각이 튀어나왔다. 고민으로 지체할 시간이 없었으므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지하철 역을 향해 뛰었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본가에도 들렀다가 이틀 뒤 밤에 다시 돌아왔는데, 당연히 사라져 있겠지 싶었던 자전거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집 문 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아무도 손댄 흔적이 없어 보였다. 아득해졌다. 연고도 없는 자전거가 내 삶에 불시착한 거였다.
경비 아저씨께 말씀드릴까 여러 번 고민했는데 기회가 없었다. 며칠이 지난 뒤 분리수거를 하는데 경비 아저씨가 계셨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조심스레 자전거 이야기를 꺼내니, 아저씨의 눈이 커지셨다. 내게 “몇 호세요?”라고 물으셨다. 말씀드리니 눈이 더욱 커지셨다. 지난번 층간소음 방송이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하셨다. 나야말로 놀랐다. 억울했다. 그리고 화도 났다. 나는 고작 청소기를 돌렸을 뿐인데, 그것도 9시 전에 돌리려고 엄청 뛰어와서. “그럼 온라인 게임인이 언제 청소기를 돌리나요?”라고 되묻고 싶었다.
경비 아저씨의 다음 말은 더 놀라웠다. 나와 같은 층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그 자전거가 내 거라고 오했했고 이미 아저씨께 한두 마디씩을 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어떤 분은 나를 단기 세입자로 오인하고, 내가 얼마나 살 예정인지를 아저씨께 물으셨다고 했다. 머리가 아득해졌다. 그리고 내가 세입자라고 해도 남이 언제까지 사는지를 왜 물어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생각보다 주민들이 말이 많은 단지라는 사실을 퍼뜩 깨달았다. 그 후 집에서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예민하게 신경썼다. 아늑했던 집이 갑자기 사막처럼 답답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건 셋.
이 일이 있고난 후 신문이 사라졌다. 이사 온 후 동료와 올해는 지식을 쌓아보자며 신문을 구독했다. 그런데 주중에 새벽 6시 전이면 놓여 있던 신문이 7시가 넘어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몰라 제일 앞 집을 쳐다보니 안 보이던 신문이 보였다. 순간 내 뇌 회로는 ‘이웃들과 불화를 일으켜 누가 나를 곤란에 처하게 하려고 벌인 일이다’라는 생각까지 가동시켰다. 어느 신문사의 신문인지 확인할까 싶었지만 말이 많은 곳이니 그런 행동조차 삼가자고 결심했다. 불안하고 긴장한 마음을 잠재우고 출근했다. 오후에 신문 회사에 전화를 걸었고, 내일 아침에 전날 신문까지 가져다주시겠다고 했다. 그래서 안심했다.
다음 날이 되었고 가뿐한 마음으로 문 앞을 확인했다. 그런데 신문은 없었다. 짐짓 괜찮은 척 했으나 마음엔 소용돌이가 일었고, 내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빠르게 해결하자고 굳게 다짐했다. 아침 9시가 지나서 신문사에 전화를 걸었다. 전날도 연락했으니 전화를 받으시는 분은 내 상황을 기억하고 계셨다. 내 상황 때문에 배송한 누군가가 괜히 질바카라을 받는 건 아닐까 싶었고, 나는 “배송한 분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손을 타는 것 같기도 하다”라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해당 지부에 문의하신다고 하셨고, 이윽고 낯선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긴장하며 전화를 받았다. 그분은 죄송하다고 하시며, 돌리시는 분이 며칠 전 상을 당하셨는데, 내 명단이 누락이 되었다고 괜찮으시면 오후에 이전의 신문들까지 전부 가져다드리겠다고 하셨다.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었고 오후에 누군가 문을 두드리셨다. 걸쇠를 하고 열어드렸다. 작은 틈 사이로 편안한 차림의 중년 남성분이 조용히 신문을 건네주셨다.
그러자 며칠 동안 크게 증폭되어 있던 내 의심이 눈 녹듯이 사라졌고, 이웃들을 향한 오해의 마음도 증발되었다. 자전거 때문에 당연히 통행에 불편하셨을 테고, 앞으로 청소기는 늦어도 8시 전까지 돌리자라고 결론을 내렸다. 다시 집에 환한 불이 켜진 것 같았다.
사건 넷.
이런 사건의 소용돌이에 있었을 때, 선배가 운영해 2주에 한 번씩 참석하던 독서모임 공지가 올라오지 않아, 기다리다가 선배에게 연락드렸다. 몇 시간이 흐른 후 선배는 내게 조심스레 카톡을 보내셨다. “실은 모임이 있는데 나를 빼고 연락했다”라는 짧은 답장이 돌아왔다. 왜 나를 제외했는지 아무런 이유도 담겨 있지 않았다. 괜찮다고 스스로를 달랬지만, 내 마음은 바로 무너져내렸다. 아무리 떠올려도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또 이렇게 누군가와 멀어지게 되는 건가? 아득하게 슬펐다. 선배와는 믿고 의지하며 평생 함께할 거라 생각했는데…. 집에 이사 온 후 처음으로 오열했다. 슬픔을 가눌 수 없었다. 마음 한편엔 ‘누군가가 나를 오해하는 상황은 언제나 충분히 일어날 수 있고, 굳이 해명이란 걸 하지 말자. 이미 상대는 나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는 데서 신뢰가 깨졌으니까’라는 생각을 담담히 이어갔다. “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하고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답변을 보냈다.
그러자 선배에게서 답변이 왔다. “뻥이야”라고. 최근에 준비하는 강의 때문에 바빠서 하지 못하셨다고 했다. 선배는 알까, 선배의 작은 장난에 내 마음은 지옥과 천국을 오고갔다는 걸.
확증 편향의 기원
그 시작은 초등학교 1학년 때쯤이었던 거 같다. 선생님께서 잠시 자리를 비우셨을 때, 어느 친구가 떠드는 사람을 칠판에 적는 역할을 맡았었고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다. 분명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그 이후 언제나 오해받을 수 있다는 감각이 몸 한편에 붙어 있었다. 언제든 다시 촉발할 수 있다는 긴장 상태로.
작년에 친한 동료와 결별했던 일에도 분명 이런 마음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나는 이해받지 못하니, 상대의 시선을 향해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하지만 그 사건들을 통과하며 다짐했다. 의심받는다고 느껴질 때일수록 앞으로는 그래도 설명해보겠다고. 오래 곁에 눌어붙어 있던 확증편향의 트라우마와 싸워보겠다고. 의심받는 사람이 될지언정, 의심하는 사람이 되지는 말자고. 오래 묵혀 있던 마음의 매듭이 조금씩 풀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