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아시아가 말하는 바이럴에 현혹된 브랜드가 놓치는 '진짜 유통'의 본질
서울의 한 호텔 세미나실, 해외 진출이라는 일확천금의 꿈을 품은 100여 명의 뷰티 브랜드 대표들로 장내가 가득 찼다. 하지만 무대 중앙에 들어선 예스아시아(YesAsia) 연사는 마이크를 잡자마자 덕담 대신 싸늘한 독설부터 던졌다. 오늘 발표할 협력사 성공 사례는 걸러 들으라며 들뜬 열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성과를 제시하면서도 타사의 공식을 과신하지 말라고 주문한 이 장면은, K-뷰티 업계에 팽배한 조급함과 거품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사실 예스아시아를 발판 삼아 해외 유통망을 개척하고 시딩에 성공한 주위 뷰티 브랜드들의 사례를 이미 접했던 터라, 연사의 말을 단순히 과장으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연단 위에서 나온 직설적인 발언들은 결코 허세가 아니었다. 해외 유통의 최전선을 직접 경험한 사람만이 던질 수 있는 현실적이고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19세기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시절, 정작 부를 얻은 것은 광부가 아니라 청바지와 삽을 팔던 상인들이었다. 틱톡 바이럴 하나로 해외 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한 지금, 무대 뒤에서 실질적인 공급망을 설계하는 이들은 업계의 얕은 상술과 한계를 냉정하게 짚어냈다.
글로벌 시장을 재편하는 중심에는 예스아시아라는 거대한 모회사가 자리 잡고 있다. 예스아시아는 글로벌 소비자가 아시안 뷰티를 처음 접하는 B2C 플랫폼 '예스스타일', 그리고 잠재력 있는 브랜드의 B2B 리테일을 연결하는 'ABW(Asian Beauty Wholesale)'를 결합해 완결된 유통 체인을 구축한다. 웹(MAU 1,300만)과 앱(MAU 800~900만) 간 중복을 제외하고도 순수 활성 유저(Net MAU) 1,500만 명을 확보하고 있으며, 월 매출 400억~600억 원 이상을 올리는 독보적인 B2C 거점이다. 스타일코리안, 줄스, 스타일바나는 물론 올리브영 글로벌조차 예스스타일의 압도적인 트래픽과 스케일 앞에서는 상대가 되지 못한다.
ABW는 예스스타일이 축적한 B2C 트래픽과 데이터 자산을 활용해 글로벌 B2B 유통망을 수익화한다. 운영 구조는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최소 주문금액을 250달러로 낮춰 소규모 셀러가 쉽게 진입할 수 있게 한 '공식 온라인몰', 그리고 현지 주요 셀러와 벤더, 유통 체인을 직접 관리하는 '대면 영업 팀'을 이원화해 운영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구조를 바탕으로 롱테일 B2B 시장을 공략해 2024년 연 매출 약 1,000억 원을 달성한 ABW는, 2025년부터 한국 사무실과 물류창고를 본격 가동하며 성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무대 위 연사는 인기 품목만 쏙쏙 빼가는 경쟁 플랫폼들의 얄팍한 '체리피킹(Cherry-picking)' 행태를 거침없이 비판했다. 반면 예스스타일은 아마존의 실제 리뷰 수, 구글 검색량, 경쟁 플랫폼 입점 현황 등의 데이터를 정교하게 추적해 월 10개 안팎의 브랜드만 선별하는 엄격한 온보딩 절차를 거친다. 단품 사입을 거부하고 브랜드의 전체 제품(SKU)을 입점시켜 완벽한 영문 상세페이지와 콘텐츠로 변환하는 정바카라을 고수하는 이유다. 대형 브랜드조차 틱톡 전담 팀을 꾸려 도전했다가 50억 원의 마케팅 비용만 날리고 사업을 접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이와 달리 ABW와 예스스타일은 53만 명의 독점 제휴 인플루언서 네트워크와 B2B 사입 방식을 결합해 브랜드에 즉각적인 현금 흐름을 만들어준다.
글로벌 뷰티 시장의 지형을 바꾼 리딩 K-뷰티 브랜드들의 뒤편에는 언제나 ABW의 독점적 유통 인프라가 작동하고 있었다. 닥터멜락신은 2025년 틱톡샵 최고 히트 기록을 세우며 전년 대비 매출을 8~10배로 키워냈다. 언리시아(Unleashia) 역시 국내의 아기자기한 색조 공식을 탈피하고 볼드한 콘셉트로 남미와 CIS 시장을 선제 공격한 끝에, 2025년 8월 미국 얼타(ULTA)에 첫 입점한 13개 K-뷰티 브랜드 중 하나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오리엔, 휩드 같은 독점 유통 브랜드부터 닥터엘시아, 셀리맥스, 아누아, 스킨1004, 메디큐브, 그리고 신규 협업 중인 메디테라피, 모에브, 에피(Epii), 하우스오브비에 이르기까지 시장의 거대한 주역들이 모두 ABW의 유통망을 거쳐 성장했다.
하지만 이들의 성공은 결코 운이 아니었다. 매스 더마 시장을 개척한 APLB 대표는 새벽 시간에도 해외 바이어의 메시지에 직접 답하며 유통망을 집요하게 관리했다. 러시아의 한 총판 파트너는 메디필의 제품력에 매료되어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 바로 앞에 오프라인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 만큼 파격적인 도전을 단행했다. 색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초 스킨케어로 대담하게 피봇한 하우스오브허나, 론칭 6개월 전부터 예스스타일과 독점 진용을 구축한 에피(Epii)처럼, 화려한 수식어 대신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실행한 이들만이 결실을 맺었다.
진짜 성장은 제품을 론칭한 뒤 찾아오는 지루한 매출 정체기, 즉 '행잉온(Hanging-on)' 구간을 어떻게 견디느냐에 달려 있다. BTS나 젠틀몬스터가 초기 인내의 시절을 견디며 브랜드 가치를 다졌듯, 결정적인 반등은 과장된 마케팅이 아닌 축적된 제품력과 유통망이 상호작용하는 순간 일어난다. 어필리에이트 마케팅으로 300억 원의 매출을 올린 니다(Nida)의 사례처럼, 브랜드의 성장 단계에 맞춘 B2B 유통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ABW가 전 세계를 10개 권역으로 세분화해 관리하듯, 글로벌 유통 생태계는 파편화되어 있어 단일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틱톡 피드 위에서는 특정 브랜드만 보이는 듯하지만, 실제로 글로벌 시장에서 연 2~3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세라비나 라로슈포제의 진짜 영업판은 SNS가 아닌 오프라인 약국과 드럭스토어 체인에 구축되어 있다. 남미 시장 또한 본토 직진입보다 미국 내 히스패닉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시딩 효과가 이관되는 2차 시장에 가깝다. 인도는 CDSCO 인허가 장벽과 9달러 이하의 가격 제약, 티라(Tira) 플랫폼의 독점 체제 탓에 전략 없이는 진입하기 어렵다.
지정학적 변수가 큰 러시아와 CIS 지역은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을 물류 요충지로 삼아 골드애플(Gold Apple), 오존(Ozon) 같은 초대형 플랫폼에 입점 가능한 로컬 총판을 확보해야 한다. 연 8%의 완만한 성장세를 보이는 유럽 시장은 CPNP 등록이 필수적이며, 전체 소비의 30%가 약국 및 드럭스토어에서 발생하는 만큼 독일·폴란드·프랑스를 거점으로 성분과 임상 데이터 중심의 설득 전략을 펼쳐야 한다.
이때 예스스타일의 역직구 구조는 각국의 수입 규제를 우회해 빠르게 시장 반응을 끌어내는 무기가 된다. 예스스타일 베스트셀러 랭킹이 150위에서 50위권으로 올라서면 현지 벤더들이 먼저 움직이고, 상위 50위권에 진입하는 순간 대형 유통 체인 입점으로 연결되는 B2B 확장 공식이 성립한다. 예스스타일의 1,500만 유저 데이터와 ABW의 현지 영업 네트워크가 결합할 때 비로소 국가별 장벽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예스스타일의 1,500만 유저가 남긴 검색·구매 데이터는 국내 업계가 맹신해 온 유행 공식을 깨부순다. 한국 시장을 지배해 온 립틴트는 해외 상위 랭킹에서 자취를 감췄고, 그 자리를 립밤과 리퀴드 블러시 카테고리가 채우고 있다. 해외 소비자들은 단순한 브랜딩보다 시카(CICA), PDRN, 레티놀, 아젤라익산, BHA 등 성분 키워드를 직접 검색하며 효능을 검증한다. 국내에서 흔히 쓰이는 AHA 대신 BHA에 반응하고, 립틴트 대신 리퀴드 치크와 립밤을 찾는 데이터의 미세한 변화를 읽지 못하는 브랜드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유명 인플루언서나 셀럽의 이름값에 기대어 외형만 차린 브랜드들을 향한 지적도 냉정했다. 개인 팔로워를 믿고 국내식 공동구매 방식으로 브랜드를 띄우려는 시도는 글로벌 시장에서 무용지물이다. 레어 뷰티(Rare Beauty)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셀레나 고메즈의 인지도 그 자체가 아니라 슬롯적 펀드와 연계된 뚜렷한 브랜드 철학이 존재했듯, 철학이 없는 제품은 현지 소비자들에게 외면받는다.
K-뷰티의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은 과거 1%에서 최근 프랑스 뷰티와 대등한 12% 수준까지 올라섰으며, 여전히 성장 여력을 품고 있다. 판은 비약적으로 커졌지만 승자를 가리는 규칙은 훨씬 냉혹해졌다. 준비되지 않은 해외 진출은 비즈니스가 아니라 비용을 소진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슬라이드 화면이 꺼지고 명함이 오가는 중에도 현장의 살벌한 분위기는 가시지 않았다. 연단 위에서 나온 발언들은 시장의 거품을 경고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현실적인 생존 고백이었다. 바이럴에 기대어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허비할 것인가, 아니면 실질적인 유통망을 구축할 것인가. 유통의 본질을 아는 브랜드들이 다음 시장을 선점해 나가는 동안, 준비되지 않은 브랜드들에게 남겨진 시간은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