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리가 3일 만에 AI 친화도 점수를 16점에서 74점으로 올린 방법
무대에 오른 컬리 임세진 퍼포먼스마케팅팀장의 첫 일성은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었다. 쏟아지는 AI 트렌드 속에서 뒤처질까 불안하다는 고백이었다. 이어 그가 내린 결론은 명확했다. 어떤 AI 도구를 쓰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발표에서 소개된 네 가지 시도 중 세 가지는 조직 내부 시스템 구축(급상승 키워드 발굴 자동화, 멤버스 계산기, 컬리 AI 스튜디오)에 관한 내용이었다. 반면 마지막 프로젝트는 'AI가 우리 브랜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라는 외부 진단에 맞춰졌다. 현장 청중의 관심이 가장 크게 쏠린 대목 역시 이 '외부 브랜드 진단' 사례였다.
컬리의 상품 상세 페이지는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복숭아 한 상자를 다루더라도 품종과 중량, 원산지, 첫 구매 할인가는 물론 손질법과 추천 레시피까지 꼼꼼하게 담아낸다. 그런데 생성형 AI의 답변에서 컬리의 상품이 인용되거나 추천 노출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소비자의 눈에는 완벽하게 보이던 정보가 정작 AI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임세진 팀장은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시장 골목에 비유해 설명했다. AI(인공지능)라는 손님이 물건을 사러 시장을 걷고 있는데, 어떤 가게는 셔터가 내려가 있어 진입조차 불가능하고, 어떤 가게는 겨우 들어갔더니 진열대가 텅 비어 있는 채 주인에게 따로 문의하라는 메모만 달랑 붙어 있는 꼴이다. 또 어떤 가게는 사과와 복숭아, 포도가 엉켜 쌓여 있어 무엇이 얼마인지 도무지 알아볼 수 없다. 반면 품목별로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고 가격과 당도는 물론 실제 구매자들의 평가까지 한눈에 보기 쉽게 표기해 둔 가게가 있다면 AI는 당연히 마지막 가게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브랜드의 상태를 진단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모두 비용이 들지 않으며 단 몇 분이면 확인이 가능하다.
첫째, 브라우저 주소창에 자사 도메인을 입력하고 끝에 'robots.txt'를 붙여 확인해 보는 것이다. 이 파일은 인공지능 수집 로봇의 출입 허용 여부를 적어둔 일종의 통행 규칙표다. 만약 주요 AI 기업의 로봇 이름 옆에 접근 금지 설정이 되어 있다면 가게 셔터를 내린 것과 다름없다.
둘째, 아무 상품 페이지나 들어가 마우스 우클릭 후 '페이지 소스 보기'를 실행한다. 사람 눈에 보이던 상세한 설명들이 이 코드 화면 속에도 텍스트로 똑같이 남아 있어야 한다. 최신 웹사이트 중에는 화면에만 예쁘게 보여주고 실제 원본 코드에는 텍스트를 남기지 않는 방식이 많은데, 이 경우 AI 눈에는 빈 페이지로 인식된다.
셋째, 해당 소스 코드 화면에서 'LD+JSON'을 검색해 보는 것이다. 이는 상품명, 가격, 규격 등을 기계가 명확히 구분할 수 있도록 표준 이름표를 붙여둔 규격화 데이터다. 사람은 문맥을 보고 알아서 파악하지만, 기계에게는 이러한 명확한 데이터 규격표가 필수적이다.
진단 결과 컬리는 첫째와 둘째 조건은 충족했으나, 셋째인 표준 데이터 이름표가 빠져 있었다. 뛰어난 품질의 상품과 공들여 만든 상세 페이지를 갖추고도 AI 검색에서 번번이 외면받았던 원인이 드디어 밝혀진 순간이다.
데이터 이름표를 붙이는 작업을 마치자 성과는 즉각 나타났다. 6월 30일 1차 개선 작업을 끝낸 지 불과 사흘 만에, AI 친화도를 평가하는 외부 진단 도구의 점수가 16점에서 74점으로 대폭 상승했다. 7월 들어 두 차례 추가 고도화를 거치며 점수는 계속해서 기록을 경신 중이다. AI의 답변 속 컬리 브랜드 언급량과 출처 인용 비율 역시 비례하여 크게 증가했다. 현재 컬리는 이 지표들을 종합하여 사내 자체 지수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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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비유가 있다. 바로 아마존이다. 임세진 팀장은 아마존의 robots.txt를 제시하며 챗GPT, 메타, 구글, 미스트랄 등 글로벌 빅테크의 AI 수집 로봇을 전면 차단한 정바카라을 소개했다. 앞선 비유 속 ‘셔터가 내려간 가게’의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아마존의 셔터가 내려간 것은 방치나 게으름 때문이 아니다. 연간 560억 달러가 넘는 광고 비즈니스와 소비자 탐색 주도권을 지키기 위한 철저한 계산이다. 소비자가 물건을 고민하고 검색하는 모든 여정이 아마존 안에서 이뤄져야 광고 매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생성형 AI가 탐색 과정을 대신하고 최종 결과만 알려주면, 아마존이 광고를 붙일 자리는 사라진다. 아마존은 AI 답변 노출보다 플랫폼 내 광고 수익이라는 실리를 택한 것이다.
결국 두 기업의 대비는 역량 차이가 아닌 수익 구조의 차이에서 나온다. 아마존은 자사 지면의 광고로 돈을 벌고, 컬리는 상품 판매로 수익을 만든다. 잃을 것이 명확한 쪽은 문을 잠그고, 얻을 기회가 많은 쪽은 문을 열어두는 지극히 당연한 셈법이다.
국내 유통 플랫폼들 역시 자체 광고 사업을 수천억 원 규모로 확대하는 추세를 고려하면, 이는 향후 컬리에게도 던져질 질문이다. 자체 광고 수익 비중이 커진 뒤에도 지금처럼 모든 문을 열어둘 수 있을까.
여기에 기술적인 맥락 하나를 더해야 한다. 로봇 차단은 ‘전면 개방’과 ‘전면 차단’이라는 이분법에 그치지 않는다. AI 로봇은 모델 학습을 위해 대규모 데이터를 긁어가는 ‘학습용 로봇’과, 이용자의 실시간 질문에 답하기 위해 웹을 찾는 ‘검색용 로봇’으로 명확히 구별된다. 식별자가 달라 “우리 데이터를 AI 학습용으로 내주진 않되, 실시간 질문 답변 시에는 우리 브랜드를 노출하라”는 식의 정교한 제어가 가능한 구조다.
현재 이커머스가 관리해야 할 주요 수집 로봇만 12종에 달하며, 클라우드플레어에 따르면 ChatGPT 로봇은 글로벌 웹에서 가장 많이 차단당하는 동시에 가장 많이 허용되는 양극단의 위치에 서 있다. 컬리의 전면 개방은 노출 기회를 극대화하지만, 자사의 핵심 자산인 상품 데이터와 고객 리뷰를 AI 학습용으로 양도하는 결과도 동반한다. 당장은 얻는 이점이 크더라도, 로봇 제어권 자체가 훗날 강력한 협상 카드가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임세진 팀장은 진단 점수 상승에 대해 설명하면서 즉시 한 가지 중요한 단서를 덧붙였다. AEO(AI Engine Optimization) 점수가 크게 올랐다고 해서, 곧바로 생성형 AI의 실제 답변 속에 컬리가 급격히 많이 노출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브랜드 언급률과 출처 인용률이 상승세를 탄 것은 분명하지만, 그 반응 속도는 점수가 뛰어오른 속도에 비하면 느릿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가 짚어낸 차이야말로 발표 전체를 통틀어 가장 핵심적인 본질이다. 기존의 네이버나 구글 같은 검색엔진 생태계에서는 이용자들이 어떤 키워드를 검색했는지에 대한 데이터 목록을 기업이 확보할 수 있었다. 덕분에 자사 콘텐츠가 검색 결과 몇 위에 위치하는지 정확히 측정하는 일이 가능했다. 반면 생성형 AI 환경에서는 사용자들이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에 대한 원천 데이터를 그 누구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 던진 수십만 가지 질문 중 컬리가 몇 번이나 노출되었는지를 파악하려면 질문 데이터셋이 존재해야 하는데, 시작점인 목록 자체를 확인할 길이 없는 셈이다.
결국 여기서 다시 인간의 주도적인 기획이 개입하게 된다. AI 시장에서 컬리가 실제로 노출되고 싶은 질문의 범위와 목록을 직접 정의하는 작업이다. 임 팀장은 집 짓는 법을 묻는 컬리와 무관한 질문에까지 브랜드가 언급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대신 '다이어트용 점심 밀키트 추천'이나 '자취생 필수템 조합'처럼 자사의 주력 상품 카테고리와 비즈니스 방향성에 정확히 부합하는 핵심 질문들을 선별해 냈다. 그리고 이 선별된 질문 목록을 바탕으로 어제는 노출되었는데 오늘은 빠졌는지, 혹은 순위가 어떻게 변동했는지를 매일 정밀하게 추적하고 있다.
외부 브랜드 진단 사례에 이어 소개된 세 가지 내부 프로젝트 역시 같은 본질을 가리키고 있었다.
첫 번째는 ‘급상승 키워드 자동화’다. 컬리 앱 내 검색어, 판매 급증 상품, 네이버·구글의 트렌드 키워드를 AI가 매일 아침 리포트로 정리해 메신저로 보내주는 시스템이다. 실무자가 하루 종일 매달리던 데이터 수집 작업이 완벽히 자동화된 것이다.
하지만 임세진 팀장이 진정 강조한 것은 자동화 ‘이전’의 기획이었다. 수많은 데이터 중 왜 하필 이 지표들을 골랐는지, 급상승의 기준을 10개로 잡을지 1,000개로 잡을지는 AI가 결정해주지 않는다. 가령 샤인머스캣 검색량은 튀는데 구매로 이어지지 않을 때, 과거라면 실적이 부진하다며 메인 화면에서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당도’ 관련 검색어가 함께 급증한다는 맥락을 짚어내면 “구매 의사는 있지만 품질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온다. 이처럼 데이터 해석의 판(프레임워크)을 짜는 것은 오롯이 인간의 몫이다.
두 번째는 ‘멤버스 계산기’다. 마케터 단 한 명이 AI 툴의 도움을 받아 불과 2시간 만에 뚝딱 만들어낸 서비스다. 월 1,900원의 구독료를 내면 아낄 수 있는 금액을 ‘애호박 40개 분량’처럼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컬리는 효과 측정을 위해 치밀한 A/B 테스트를 거쳤다. 앱에 접속 중인 유저에게 띄웠을 때는 가입률이 올랐지만, 앱을 이탈한 유저에게 푸시 알림으로 보냈을 때는 반응이 없었다. 계산기처럼 고객의 직접 입력을 유도하는 기능은 ‘탐색 의지가 살아있는 순간’에만 통한다는 맥락을 포착한 것이다. 결국 2시간이라는 개발 ‘속도’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가설을 세우고 실험할 빈도를 획기적으로 늘려준 수단에 불과했다.
세 번째 프로젝트인 ‘컬리 AI 스튜디오’ 역시 궤를 같이한다. 45~50일씩 걸리던 개발 기간을 15일로 단축한 덕분에, 특정 디저트 트렌드(두쫀쿠)가 부상했을 때 관련 테마와 상품을 재빠르게 엮어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상세 페이지 조회수와 구매 전환율이 함께 오르고 고객 체류 시간은 2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임 팀장은 당초 목표였던 ‘신규 고객 유입과 바이럴 확산’ 측면에서는 기대에 못 미쳤다는 점을 솔직히 덧붙였다. 흔한 성공 사례 발표에서는 슬쩍 감추기 마련인 명확한 한계 지점까지 투명하게 공유한 셈이다.
임세진 팀장이 발표 마지막에 꺼낸 화두는 채용 현장 이야기였다. 현재 컬리는 채용 과정에 AI 활용 역량 평가를 두고 있는데,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들어오는 지원자는 넘쳐난다고 한다. 하지만 "왜 AI에게 이렇게 질문했는지", "수많은 대안 중 왜 이 안을 택했는지", "다음 단계엔 무엇을 시도할 것인지" 물으면 대다수가 막혀버린다. AI가 내놓은 출력물을 자신의 관점으로 흡수하지 못했고, 그 결과물에 담긴 논리가 본인의 생각이 아니라는 냉철한 진단이다.
AI가 가져다준 가치가 압도적인 ‘속도’라면, 인간이 끝내 지켜내야 할 가치는 바로 ‘기준’이다. 어떤 업무를 자동화할지, 파편화된 데이터를 어떤 프레임워크로 해석할지, AI의 답변을 받아들일지 버릴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빠른 결과가 곧바로 신뢰할 수 있는 결과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AI 생태계에서 우리 브랜드의 위치를 점검하고 개선하는 일도 같은 본질을 공유한다. 소스 코드에 LD+JSON 태그를 붙이는 작업은 단순한 기술 구현이지만, 어떤 질문 카테고리에서 노출될지 선별하는 일은 비즈니스적 결단이다. 로봇의 출입 셔터를 열지 닫을지에 대한 선택도 마찬가지다. 아마존은 독점적 광고 수익을 지키려 문을 닫았고, 컬리는 브랜드와 상품을 알리기 위해 문을 활짝 열었다. 두 기업의 결정 모두 robots.txt라는 단 한 줄의 코드로 구현되었지만, 그 방향을 결정지은 것은 기술이 아닌 ‘우리가 무엇으로 돈을 버는가’에 대한 사업 본질의 정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