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에는 일정한 양의 무질서가 반드시 필요하다"

질문이 빚어낸 혁신의 기적, 케라스타즈

by조인후

그는 미용사의 세계를 하나도 몰랐다


1948년의 어느 일요일, 프랑수아 달(François Dalle)은 프랑코빌에 위치한 외젠 슈엘러(Eugène Schueller)의 집으로 불려 갔다. 로레알의 창업자 슈엘러는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비누 회사 몽사봉(Monsavon) 경영을 계속 지휘하되, 이제 로레알 본사에도 들어오라는 지시였다. 어떻게 하라는 구체적인 지침은 없었다. 그저 자신을 가까이 두겠다는 뜻이었다.


그는 우쭐함과 동시에 몹시 난처했다. 훗날 회고록에 그는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요약한다. 미용업계를 하나도 몰랐고, 로레알이 그들에게 무엇을 파는지조차 몰랐다고.


거대한 헤어케어 제국을 일군 인물의 출발점이 다름 아닌 그의 '무지'였던 것이다.


그가 그 자리까지 온 과정은 사실 필연과 같은 우연이었다. 1918년 프랑스 파드칼레의 에스댕에서 양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달은 사실 법학도였다. 교원 자격시험(아그레가시옹)을 준비하며 법률가를 꿈꾸던 청년의 삶을 뒤흔든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패주 뒤의 짧은 포로 생활, 자유지구와 점령지구 사이를 떠돌던 몇 달의 방황 끝에 파리로 돌아왔을 때 그에게 남은 것은 실직뿐이었다.


절망의 순간에 그를 구해낸 것은 학창 시절의 인연이었다. 가톨릭 마리스트회가 운영하던 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앙드레 베탕쿠르(André Bettencourt)를 다시 만난 것이다. 훗날 프랑스 대통령이 되는 프랑수아 미테랑도 같은 학교 동창이었으니, 한 교실에서 배운 청년들이 각자 프랑스의 정치와 산업의 최전선으로 흩어진 셈이다.


베탕쿠르는 이미 로레알 창업자 슈엘러와 인연이 닿아 있었고, 8년 뒤에는 그의 딸 릴리안과 결혼해 사위가 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의 큰 역할은 1942년에 갈 곳 없는 친구 달을 슈엘러에게 소개한 것이다.


외젠 슈엘러, ⓒL'Oréal


그렇게 스물넷의 달은 파리 외곽의 작은 비누 공장 몽사봉에 수습으로 들어간다. 법률가를 꿈꾸던 청년에게 비누 제조 현장은 어울리는 자리가 아닌 듯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생애 처음으로 어딘가에 온몸으로 뛰어들고 싶다는 뜨거운 열망을 경험한다. 훗날 그는 그 갈증이 기업가로 살아가는 내내 자신을 따라다녔다고 회고했다.


법률가가 되려던 사람이 비누를 배우고, 비누를 배우던 사람이 어느 일요일 갑자기 미용을 배우게 된 셈이다.


그가 선택한 현장 적응법은 단순했다. 직접 가는 것. 당시 로레알에는 임원과 간부가 지방의 가장 작은 미용실까지 찾아가 제품을 설명하는 관행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길을 나선다(faire la route)'고 불렀다. 달은 그 문화를 몸으로 익혔고, 나중에는 이를 회사의 핵심 정신이라 부르게 된다.


길 위에서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화려한 유행 이면에 숨겨진 망가진 머리카락이었다. 브리지트 바르도가 퍼뜨린 부풀린 머리는 거친 백코밍과 다량의 헤어스프레이로 모발을 학대했고, 마릴린 먼로가 대표하던 탈색 블론드는 모발을 건조하고 부서지기 쉬운 상태로 만들었다. 미용사들은 모양을 만드는 데는 능했지만 손상된 모발을 되돌릴 수단은 없었다. 당시 집에서 쓰는 샴푸는 기름기를 걷어내는 단순 세정제였고, 화학 성분으로 표면을 매끄럽게 감싸면 고객들은 머리카락이 건강해졌다고 믿었다. 감춘 것과 고친 것을 구분하지 않아도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 시대였다.


1957년 슈엘러가 세상을 떠나고 당시 서른아홉의 달이 회장 겸 최고경영자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1964년, 그는 로레알 연구진(L'Oréal Advanced Research)을 불러 모아 시장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범주를 설계하게 했다. 그렇게 파리에서 케라스타즈(Kérastase)가 태어났다.


image.pngKérastase


이름부터가 정체성의 선언이었다. 모발의 주성분인 케라틴을 뜻하는 '케라(kéra)'와 정지·안정을 뜻하는 '스타즈(stase)'의 결합, 모발 단백질의 붕괴를 멈추고 붙들어 두겠다는 의지였다.


"시작되는 것을 붙잡을 줄 알아야 한다(Savoir saisir ce qui commence)."


이 문장은 훗날 로레알 그룹의 대표 모토가 되었다. 하지만 케라스타즈의 진짜 시작은 따로 있었다. 미용을 몰랐던 한 남자가 현장에서 고객의 모발 상태를 직시하고 파악하려 했던 시도다. 브랜드의 핵심 가치인 '진단'은 바로 그 단순한 시선에서 탄생했다.


의도적으로 무질서를 조직하라


슈엘러가 남긴 좌우명이 "만들고, 부수고, 더 잘 만든다"였다면, 달은 거기에 자기 문장을 하나 보탰다. "무질서를 조직하라." 창조에는 일정한 양의 무질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실제로 그는 문제를 단순히 관리하는 것은 해결이 아니며, 기업가 정신의 정반대라고까지 적었다.


케라스타즈가 신제품을 그냥 쏟아내지 않고 문제 하나를 집요하게 파헤쳐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73년에 출시된 '뱅 디발랑'이 그 첫 증거다. 기름진 두피와 건조한 모발 끝이 한 사람의 머리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제품으로 인정한 첫 사례였다. 1979년에는 첫 케어 마스크를 내놨고, 1984년 '뉴트리티브' 라인을 통해 건조하고 영양이 부족한 모발이라는 범주를 따로 세웠다. 세분화된 제품군은 창립과 동시에 완성된 전략이 아니라 현장 분석이 축적된 결과였다.


케라스타즈 스페시피크 제품 이미지, ⓒKérastase


오늘날의 제품 라인업은 모발 구조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접근한다.


첫째는 땅에 해당하는 두피다. 스페시피크 라인은 유익균 균형을 잡고 두피 스트레스를 줄인다. 여기에 비듬이 문제라면 생비오즈, 모발 탈락이 문제라면 제네시스로 갈라지며 두피 하나에도 세 갈래의 처방을 제시한다.


둘째는 기둥에 해당하는 모발 내부다. 레지스탕스 라인은 손상되어 속이 빈 머리카락 안쪽에 케라틴 성분을 밀어 넣어 탄력을 되찾아준다. 겉면만 임시로 덮는 대신 안을 다시 채우는 방식이다.


셋째는 외벽에 해당하는 모발 표면이다. 염색 전용 라인인 크로마 앱솔루는 시술 과정에서 손상된 큐티클을 아미노산과 진정 성분으로 다듬고 봉인한다.


원료를 조달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히알루론산과 아미노산 같은 성분을 화학 합성 대신 바이오 발효 공정으로 얻어내며, 브랜드가 쓰는 원료의 63%를 바이오 기반으로 채웠다.


이 체계는 욕실 사용법으로 연결된다. 노폐물을 씻어내는 뱅, 수분을 채우는 퐁당과 마스크, 엉킴을 막고 모발을 보호하는 리브인 케어, 표면을 정돈하는 세럼과 오일로 이어진다. 4단계로 나눈 사용법은 매일 무심코 하던 머리 감기를 내 모발 상태에 맞춘 단계별 케어로 전환시켰다.


ⓒKérastase


처방하는 사람이 사라진 자리


프랑수아 달은 1984년 경영에서 물러난 뒤 2005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퇴임 이후 케라스타즈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지만, 그 과정에서 브랜드의 핵심이었던 '미용사의 전문 진단'이 희소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지자 비인가 유통업자들이 살롱용 제품을 불법으로 빼돌려 온라인 마켓에 유통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무단 유통된 제품은 전문가의 진단 없이 소비자에게 그대로 판매되었다. 그 결과, 자신의 두피나 모발에 맞지 않는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들은 효과를 보지 못했고 브랜드의 신뢰도마저 흔들렸다. 창업자가 강조했던 '전문가의 정확한 진단'이 빠진 채 제품 용기만 유통된 것이다.


이에 로레알 전문 제품 사업부(PPD)는 엄격한 유통 통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공식 인가된 유통업체만 판매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제품 추적 코드를 부착해 무단 유통 물량을 추적·제재하며 불법 유통을 막았다.


이후 케라스타즈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공식 온라인몰과 세포라, 더글라스 같은 뷰티 편집숍으로 판매 채널을 직접 확장했다. 단순히 살롱 판매만 고집하는 대신 소비자 접점을 넓히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이에 따라 케라스타즈는 유통 방식의 기준을 바꾸었다. 주요 과제를 '어디서 파느냐'가 아니라 '누가 올바르게 진단하느냐'로 재정의한 것이다. 살롱은 이제 단순한 제품 판매처가 아니라, 전문가가 정밀한 진단을 수행하는 공간으로 역할이 명확해졌다.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전문가가 개입할 때 비로소 제품의 제 가치가 발휘된다는 창업자의 철학을 현대적 유통 환경에 맞게 재정립한 결과다.


ⓒKérastase


권위란 오류를 스스로 인정하고 고치는 것에서 온다


모든 고민을 하나의 제품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은 간편해 보이지만 효과적이지 않다. 케라스타즈가 제품 라인을 고민별로 세분화한 이유다. 하지만 라인업이 잘게 쪼개질수록 소비자에게는 혼란이 생기고, 여러 개를 팔기 위한 상술이라는 의심도 따라온다. 프랑수아 달은 제품 세분화가 가치를 가지려면 무엇보다 '정확한 진단'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정밀한 진단 없이 던지는 처방은 상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진단 도구의 역사 역시 이러한 철학에서 출발했다. 1960년대 초창기 진단기인 '케라스코프'부터 오늘날 살롱에서 쓰이는 정밀 진단 시스템 'K-스캔'에 이르기까지, 케라스타즈가 진단 기기를 고집해 온 이유는 단순한 기기술 자랑이 아니었다.


이 기기들의 진짜 가치는 프랑수아 달이 강조했던 현장 중심 철학과 '스스로 오류를 인정하는 태도'의 구현에 있다. 과거 본사 임원들이 직접 미용실을 찾아가 현장의 목소리를 듣던 '길을 나선다'는 정신이, 오늘날에는 미용사의 진단을 한층 정교하게 보완하는 진단 시스템으로 이어진 셈이다. 본사가 지침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대신, 현장 전문가가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방식이다.


달은 진정한 권위가 완벽한 성공이 아니라,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바로잡는 태도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진단 기기가 시술 전후를 투명하게 비교해 보여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제품의 효과를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처음에 내린 진단이 잘못되었을 가능성까지 고객 앞에서 솔직하게 검증하겠다는 선언이다. 스스로의 진단을 의심하고 고쳐나갈 수 있는 자만이, 비로소 고객에게 올바른 처방을 내릴 자격을 갖는다는 달의 유산이다.


달이 남긴 것은 단순한 제품 처방전이 아니었다


프랑수아 달은 친환경 생산의 거점이 된 부르고스를 끝내 보지 못했다. 그가 2005년에 세상을 떠난 뒤인 2017년에야 스페인 부르고스(Burgos) 공장이 용수를 전량 재순환하는 '워터루프(Waterloop)' 체제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image.png스페인 부르고스(Burgos) 공장, ⓒL'Oréal


케라스타즈 제품의 97%를 생산하는 이 공장은 2015년 바이오매스 발전과 태양광으로 100% 재생에너지 체제를 갖추고 탄소중립을 달성했다. 2017년부터는 설비 세척과 스팀 생산에 쓰는 물을 전량 순환시켜, 외부에서 끌어오는 물은 제품에 들어가는 양과 직원들이 마시는 양뿐이다. 2020년 한 해에만 3,200만 리터를 아꼈다.


패키징 방식에서도 기존의 관성을 벗어던졌다. 리필 파우치를 도입해 1회 사용 시 기존 병 2개를 생산할 때보다 플라스틱을 82% 줄였고, 2021년 10월부터 생산되는 모든 소매용 샴푸 용기는 캡을 제외하고 95% 소비 후 재활용(PCR) 플라스틱으로 만든다. 2023년에는 신제품의 96%가 에코디자인으로 설계됐고, 재활용 플라스틱 사용으로 버진 플라스틱 1,110톤을 절감했다. 브랜드는 2030년까지 전 제품에 그린사이언스 기술을 적용하겠다고 못 박았고, 모기업 로레알은 같은 해까지 포장재 플라스틱 전량을 재활용 또는 바이오 기반 자원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기업의 지속가능성 선언이 때로는 마케팅용 수식어로 소비되곤 한다. 하지만 케라스타즈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은 창업자의 본질과 닮아 있다. 눈앞의 현상을 임시방편으로 가리기보다,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원인을 파헤친 뒤 시스템 자체를 혁신하는 방식이다.


image.png프랑수아 달(François Dalle), ⓒL'Oréal


달이 남긴 것은 단순한 제품 처방전이 아니었다. 그는 미용 현장을 몰랐기에 끊임없이 물었고, 그 질문하는 태도를 기업의 DNA로 남겼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질문은 모발과 두피를 넘어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지구라는 대상으로 확장되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이제 질문은 우리 자신에게 향한다. 우리는 매일 아침 거울 앞에 서며 자신의 모발과 두피에 대해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 단순히 문제를 가리는 것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어떤 제품을 사용하더라도 문제의 표면만을 맴돌 뿐이다. 진정한 변화는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인식하고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1948년의 어느 일요일, 한 남자가 그렇게 위대한 여정을 시작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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