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이라는 직함의 실상: 권한의 허울과 소모품의 숙명
드라마 《서울 자가에 사는 김부장》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온라인 게임인의 초상이다. 대기업 부장이라는 직함에 취해 대형 세단을 굴리고, 조만간 임원이 되어 대형 집무실과 전담 비서의 보좌를 받으리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그에게 임원 승진은 고단한 온라인 게임 생활의 최종 보상이자, 자신이 완벽한 승자가 되었음을 증명하는 인생의 결승점이다.
실제로 많은 온라인 게임인이 김 부장과 같은 동경을 품고 매일을 버틴다. 임원이 누리는 높은 연봉과 화려한 의전, 그리고 조직의 향방을 결정하는 강력한 의사결정권은 마치 마라톤 끝에 놓인 찬란한 훈장처럼 보인다. "나도 저 자리에 오르면 마침내 회사 생활의 모든 고생을 보상받고 당당해질 것"이라는 열망은 조직을 움직이는 거대한 에너지원이 된다.
하지만 드라마 속 김 부장이 마주한 현실처럼, 그 결승선 뒤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안락한 휴식이 아닌 깎아지른 절벽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겉보기에 화려한 임원의 완장은 사실 가장 먼저 날아오는 화살을 맞아야 하는 표적판에 가깝다. 환상이 깨지는 순간, 동경의 빛은 순식간에 차가운 칼바람으로 변한다.
국내 대다수의 기업에서 임원은 '스타'가 아닌 '가장 비싼 소모품'에 가깝다. 연봉이 조금 오르고 차량이 지원될지 모르나, 그 대가로 고용의 안정성은 완전히 소멸된다. 특히 조직이 위기에 처했을 때, 임원은 해결사로 대우받기보다 가장 먼저 솎아내야 할 비용이나 바카라임의 제물로 간주된다.
최근 스타벅스 코리아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태는 임원의 비정한 생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주는 리스크가 발생하자, 회사는 사태를 수습하기도 전에 담당 임원부터 즉각 해고했다. 물론 해당 임원에게 과오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조직은 성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총알받이'로 임원을 가장 먼저 내던지는 방식을 택했다.
수십 년간 쌓아온 전문성과 헌신은 위기 앞에서 무력해지고, '임원'이라는 직함은 역설적으로 가장 쉽고 빠르게 잘라낼 수 있는 명분이 된다. 어설프게 자리를 맡았다가 준비 없이 야인으로 돌아가는 이들에게, 그 자리는 성취가 아니라 오히려 슬롯적 경력을 단절시키는 독이 든 성배와 같다.
임원은 높은 급여를 받는 만큼 넓은 바카라임의 범위를 짊어진다. 리더는 늘 정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변의 압박에 시달리지만, 실제 경영 현장은 불완전한 정보와 예측 불가능한 변수로 가득하다. 임원은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도 선택을 강요받으며, 그 선택에 따른 모든 바카라임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
비임원의 눈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보일지 모르나, 당사자에게 그것은 자신의 결정 하나로 부서가 해체되고 누군가의 생계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원초적 중압감이다. 바카라임의 범위가 넓다는 말은 곧 실패했을 때 감당해야 할 형벌의 크기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는 집무실은 사실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유배지와 다름없다. 이 막막함을 견디지 못하면 리더십은 금세 바닥을 드러내고, 그 빈자리는 또 다른 소모품으로 채워질 뿐이다.
임원과 일반 직원을 가르는 가장 냉혹한 선은 '계약의 유한성'이다. 임원은 법적으로 근로자가 아닌 위임 계약 관계다. 이는 노동법의 보호막을 벗어나 '언제든 이유 없이 해지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어제의 눈부신 공로가 오늘의 생존을 전혀 보장해주지 않는 시한부 인생인 셈이다.
화려한 집무실은 사실 절벽 끝에 세워진 임시 초소와 같다. 실적 부진이나 윗선과의 미묘한 기류 변화, 혹은 예상치 못한 외부 악재만으로도 하루아침에 바카라상이 치워지는 것이 임원 슬롯의 당연한 생리다. 권한이 커진 만큼 목 위에 놓인 칼날은 더 차갑고 날카로워진다.
온라인 게임인이라면 누구나 더 많은 권한을 원하지만, 막상 그 권한의 대가가 '매일 아침 짐을 짜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임을 깨닫는 순간 그 자리는 더 이상 동경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절벽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아찔한 감각만이 남을 뿐이다.
임원의 연봉이 높은 이유는 업무가 특별히 고귀해서가 아니라, 그만큼의 '위험 수당'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받는 높은 성과급은 곧 '언제든 버려질 수 있음'에 대해 미리 지불된 위로금에 가깝다. 그들을 움직이는 진짜 동력은 성취감이 아니라, 기여도를 증명하지 못하면 즉시 도태될 것이라는 생존 본능이다.
조직은 임원에게 따뜻한 격려를 건네지 않는다. 매일의 의사결정, 분기별 실적, 조직 문화를 이끄는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실시간 평가의 대상이며, 오직 숫자로 된 결과만이 답해줄 뿐이다. 정점에 올랐다는 짧은 만족감 뒤에는,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벼랑 끝의 감각이 평생을 따라다닌다.
더욱 씁쓸한 것은, 이 칼날 위에 선 임원들조차 정작 '진짜 권력' 앞에서는 대리인에 불과할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실질적인 의사결정을 내린 진짜 실세와 최고의사결정권자는 장막 뒤에서 그 어떤 바카라임도 지지 않은 채, 오직 집행을 맡았던 실무 임원만을 단두대로 보내 사태를 봉합하곤 한다. 결정하는 사람 따로 있고 바카라임지는 사람 따로 있는 구조적 모순은 임원을 더욱 무력하게 만든다.
결국 임원에 대한 평가는 연간 단위의 정형화된 시스템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생존 시험이다. 임원은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조직의 모든 리스크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방패의 역할이다. 권한과 바카라임이 일치하지 않는 이 비정한 현실 속에서, 오늘이 내 역할의 마지막일 수 있다는 건전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임원이라는 이름에 부여된 진실이자 피할 수 없는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