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하고 발견하고 바꾸고 조정하는 야놀자의 새로운 일하는 방식
작년 한 해 수많은 기업이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오픈AI의 GPT 엔터프라이즈를 도입했다. 올해 초에는 구글의 제미나이와 앤트로픽의 클로드 엔터프라이즈까지 사내에 들이며 기술적 인프라를 완비했다. 최고 성능의 기술을 쥐여주었으니 조직이 빛의 속도로 혁신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돈을 쓰고 도구를 쥐여주었음에도 조직의 본질은 놀라울 정도로 변하지 않았다. 야놀자 에질리티 랩의 강상윤 팀장이 던진 진단은 냉혹하다.
"AI 도구를 쓸 수 있는 사람과 자신의 문제를 AI로 해결하는 사람은 다르다"
수조 원짜리 초거대 AI 조차 인간이 마주한 문제를 대신 정의해주지 못한다는 자명한 진실이 비즈니스 현장을 지배하고 있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역설적으로 사람과 프로세스라는 가장 원초적인 숙제로 회귀하는 현장, 그 이면의 모순을 해부한다.
"질문을 잘하려면 그 앞전에 문제에 대한 정의가 바로 서야 한다." 강 팀장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나 화려한 명령어 조작 같은 기술적 환상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AI 리터러시의 본질은 도구의 숙련도가 아니라, 자신의 업무에서 무엇이 진짜 병목이고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을 세우는 역량이다. 풀고자 하는 문제의 본질이 흐릿한 상태에서 마주하는 AI는 그저 똑똑한 비서와의 무의미한 잡담에 불과하다. 문제를 정의하지 못하는 인간은 AI 서비스 창을 띄워놓고 텍스트를 배설하는 행위를 '일'이라고 착각한다.
전통적인 교육 방식도 이 지점에서 파산을 선고받는다. 5점 만점에 4.5점이 나왔다고 자위하는 교육 만족도 조사는 현업의 변화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야놀자 에질리티 랩은 워크숍을 평가할 때 '그 팀이 문제를 스스로 잘 정리했는가', '현재 일하는 방식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가'를 KPI로 측정한다. BCG의 연구 결과가 보여주듯, AI 프로젝트 실패의 70%는 기술이 아닌 사람과 프로세스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변화를 만드는 팀은 AI 사용법을 마스터한 팀이 아니라, 자기 문제를 가장 분명하게 쥐고 흔들 줄 아는 팀이다.
야놀자가 시도한 대규모 해커톤 실험은 기술에 취한 직원들의 제한된 사고를 보여주는 케이스 스터디다. 국내 9개 그룹사에서 비개발자를 포함한 342명의 직원이 모여 74개의 과제를 쏟아냈다. 이들은 텍스트 요구사항 명세서를 기반으로 한 1차 AI 심사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하며 환호했다. 그러나 진짜 파국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회사로 직접 초청된 56명의 실제 고객 심사위원단 앞에 서자, AI 심사에서 최고점을 받았던 팀들이 최하위권으로 추락한 것이다.
이 참혹한 불일치의 원인은 명확하다. AI가 격찬한 정교한 논리 구조와 화려한 결과물이, 정작 실제 고객이 겪는 고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기만족형 산출물'였기 때문이다. AWS팀과 공동 진행한 'AI-드리븐 소프트웨어 제품 개발 워크숍'의 데이터 역시 섬뜩한 단면을 보여준다. 업무 속도가 약 6.5배 향상되고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고객 니즈 반영 수준'은 5점 평균에 고작 2.7점에 머물렀다. 시속 300km로 질주하는 기차를 만들었으나 그 기차가 막다른 길을 향해 달리고 있다면, 속도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기술이 인간의 소통을 완벽히 대체할 수 있다는 믿음은 조직 내부에 기이한 부작용을 낳는다. 사내에 강력한 AI 에이전트와 자동화 시스템이 구축되면서 직원들이 더 이상 동료에게 질문하지 않고 AI 하고만 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과의 소통은 감정이 상하고 시차가 발생하지만, AI는 언제나 즉각적이고 달콤한 정답을 내어주기 때문이다. 이 편리함의 대가는 가혹하다. 개인의 생산성은 극대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조직 전체의 상호작용과 협업 역량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린다.
야놀자 에질리티 랩은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AI가 해야 하는 것'과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의 경계를 칼로 자르듯 구분했다. 문서 구조화, 회의 요약, 반복 보고, 우선순위 초안 작성은 철저히 AI 에이전트의 영역으로 넘긴다. 그러나 피드백과 투명한 소통, 원팀 협업, 그리고 학습과 회고는 오직 인간의 몫으로 남겨둔다. 피드백과 소통을 에이전트화하면 형식만 남고 실질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관계와 신뢰 위에서만 작동하는 인간 고유의 협력 프로세스는 결코 자동화될 수 없다.
비즈니스 현장에서 진정한 체질 개선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통제나 강제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야놀자는 에질리티 랩의 개입이 줄어들어도 변화가 지속되는 자율적 구조를 실험하고 있다. 임직원 역량 강화 교육비용을 기존 3,000만 원에서 800만 원으로 무려 73% 절감하면서도 사내 강사를 발굴해 확산 속도를 높였다. 15명의 사내 AI 챔피언을 선발해 이들을 단순한 사용법 전도사가 아닌 각 조직의 'AX 설계자'로 임명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강상윤 팀장은 더 이상 특정 시간에 사람들이 모여 일회성 이벤트를 벌이는 해커톤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축제는 끝났고, 이제는 각 조직이 일상 속에서 스스로 질문을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유일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분기 단위로 계획을 갈아엎으며 틀렸을 때 빠르게 바꾸는 민첩함만이 이 불확실한 기술 전환기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생존 방식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여전히 개인이 AI를 업무에 쓰는 'AI 사용(1단계)'이나 회사가 가이드를 제공하는 'AI 도입(2단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역할과 KPI, 파이프라인과 거버넌스 전체가 AI를 전제로 재설계되는 'AX 전환(3단계)'에 도달한 조직은 극히 드물다. 하반기부터 AI 토큰 사용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을 것이고, 재무 부서는 꼼짝없이 투자 대비 성과(ROI) 청구서를 요구할 것이다.
이때 업무가 몇 배 빨라졌다는 얄팍한 속도 지표나 사용량 데이터를 들고 경영진을 설득하려 드는 기업은 반드시 실패한다. AI를 활용해 만든 제품과 서비스가 궁극적으로 얼마나 많은 비즈니스 임팩트와 고객 가치를 창출했는가만을 증명해야 한다. 우리가 설계해야 하는 것은 도구가 아니다. 자기 문제를 AI로 직접 풀어본 동료들이 팀을 바꾸고, 그 팀이 다시 다음 문제를 스스로 찾아 나서는 생태계의 조건이다. 기술이라는 환상을 구매하기 위해 지갑을 열기 전, 조직이 마주한 문제의 날을 먼저 날카롭게 갈아 세워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