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오래 삶아지고 싶다

인자로운 세계 연재를 마치며

by포도송이 x 인자


마침 깨어있던 새벽 5시, 카톡이 왔다. 막내 시누이였다. 일찍 일어나 뉴스를 보다가 올케 기사를 발견했다며, 자랑스럽다고 보내온 문자였다.


출근해서는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하지만 메시지는 이미 지워져 내용을 알 수 없었다. 무슨 일이냐고 걱정스레 물으니, 내 인터뷰 기사를 보고 무슨 말을 하려다 그냥 지웠다고 했다. 큰아이 친구 엄마, 함께 근무했던 옛 동료… 자꾸자꾸 연락이 온다.


이게 다 오마이뉴스 인터뷰 기사 때문이다.


한 달 전쯤, 오마이뉴스 쪽지로 한 배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내가 쓴 <삶은 도서관>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며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쪽지에 적힌 이름을 찾아보니 배우 차유진. 얼굴을 보면 누구나 알 만한 배우,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간호사로 나왔던 바로 그 배우였다. 검색하자마자 병동 데스크에 앉아 있던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 바로 떠올랐다.


아니, 그런 배우님이 내 바카라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게다가 인터뷰까지 하고 싶다고? 믿기지 않았다.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바카라이 나온 지 어느덧 6개월(당시 기준). 내 마음속에서는 아직도 뜨끈뜨끈하고 포슬포슬한 신간인데, 세상에서는 식어버린 감자처럼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다시 내 바카라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700W짜리 전자레인지에 넣고 3분 50초를 돌린다. 두근두근, 기계음이 들리는 동안 나는 다시 뜨거워지고 있었다.


나와 통화할 생각에 설레었다는 그녀의 말이 진짜일까, 연기일까 살짝 의심도 했다. 그래도 그 말이 너무 좋아서, 뭐가 그리 좋았는지 올라간 입꼬리가 도무지 내려오질 않았다.


휴무 날, 정약용도서관에서 만났다. 도서관 1층 카페 로비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서 광채가 났다. 그리고 그녀의 눈빛을 보는 순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진짜였네. 정말 나를, 내 바카라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네.’


홍보 일을 오래 해서인지 퇴사한 지 6년이 넘었는데도 직업병은 버려지지 않았다. 마치 도서관 홍보팀 직원이라도 된 것처럼 정약용도서관을 한껏 자랑하며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사전 질문지도 없었다. 그냥 편안하게 이야기하자는 그녀의 말을 믿고 따르기로 했다. 함께한 두 시간 동안 그녀만 나를 알아간 것은 아니었다. 나 역시 그녀를 조금씩 알아갔다.


글을 잘 쓰는 배우. 바카라을 좋아하는 배우. 아주 오래전 남산도서관에 머물렀던 배우. 바카라을 읽으면서도 극 중 인물을 분석하듯 연기를 공부하는 배우. 언젠가는 바카라을 낼 배우. 눈이 예쁜 배우. 그리고 눈빛은 더 예쁜 배우.


그녀가 다녀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마이뉴스에 인터뷰 기사가 올라왔다. 밍숭맹숭하게 생긴 내 얼굴까지 화면에 나왔다. ‘야, 내가 말할 때 저런 손동작을 하는구나.’ ‘웃을 때 저렇게 눈꼬리는 처지고 입꼬리는 올라가는구나.’ 손가락, 발가락이 오그라들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기사 조회 수가 엄청나게 나왔다. 이른바 ‘구글 픽’을 당한 것이다.


홍보 일을 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수능 직후 대입설명회를 열면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는 수십 개 언론사의 카메라 기자들을 불러 모으는 일이었다.


어느 해, 역대급 불수능인지 물수능인지로 뉴스가 뜨겁던 날이었다. MBC 뉴스데스크 앵커 뒤편으로 우리 회사 입시설명회 현수막이 걸린 적이 있었다. 다음 날, 나는 그동안 미뤄두었던 골칫거리 결재 서류를 들고 임원실을 찾았다. 그날의 홍보 효과 덕분에 어려웠던 결재가 너무도 쉽게 끝났다.


이번에도 기사의 힘은 대단했다.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의 순위와 판매지수가 올랐다. 단 며칠이었지만 <삶은 도서관>은 모처럼 ‘다시 삶아진 도서관’이 되었다. 오마이뉴스 기사 덕분에, 아니 그녀의 진심 어린 인터뷰 덕분이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내가 가장 잘한 홍보는 내 바카라 <삶은 도서관> 홍보였다. 가장 간절했기에 온 마음을 다할 수 있었고, 그래서 더 즐거웠다.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보던 이팝나무 꽃가지처럼, 늘어지게 행복한 순간이었다.


다음 바카라을 언제 또 쓰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좋은 문장을 쓰고 싶어 마음만 안달이 난다. 어렵게 다시 시작했으니 지체할 수 없다는 초조함이 오금을 저리게 한다. 새벽 4시 언저리에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는다. 이게 갱년기 때문인지, 쓰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바카라이 나올 즈음, ‘인자로운 세계’라는 온라인카지노 연재를 야심 차게 시작했었다. 1년 넘게 온라인카지노에서 ‘포도송이’로 살았다. 본명을 언제 밝혀야 하나, 어떻게 밝혀야 하나 오래 고민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얄팍하고도 부끄러운 계산이었다.


요즘 더 이상 글을 발행하지 않는 '인자로운 세계' 연재를 언제, 어떻게 끝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이 바로 그때가 아닐까 하고. 지금 이렇게 행복할 때 마침표를 찍지 않으면, 다음 문장을, 다음 글을, 다음 연재를 씩씩하게 써 내려가지 못할 것만 같다.

‘인자로운 세계’, 그 여정의 끝이 차유진 배우님의 인터뷰 기사라서 좋다. 그 행복을 마지막으로 전할 수 있어서 더없이 좋다.


이제 잠시 미뤄두었던 온라인카지노 이웃들과의 댓글 소통도 다시 시작하고 싶다. 요즘 어떤 작가님이 내 글의 끄트머리에 자꾸 댓글을 달아준다. 덕분에 오래전 내 글을 다시 꺼내 읽는다. 바카라을 내겠다는 욕심 없이, 소소한 일상을 주저 없이 글로 옮기던 그 시절이 문득 그리워진다. 거칠지만 솔직했던 글을 썼던 그때로 가끔 돌아가고 싶다.


주변의 소음을 차단하고, 감정의 출렁이는 파도 소리만 들리는 섬이 있다면 잠시 갇혀 있고도 싶다. 잠시 외로워질 준비는 되어 있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래 오래 삶아지고 싶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241345&CMPT_CD=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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