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앞에는 100평쯤 되는 텃밭이 있다. 농사가 업인 사람들에게는 너무 작고, 텃밭을 분양받는 도시농부들에게는 제법 큰 크기다. 남편과 나는 이 텃밭을 묵히는 해가 더 많았다. 남들은 '파'라도 심어 먹으라고 했지만, 그것조차 신경 쓰기힘든 날들이 많았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이 묵은 텃밭이 새 주인을 만났다. 서울에 사시는 친정부모님이 살림을 도와주러자주 오시면서 농사까지 짓기 시작한 것이다. 두 분은 나이 팔십이 되어서야 초보 농사꾼이 되셨다.올해는 배추 농사까지 지으시겠다며 황금 배추 100 포기를 심으셨다.
황금배추 100 포기가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오늘 쓰는 글의 주제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제목의 글을 썼을 것.
'김장 100 포기, 포기해도 될까요?'
'김치는 아삭, 내 허리는 아작'
'누가 저 배추 좀 보쌈해 가세요'
소제목처럼나는 올해 김장을 담그지 않았다. 그렇다면 텃밭에 심은배추 100 포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24 절기 중 14번째 절기인 처서가 지난 어느 날.
배추 100 포기가 한 포기도 남김없이 몰살되는 비극이 일어났다. 이름하여 배추 독살 사건.
이 모든 화는 초보농사꾼의 욕심에서 비롯되었다. 배추 농사는 자고로 벌레와의 싸움이라며 친정아버지는 배추벌레약, 일종의 살충제를 모종한 배추에 살포했다. 평소 본인이 드시는 소화제, 감기약도 늘 1.5배 용량을 더 드셔야 빨리 낫는다고 믿으시는 아버지는 배추에 치는 약도 용량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셨다. 희석시켜야 할 물의 양에 0 하나를 뺐다. 물 20리터에 살충제 한 컵이 정량인 것을 물 2리터에 한 컵을 희석시킨 것이다. 고로 정량보다 거의 10배나 독한 약을 어린 배추에게 살포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배추는 청춘의 푸르른 날을 만끽하지도 못한 채 그냥 타들어가 죽었다. 물을 줘도 소용없고 비가 와도 소용없었다. 엄마의 곡소리는장례식장 같았다. 많이 주면 좋은 줄 알았다는 아버지의 변명은 다소 황당하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아주 죽일 결심이 아니고서야 인지 능력 저하까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어쨌거나 배추독살사건으로 인해 직접 농사를 지어 김장을 하겠다는 두 노부부의 꿈은 사라졌다.가을에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엄마의 갈비뼈까지골절되었으니 어쩌면 배추 독살 사건은오히려 나에게는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하마터면 독박 김장 100 포기를 할 뻔했으니 말이다.
사실 나는 몇 해전부터 김치를 사 먹었다.이상하게 엄마가 김장 담글 무렵에는 꼭 이렇게 아팠다. 어느 해는 허리를어느 해는 하지정맥류 수술을 했다. 그나마 올해는 몸상태가 나았었는데 갈비뼈 골절이라는 뜻하지 않은 부상을 당한 것이다.나는 이번 일을 겪고 나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김장? 그거? 진짜 몸 아프면 하라 해도 못한다. 반대로 배추 한 포기 들 정도만 돼도 어르신들은 한다. 돌아가신 시어머니도 그랬다. 그러니까 부모가 김장을 포기한다는 것은 배추 한 포기조차 들 힘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
몇 년 간은 김치를 사서 먹는 것이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그런데 요 근래 온라인카지노에 올라오는 김장 김치 이야기나 동료들이 싸 오는 김장 김치 맛을 보면 20 포기 30 포기 담근 집 김장김치가 먹고 싶다. 김장하던 날 바로 버무린 겉절이에 돼지고기 수육도 먹고 싶다. 내 마음도 이러할진대 친정엄마 마음은 어떠할까?
어느 날이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 누가 김치를 해줬는데 언니 한 통 보내줄까? 그거 고춧가루부터 배추까지 직접 농사지어서 담근 김치야."
"어머머 너무 좋지"
바로 주소를 불러주는 엄마의 모습이 생소했다. 평소 같았으면, 괜찮다. 너나 먹으라며 일단 한 번은 예의상 사양할 법도 한데 말이다. 오죽 김장 김치가 먹고 싶었으면 염치가 저리 없어지셨을까? 안쓰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어느 날은 막내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가 묵은 김장 김치를 줬는데 너네 한 통 줄까?"
망설일 겨를도 없이 내 입에서는 너무 좋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머릿속에는 묵은 김치에 삼겹살, 김치두루치기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