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의 방향을 묻다

열심히 살았는데 왜 공허한가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모르겠다."


이 말을 한 번쯤 해본 사람이라면, 혹은 속으로 삼켜본 사람이라면, 이 글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열심히 살았다. 야근도 했고, 자기 계발도 했고, 남들 눈에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 자리도 만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뒤를 돌아보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느낌. 그 공허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탓할 사람을 찾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껏 무엇을 위해 노력해 왔는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였는가, 아니면 타인의 시선 속에서 더 괜찮아 보이기 위해서였는가.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자기실현을 향한 노력은 아니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인간의 노력을 두 갈래로 구분했다. 하나는 자기 자신의 성장을 향한 건강한 동기이고, 다른 하나는 열등감에서 비롯된 신경증적 보상 욕구다. 후자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진짜 충족을 주지 못한다. 성공해도 불안하고, 실패하면 무너진다.

"모든 사람은 열등감을 지닌다. 그러나 열등감은 질병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건강하고 정상적인 노력과 발전을 향한 자극이다. 열등감이 병리적 상태가 되는 것은, 부족감이 개인을 압도하여 유용한 활동을 자극하는 대신 그를 낙담시키고 발전 불능 상태로 만들 때다."— Alfred Adler, The Individual Psychology of Alfred Adler (1929), ed. Ansbacher & Ansbacher (1956)


이것이 핵심이다. 열등감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나 자신의 성장'이 아닌 '타인보다 우월해지는 것'으로 해소하려 할 때, 악순환이 시작된다.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쌓아 올린 노력은 결국 더 심한 열등감으로 되돌아온다. 기대만큼 인정받지 못하면 불만이 쌓이고, 작은 비판에도 과민하게 반응하며, 늘 초조하다. 아들러의 말처럼 "과도한 민감성은 열등감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반면 자기실현을 향한 노력은 다르다.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든, 그 과정이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들지 않는다. 의욕적인 사람이 한계에 이르러도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부를 원하고, 성공을 바라고, 칭찬을 갈망한다. 이 욕망들의 뿌리를 들여다보면 상당수가 불안에 닿아 있다. 불확실한 자신을 확실한 무언가로 덮으려는 시도. 그래서 성공을 하지 못하면 무기력해지고, 성공을 해도 다음 불안이 찾아온다.


반면 '평범함'은 공기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오늘 무사히 하루를 마쳤다는 것, 가족이 곁에 있다는 것, 몸이 건강하다는 것. 이것들이 얼마나 큰 것인지는 잃어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뉴욕대학교 러스크 재활의학연구소(Rusk Institute of Rehabilitation Medicine, NYU Langone Health) 로비에는 청동판 하나가 걸려 있다. 「장애인의 신조(A Creed for the Disabled)」라 불리는 이 글은 원래 작자 미상의 시였는데, 1952년 대선에서 패한 애들레이 스티븐슨(Adlai Stevenson)이 크리스마스 카드에 담아 보낸 것을 받은 재활의학의 아버지 하워드 러스크(Howard Rusk) 박사가 청동에 새겨 기관 로비에 설치한 것이다.


"큰일을 이룰 힘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나약함을 주셨다. 위대한 일을 할 건강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더 좋은 일을 하라고 질병을 주셨다. 행복해질 수 있도록 부를 달라고 기도했더니, 지혜로워지라고 빈곤을 주셨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도록 성공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자만하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다. 나는 요청한 것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지만, 바랐던 것은 모두 얻었다."— 「장애인의 신조(A Creed for the Disabled)」, 작자 미상 (원제: Prayer of an Unknown Confederate Soldier)


이 시는 반전이 있다. 구한 것을 얻지 못한 것이 실패가 아니라는 것. 나약함을 통해 겸손을 얻고, 빈곤을 통해 지혜를 얻고, 실패를 통해 자만을 버린다. 무엇을 향해 기도하고 있는가 보다, 그 기도 뒤에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가 더 본질적인 질문이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Abraham Maslow)는 인간의 동기를 결핍(D-영역)과 성장(B-영역)으로 나누었다. 결핍의 영역에 있는 사람은 세계가 자신을 채워주기를 요구한다. "나를 인정해 줘, 사랑해 줘, 존중해 줘." 이 요구는 충족되는 순간 다음 결핍을 찾아 나선다. 성장의 영역에 있는 사람은 다르다. 탐색, 발견, 기여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에 덜 흔들린다.

"사람은 안전을 향해 뒤로 돌아갈 수도 있고, 성장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성장은 매번 다시 선택되어야 하고, 두려움은 매번 다시 극복되어야 한다."— Abraham Maslow, Toward a Psychology of Being (1962)


이 문장이 무거운 이유는, 성장이 한 번의 결단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 성장을 선택했어도 오늘 다시 선택해야 한다. 그것도 두려움 앞에서. 의욕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재능이 아니라, 이 선택을 얼마나 자주 반복하느냐에 있는지도 모른다.


스콧 배리 카우프만(Scott Barry Kaufman)이 2018년 『Journal of Humanistic Psychology』에 발표한 연구에서, 자기실현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결핍의 충족보다 성장, 탐색, 인류에 대한 관심에 의해 더 강하게 동기화된다는 것이 실증적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이들은 생활 만족도, 자기 수용, 자율성, 삶의 목적의식 등 여러 웰빙 지표에서 높은 점수를 보였다.


아들러는 인간의 '생활양식(life style)'이 유년기에 형성된다고 보았다. 안도감을 충분히 경험한 아이는 세상을 기본적으로 안전한 곳으로 인식하며 자란다. 그렇지 않은 아이는 타인의 인정을 끊임없이 갈구하거나, 반대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방식으로 세상을 마주한다. 이 패턴은 어른이 되어서도 작동한다. 의식하지 못한 채로.

"인간이 된다는 것은, 끊임없이 그 극복을 향해 밀어붙이는 열등감을 지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열등감이 클수록 극복을 향한 충동은 강해지고 감정의 동요는 격렬해진다." — Alfred Adler, The Individual Psychology of Alfred Adler, ch. 3 (1956), ed. Ansbacher


문제는 극복의 방향이다. 그 충동이 자기 자신을 향할 때는 성장이 되고, 타인에 대한 우월을 향할 때는 소진이 된다. 자신의 위치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어린 시절에 충분한 안도감을 경험한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를 의식화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노력의 방향을 올바르게 설정하는 출발점이다.


삶이 공허하다고 느낄 때, 다른 사람을 원망하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이 노력을 하고 있는가.


자신이 필요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타인에게 괜찮아 보이기 위해서인가.

자기실현을 향한 노력인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발버둥인가.


이 물음에 솔직하게 답할 수 있다면, 노력의 방향은 달라진다.

성공도, 부도, 칭찬도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목적이 될 때, 그리고 그것으로 열등감을 덮으려 할 때, 삶은 필연적으로 공허해진다. 안도감을 얻기 위해 부와 성공을 원하지만, 결과는 더 불안해질 뿐이다.


평범하고 조용한 하루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

그것이 어쩌면 자기실현의 가장 조용한 출발점인지도 모른다.

러스크 재활의학연구소 로비의 청동판처럼.

구한 것은 하나도 얻지 못했지만, 바랐던 것은 모두 얻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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