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가 누군데?"라고 물었을 때 그가 입을 닫는 이유
"누가 그러던데, 걔가 어쩌고저쩌고..."
살다 보면 꼭 이런 식으로 말을 거는 사람이 있다.
궁금해서 "그 누가 누군데?"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정해져 있다.
"그건 말할 수 없고, 아무튼 그렇다네."
이건 정보를 주는 게 아니라 바카라임을 회피하는 거다.
자기 입을 빌려 누군가를 깎아내리면서, 정작 본인은 '전달자'라는 안전한 그늘 뒤에 숨고 싶어 한다. 이런 대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비겁하다.
익명 뒤에 숨어 배설하는 악플러와 무엇이 다른가. 아니, 얼굴을 마주하고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는 가면을 썼으니 어쩌면 더 기만적이다. 이런 사람을 마주하면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내 이야기도 어디선가 이런 식으로 소비되겠구나, 싶은 거다.
더 피곤한 건 그다음이다. 상대의 기분을 난도질해 놓고 "내가 뭐 틀린 말 했어?"라고 당당하게 묻는 사람들. 역설적이게도 이 말은 본인이 무례했다는 걸 스스로 시인하는 꼴이다. 논리적으로 틀리지 않았으니 인간적인 도리는 어겨도 괜찮다는 오만함이 깔려 있다.
17세기 스페인의 철학자이자 전략가였던 발타자르 그라시안(Baltasar Gracián)은 그의 저서에서 말의 절제에 대해 이렇게 경고했다.
"No se debe decir todo lo que es verdad, mas todo lo que se dice debe ser verdad." — Baltasar Gracián, Oráculo manual y arte de prudencia (1647) _ "모든 진실을 다 말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말하는 모든 것은 진실이어야 한다."
사실이라 해도 다 말하며 살 수는 없다.
그건 배려 이전에 지능의 문제고, 나잇값의 문제다.
사실이라는 방패가 무례함까지 가려주지는 못한다.
"솔직해서 그래"라는 변명도 한두 번이다.
나이가 들수록 침묵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 귀해진다.
자기 입에서 나가는 말이 누군가에게 화살이 될 걸 알면서도 시위를 당기는 사람 곁에 굳이 머물 이유가 있을까.
결국 방법은 하나다.
서서히, 하지만 분명하게 거리를 두는 것.
"솔직해서 그래"라는 비겁한 변명을 받아주기엔 내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아깝다.
침묵이 가진 힘을 모르는 사람 곁에선 내 영혼이 조금씩 깎여 나간다.
굳이 싸울 필요도 없다.
그저 조용히 내 삶의 우선순위에서 그들의 자리를 지워내면 된다.
사실 여부를 떠나 타인의 결점을 가십으로 소비하는 이들에게 내 귀를 내어주지 않기로 했다.
그게 나를 지키는 가장 담백하고 확실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