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돼지들이 우리 곁에 숨어드는 법
평등은 절댓값이다. 거기에 ‘더(more)’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 그 단어는 기능을 멈춘다. 나는 평등은 완결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지, 정도를 나눠 비교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1과 1은 같을 뿐이지, 어떤 1이 다른 1보다 더 1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All animals are equal, but some animals are more equal than others."
— George Orwell, Animal Farm (Chapter 10)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8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문장이 서늘하게 읽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슬롯 곳곳에서 여전히 '상식'의 탈을 쓰고 작동하기 때문이다.
공동체가 무너지기 직전에는 언제나 단어부터 망가진다. 의미가 조금씩 비틀리고, 불편한 진실은 부드러운 표현으로 덮인다.
공자는 이를 '정명(正名)'이라 불렀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어그러지고, 말이 어그러지면 결국 일도 어그러진다는 뜻이다.
논어 〈자로 편(子路篇) 제3장〉
名不正,則言不順
言不順,則事不成
事不成,則禮樂不興
禮樂不興,則刑罰不中
刑罰不中,則民無所措手足。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일어나지 않고, 예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적중하지 않으며, 형벌이 적중하지 않으면 백성은 손발 둘 곳을 모르게 된다.
고전의 훈수가 아니라, 우리 현실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권력은 언제나 언어를 먼저 점령한다. 노골적인 명령보다 효과적인 건, 단어의 의미를 살짝 바꾸는 일이다.
'공익을 위한 희생'이라는 말이 그렇다.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을 잃는 비극이지만, 슬롯적 합의라는 이름 아래서는 어쩔 수 없는 '비용'으로 처리된다. '보편적 권리'를 말하면서도 특정 집단의 목소리에는 '시기상조'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그 순간, 평등은 모두의 것이 아니라 허락된 자들의 전유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