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여기 있는데...

by재인

날씨가 너무 좋아 홀린 듯 현관문을 나섰다.


운전을 하려던 마음을 접고,

오늘은 기꺼이 두 발로 출근길을 걸어보기로 한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이혼 후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버텨온

지난 10여 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내려앉은


이 동네가

이 길이


눈에 들어온다.


길 마디마디마다 켜고 끄지 못한 추억의 불빛들이 서려 있다.


아침마다 아이들의 작은 손을 잡고 재잘거리며 걸었던 등굣길.

그 시절 아이들의 발길을 붙잡았던 학교 앞 문구점엔 유행하던 지구알 젤리가 가득했고,

하굣길 배고프던 아이들과 들러 컵떡볶이를 호호 불며 나누어 먹던 작은 분식점의 온기가

아직도 코끝을 스치는 듯하다.


무엇보다 가슴이 찡해지는 것은

그 길목마다 울려 퍼지던 우리만의 노랫소리다.

세상이 전부이던 아이들과 함께 부르며 걸었던 그 노래들이 아직도 바람결에 묻어나는 것 같다.


난 아직 여기 있는데,

너희는 모두 자라서

다른 곳에 있구나.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을까.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자라 저마다의 품을 찾아 다른 세상으로 떠나고 없다.


텅 빈 듯 아련해지는 마음 한편으로,

이 작은 동네의 골목골목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모나지 않게,

건강하고 착하게 잘 자라준 아이들에게 한없이 고마운 마음이 차오른다.


난 아직 여기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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