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고 말해도 돼

by재인

딸이 대회 때문에 완도로 떠났다.


엄격한 식이 조절과 온몸을 짓누르는 힘든 훈련이 이어지는 곳이었다.

머나먼 곳에서 고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딸은

밤마다 낯선 외로움과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전화 너머로 힘들다고 징징거리곤 했다.

처음에는 다독여주며 달래 보았지만,

늦은 밤 반복되는 투정에 문득 묘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어쩌면 저렇게 소리 내어 힘들다고 투정 부릴 수 있는 저 시간이,

그 마음을 고스란히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내심 부러워지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어른이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의 엄마라는 무게 아래,

혹은 슬롯적인 시선 속에서 아무에게도


"나 지금 너무 힘들다"

고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한 채 살아왔다.

마음속 응어리가 한계까지 차올라 터질 것 같아도,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꾹꾹 삼켜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사실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말한다고 해서 당장 내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현실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도 않고,

내 어깨를 짓누르는 바카라임감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을 너무 잘 알기에 더더욱 입을 다물고 혼자서 견디는 법만 배웠던 것이다.


하지만 울컥 눈물이 날 때 울 수 있고,

아플 때 아프다고 소리 낼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누릴 수 있는

가장 다정한 특권인지도 모르겠다.


완도의 밤바람 속에서 홀로 훈련을 견디며 눈물 흘렸을 딸을 떠올린다.

그 투정은 단순히 엄살이 아니라,

나 힘들다고,

그러니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세상에 내지르는 가장 솔직하고 여린 신호였음을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언젠가 딸이 이 힘든 시간을 지나 어른이 되었을 때,

아무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한 채 혼자 삭여야 하는 날이 온다면

이 밤을 기억해 주었으면 했다.


어른이 돼도

억지로 의젓해지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가끔은 다 내려놓고 투정을 부려도 괜찮다고,

엄마가 있다고.


그리고 그렇게 마음껏 아파할 수 있던 그 시절이 결국 우리를 자라게 했던 힘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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