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쓸쓸함, 서글픔, 그의 서사.

byGoodmorning

누군가의 뒷모습은 때로 얼굴보다 많은 표정을 담는다. 쓸쓸함과 서글픔, 한 사람의 서사.

단명하는 우리 집안에서, 아빠는 그나마 칠순의 도장을 꾹 찍고 삶을 마치셨다.


생전에 아빠는 첫 손주가 걸음마를 떼자마자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집 앞 슈퍼로 향하곤 하셨다. 아이가 제 손으로 직접 고른 과자 봉지를 들고 함박웃음을 지을 때, 아빠의 얼굴에도 세상에서 가장 훤한 행복이 번졌다.
​지금도 문득 집 앞 슈퍼를 지날 때면, 어린 손주의 손을 잡고 걷던 아빠의 다정한 뒷모습이 눈에 선하다.


가게로 향하는 길, 나는 항상 아빠와 아이의 손잡은 뒷모습을 보며 따라 걸었다. 내 눈은 둘이 잡은 손을 지나 아빠의 어깨와 다리로 향하고는 했다. 그렇게 눈에 들어오는 모습에 마음은 뿌듯하기도, 가슴이 찌릿하기도, 화가 나기도 하는 감정이 반복됐다.


아빠는 한쪽 무릎이 좋지 않아 걸을 때마다 한쪽으로 살짝씩 기울어졌다. 무릎 관절이 닳을 대로 닳아 통증이 심할 때까지 버티다 인공 관절을 해 넣은 탓이다. 인공관절을 해 넣은 무릎은 돌아가실 때까지도 불편해하셨다. 그래서 한 발 움직일 때마다 한쪽 어깨도 내려가고 무릎도 조금씩 주저앉았다.


평생 말이 별로 없으신 분이셨는데 무릎에 감각이 없다는 불평은 계속하셨고, 난 그 몇 마디도 듣기 싫어했다. 그때마다 인상만 쓰곤 한 번도 다정하게 위로해 드린 기억이 없다.



나이가 드니, 세 식구가 함께 여행을 하며 찍은 사진들을 펼쳐보며 추억에 빠지는 시간이 늘었다. 인화된 옛 사진을 보다가 카메라에 저장해 놓은 최근 사진으로 넘나들면 아이의 성장과 우리 부부의 늙음이 한눈에 보인다.


그 사진들 속에서 언제부터인지 남편과 아들의 뒷모습 사진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남편의 손과 아이의 손 위치는 바뀌었다. 허리쯤 오는 아이의 손을 잡고 구부정하게 걷던 남편의 뒷모습은 어느새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아이의 어깨에 손이 올라가 있었고, 최근에는 아이의 손이 남편의 어깨를 감싸고 있게 되었다.


두 남자의 뒷모습 사진은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오롯한 세 가족의 성장과 역사를 담고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아도 그때 두 남자의 표정이 읽히고 사진을 찍는 내 마음이 떠오른다.


이제는 아들이 우리 부부의 뒷모습을 찍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우린 서로의 뒷모습을 지켜봐 주고 있다. 서로의 역사를 눈으로 가슴으로 기록하고 있는 가족인 것이다.


아빠의 뒷모습을 따라잡아 옆에 서서 따뜻하게 손 잡아 드리지 못했음을 또 한 번 후회하며 새벽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