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윤이는 치즈돈가스를 선택했다

by김형준

몇 분 동안 고민하던 채윤이는 치즈돈가스가 먹고 싶다고 했다. 길 건너 돈가스 맛집은 일찍 문을 닫았다. 현대백화점 8층에 남산돈가스가 생각났다. 매장이 문을 닫기까지 50분 정도 남았다.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섰다.


원래부터 말이 많은 채윤이는 가는 내내 입이 쉬지 않았다. 오며 가며 눈으로 본 장면을 하나하나 설명해 줬다. 둘 사이 어색한 침묵이 차지할 틈이 없다. 그래서 나는 채윤이가 항상 고맙다. 습관처럼 먼저 말을 걸어주기 때문이다. 나는 맞장구만 쳐주면 된다. 말주변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구세주나 다름없다.


다행히 마지막 손님으로 테이블에 앉았다. 약속한 대로 치즈돈가스와 냉메밀을 주문했다. 수프와 깍두기 단무지가 나왔다. 채윤이는 자기 앞에 나온 수프를 보고는 언젠가 같은 수프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면 더듬었다. 내 기억에는 한 달 전쯤 외식한 날 양송이 수프가 떠올랐다. 채윤이는 그날이 아니란다. 다시 더듬어 올라갔다. 수개월 전 JYP공개 오디션을 보러 간 날로 되돌아갔다. 서울 옥수동 청소년 수련관에서 진행된 오디션장에 데려다준 날이었다. 오디션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아내도 서울로 나오겠다고 했다. 예상보다 일찍 끝난 탓에 중간지점인 인사동에서 만났고, 늦은 점심을 위해 찾은 식당에서 똑같은 수프를 맛본 기억이 났다.


수프를 비우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낮동안 어디에 갔었는지 내가 물었다. 청소년수련관 연습실을 예약해 춤 연습을 하고 왔단다. 누구랑 갔냐고 물었고, 혼자 연습했다고 대답했다. 자연스레 춤, 노래, 연기를 배워보고 싶다며 대답을 이어갔다. 학원에서 배우는 수학, 영어보다 춤, 노래가 더 자기에 맞는 것 같단다. 나도 그 말에 속으로 동의했다. 채윤이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친구 중 한 명도 연기학원에 다니는 중이란다. 그곳에서 무엇을 배우는 지도 설명했다. 고등학교도 예고를 가고 싶단다. 일반고는 가고 싶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중학교 1학년이지만 하고 싶은 게 서서히 뚜렷해지는가 보다.


치즈돈가스가 나왔다. 먹기 좋은 크기로 조각내줬다. 나의 칼질에 옆구리에서 치즈가 흐르는 걸 보며 채윤이는 감탄했다. 그 모습에 입맛이 도는지 냉큼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나도 내 앞에 놓인 냉메밀에 무와 양배추를 잘 섞어 한 젓가락 떠 입에 넣었다. 먹는 동안에는 채윤이 입은 음식만 씹었고 저절로 말수가 줄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채윤이가 하고 싶은 걸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디션을 보러 간다고 했을 때 흔쾌히 따라나섰었다. 또 학교와 그 밖의 활동도 절대 간섭하지 않았다. 학교와 학원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 뭐든 하게 했다. 다만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했으면 했다. 제대로 한다는 의미는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고 그걸 위해 노력하는 걸 말한다. 그게 재능일 것이다. 재능을 발견하고 노력하는 건 시기가 중요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마흔이 넘어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았기에 적어도 내 딸들은 그런 실수를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걸 우선해주고 싶다. 채윤이도 지금 선택이 옳은지 확신이 없을 터다. 하지만 선택을 했다는 건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선택을 존중해 주는 게 부모 역할일 것이다. 서로에게 후회가 남지 않게끔 말이다.


오랜만에 둘이 밖에서 저녁을 먹었다. 메뉴 선택권을 줬고 치즈돈가스가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선택을 존중했고, 식당을 찾아 데려갔다. 마찬가지로 채윤이의 인생에도 모든 선택권은 채윤이에게 있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할지 스스로 정해야 한다. 나는 그 선택을 존중하고 내가 해야 할 역할을 하면 된다. 어쩌면 다음에는 메뉴가 바뀔 수도 있다. 당연하다.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많으니까. 맛이 궁금하면 먹어보는 수밖에 없다. 하고 싶은 일도 마찬가지다. 그 일을 해보지 않고는 자신과 맞는지 알 방법은 없다. 그렇게 하나씩 맛을 보며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아가는 게 인생이다. 하고 싶은 일도 하나일 필요는 없다. 다만 선택한 그게 무엇이든 끝까지 해보는 노력은 중요하다. 바람이 있다면, 채윤이가 선택한 것들에 미쳤으면 좋겠다. 혹여 그 선택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 때 그 시간들에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말이다. 후회가 적어지는 만큼 인생에 대한 만족도는 높아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게 스스로 만족해하는 인생을 사는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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