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피와 샐리

리스본 여행기

by윤현식

포르투갈 리스본을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한 명 겨우 들어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떨어지기를, 꼭 단두대의 칼날이 된 기분이랄까. 본인이 날카로운지도 모르고 그저 중력에만 당겨지는 꼴이 지나온 과오라고. 누군가의 목을 두 동강 내듯 숙소를 빠져나왔다. 한국인이라면 포르투갈을 여행하며 하늘을 자주 보게 된다. 눈에 많이 담아 놔야지. 실패 없는 하늘 같은 거.


동양인과 서양인. 단 두 개의 차이로 지구는 나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행을 하다 보면 수많은 색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러니까 자연이라고 초록색만 있는 게 아닌데, 좁고 낮게만 살아서 몰랐던 거지. 휘황찬란한 동공들을 보느라 여행이 재밌는 거지. 다양한 동공들이 가리키는 곳을 오늘은 걸어보자.


불청객 없는 거리를 불청객처럼 걷다 보니 친구들이 생겼다. 어느 나라인지, 몇 살인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이름이 머피와 샐리라는 정보 정도. 리스본 거리를 같이 걷기로 했다. 사실 이 둘은 어제부터 여행을 같이 하고 있는데, 첫 만남부터 싸웠다고 나에게 울분을 토하고 있다. 머피는 샐리가 너무 긍정적이라는 것. 반대로 샐리는 머피가 너무 부정적이라는 것.


그럼 이 둘 사이에 낀 나는 어떤 운이 따를까 내심 궁금했다. 마치 성공과 실패 사이에 낀 심판인 양 오늘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건물들은 폭이 좁은 인도를 걷는 것마냥 다닥다닥 붙어 있고, 다른 인종이지만 사람 사는 거 똑같다고 말하듯 다른 종류의 나무들이 같은 색의 잎사귀를 펄럭거리고 있다. 그 사이사이를 수십 명의 사람을 태운 한 칸짜리 원룸이 달리고, 이국적인 모습을 담기엔 충분했다. 어느 카페 테라스에 앉아 투명한 재떨이와 에스프레소를 받아 머피와 샐리의 여행기를 듣기로 했다.


사건은 어제 저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머피와 샐리는 유명한 식당을 예약 없이 방문했고, 여행을 하기 전부터 기대했던 식당이라고 했다. 이름은 [Maria Catita]. 리스본에서 꽤 유명한 식당으로 예약 없이는 입장이 힘든 곳이었다. 당연하게도 웨이팅은 한 시간을 훌쩍 넘긴다는 안내판이 입구를 장승처럼 지키고 있었다.


머피는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했다는 상실감에 샐리에게 오늘의 여행은 실패했다고 말했고, 샐리는 같은 메뉴를 파는 식당으로 가면 된다고 말했다. 샐리의 정보력으로 결국 비슷한 메뉴의 음식을 먹긴 했지만, 머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라는 단어를 이마에 써 붙였다고 한다. 그런 머피를 보며 샐리는 실패는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실패가 되지 않는다며 위로했고, 그 둘은 각자의 숙소로 향했다고 한다.


일정을 끝내고 숙소에 돌아와 곧 무너질 것 같은 나무판자들을 보며 누워서 실패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나에게 실패라는 단어는 어떤 무게일까. 겨우 지탱할 정도인가, 아니면 들 수조차 없을 무게인가, 아니면 한없이 가벼워 민들레씨처럼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까. 어떤 일을 하는 데에 둘 이상의 방법이 있다면 나는 어떤 결과를 받아들일까. 나는 머피일까, 샐리일까에 대한 고민은 저렴한 와인 앞에서도 계속되었다.


결국 누군가의 마음일 뿐이다. 거창하지도 않고 웅장하지도 않는다. 꼭 커다란 파도에 휩싸인 것처럼 몸짓을 키우는 것 같아도, 발목에 살짝 치일 정도의 잔잔함이다. 다만, 파도의 크기는 본인의 마음이기에 실패를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잔잔한 바다를 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거창하지 않고, 웅장하지도 않은 것. 커다란 파도처럼 몸짓을 키우는 것 같아도, 결국 발목에 살짝 닿을 정도의 잔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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