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벽돌로 지어진 낡은 벽돌집은 겨울이 두렵다. 집 앞 골목은 차 한 대가 간신히 들어갈까 싶을 정도로 좁고, 다닥다닥 붙은 연립주택 사이 반지하 위 1층에는 해가 잘 들지 않는다. 겨울이 두려운 것은 집이 낡았기 때문도, 해가 잘 들지 않기 때문도 아닌 그 추위가 곧 얼마 없는 돈도 조금씩 갉아먹는 좀벌레 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보일러 버튼을 연신 눌러 겨울철 적정 온도라는 18도에 맞추면 이윽고 가동 중이라는 빨간 불이 켜진다. 그 정도로 틀어서는 방이 따뜻해지지도 않는다. 난방은 위 아랫집이 모두 틀었을 때 효과가 좋은 법이다. 노인이 홀로 사는 반지하에선 이따금 잔기침과 물 내리는 소리만 들릴 뿐 조금의 온기도 올라오지 않는다. 새벽에나 들어오는 얼굴 모를 누군가가 사는 윗집도 두어 시쯤 되어야 발꿈치로 바닥을 쿵쿵 딛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전기장판을 틀고 이불을 뒤집어쓰며 어찌저찌해서 겨울을 보내고 나면 다른 두려움이 몰려온다. 언제 그렇게 춥고 건조했냐는 듯 건물 벽지가 눅눅할 정도로 습기가 올라오는 초여름이 되면 추위 못지않은 불청객이 찾아온다. 다리 많고 시커멓고 적당히 눈에 잘 띌 정도로 커서 무시할 수도 없는 녀석들이 소리도 없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람에게는 시·청·후·미·촉각 외에 정말 다른 육감이 있는 건지. 잠을 자려 누워있다가 불편한 시선을 느끼고 눈을 뜨면 천장 어디쯤 희미한 얼룩 같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흐린 눈을 게슴츠레 뜨고 응시하고 있노라면 거무튀튀한 그것은 조금씩 움직인다. 그제야 화들짝 일어나 불을 켜 안경을 찾아 쓰면 몸통에 붙은 털과 다리가 보인다. 잠을 자는 중에 그것이 입으로 들어가는 상상이 들어 주변에 잡히는 아무거나 들고 확실하게 때려죽일 때까지는 편히 잠에 들 수도 없다.
종류도 많다. 바퀴벌레는 흔하고, 거미, 돈벌레도 가끔 나타난다. 주택가에 나타나는 벌레들은 크기도 작지 않다. 골목 여기저기 함부로 버려진 쓰레기를 잘 먹고 자라는지, 수시로 뿌려대는 소독약이 없어 아주 건강한 유전자만 물려받는 건지, 크기도 참 더럽게 크다. 전월세로 사는 낡은 주택은 대개 몇 겹씩의 벽지와 장판이 덧발라져 있기에 벌레들이 지나다닐 통로도 많다. 엄지발가락만 한 육중한 녀석이 용케도 벽 모퉁이의 장판 틈 사이로 들어가는 바람에 놓치는 날이면 장판 밑에서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느껴질까 두려워 발을 딛는 것도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모두가 주가 상승과 부동산 가격을 이야기할 때, 나는 낡은 전세방의 벌레를 이야기한다. 방금, 드라마를 보다 TV 뒤로 지나가는 바퀴벌레를 발견하고는 바카라상 위 클리어 파일을 들고 몇 분은 쫓아다닌 끝에 잡아 죽였다. 그사이에 놓친 드라마 장면 때문에 언짢고, 이제 여름내 벌레들에 시달리겠단 생각에 불쾌하다. 삶의 방식은 이토록 다양한데, 이토록 많은 삶에 일일이 주목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나무로 된 창틀 너머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주민들이 내놓은 음식물 쓰레기봉투에서 물이 나오기 시작하는 초여름이 되면 골목에는 쥐가 나타나고, 쥐를 쫓는 길고양이들의 움직임도 부산해진다. 전신주 위엔 재개발 추진과 관련된 현수막이 처량히 널려있고, 저 멀리 어느 집에서 누군가의 마른기침 소리가 들린다. 노란 가로등이 비추는 이 골목을 스크린이나 액자에 담으면 낭만적으로 보이겠지. 참으로 생존과 낭만의 거리는 멀지 않다. 이제 잠을 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