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는 모두 17개였다.
대구 북구의 한 상가 건물 3층.
30년 된 지역 장애인단체가 이달 말 사무실을 뺀다고 했다.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서였다.
버릴 짐과 가져갈 짐을 나누던 중 누군가 내 이름을 떠올렸다고 한다.
기록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던데.
그래서 나는 그날 오후 그 사무실 바닥에 앉아 있었다.
발밑에서 오래된 종이 냄새가 올라왔다.
습기를 오래 먹은 종이 특유의 냄새다.
탱고가 상자들 사이를 한 바퀴 돌더니 내 무릎 옆에 자리를 잡았다.
이것은 30년치의 운동을 버릴 것과 남길 것으로 나누는 자리에 불려 갔다가
정작 아무것도 나눌 수 없었던 어느 여름 오후의 기록이다.
그리고 볼 수 없는 사람이 기록을 정리하러 갔을 때 벌어진 조금 이상한 일에 대한 기록이다.
읽어 주는 사람
문제는 처음부터 명백했다.
나는 상자 안의 종이를 볼 수 없다.
스캔해서 문자 인식을 돌리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럴 계획이었다.
그런데 상자를 열자마자 그 계획이 무너졌다.
손글씨였다.
회의록도 손글씨 유인물 초안도 손글씨 예산 메모도 손글씨.
1990년대 중반까지의 문서는 거의 전부 사람 손으로 쓴 것이었다.
문자 인식 프로그램은 손글씨 앞에서 대체로 무력하다.
게다가 세로로 접힌 자국 위에 글자가 걸쳐 있거나 등사기로 밀어 흐릿해진 것들도 많았다.
배정숙 선생님이 옆에 앉았다.
68세. 이 단체에서 30년을 활동한 사람이었다.
목소리가 낮고 말이 빠르지 않았다.
"박사님 제가 읽어 드릴게요."
"그러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텐데요."
"어차피 저도 다시 봐야 해요. 뭘 버릴지 정해야 하니까."
그렇게 시작됐다.
배 선생님이 종이를 한 장씩 집어 들고 소리 내어 읽었다.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 받아쳤다.
처음에는 단순한 작업일 줄 알았다.
읽고 받아치고 분류하고.
그런데 세 번째 상자쯤에서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1997년 3월의 유인물
"1997년 3월 12일. 대구 시내버스 전면 저상화 촉구 결의문."
배 선생님이 읽다가 멈췄다.
"이거 제가 썼어요."
그리고 잠깐의 침묵.
"이날 우리 12명이었어요. 12명이서 시청 앞에 섰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뭐라 했는지 아세요. 집에 있지 왜 나왔냐고. 위험하게."
배 선생님은 그 말을 하고 다시 유인물을 읽었다.
결의문의 문장은 딱딱하고 격식이 있었다.
저상버스 도입을 촉구하며 시민의 이동권은 기본권임을 천명한다 같은 문장들.
나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받아쳤다.
종이에 적힌 문장과 종이에 적히지 않은 문장을.
종이에는 결의문이 있었다.
배 선생님에게는 그날 12명이었다는 사실과 집에 있지 왜 나왔냐는 말이 있었다.
전자는 상자에 들어 있고 후자는 68세 여성의 기억 속에만 들어 있다.
그리고 상자는 이달 말에 대부분 버려질 예정이었다.
배 선생님은 그다음 장도 읽었다.
같은 해 5월 시청 담당 부서에 보낸 공문 사본이었다.
문체가 딱딱하고 정중했다.
검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로 끝나는 문장.
"이건 저희가 세 번 보냈어요. 답이 안 와서."
"답이 왔나요?"
"왔죠. 예산 사정상 곤란하다고. 그 한 줄이요."
대구에 저상버스가 처음 도입된 건 그로부터 몇 년 뒤였다.
그사이에 이 사람들이 몇 번 더 서고 몇 번 더 공문을 보냈는지는
어느 문서에도 정리되어 있지 않다.
공문 사본은 남아 있지만 그 사본들을 시간 순서로 꿰어 이건 우리가 이렇게 얻어 낸 것이라고
설명해 둔 종이는 한 장도 없었다.
승리한 결과는 행정의 성과로 기록되고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단체의 캐비닛에서 흩어진 채 늙어 간다.
이건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지역에서 특히 심하다.
중앙 단체에는 그 과정을 정리할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지만
여기에는 그럴 여유가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네 번째 상자
작업은 느렸다.
한 시간에 상자 하나를 채 못 넘겼다.
배 선생님이 자꾸 멈췄기 때문이다.
멈추는 지점에는 규칙이 있었다.
사람 이름이 나오면 멈췄다.
"김영호. 이 사람 2003년에 죽었어요. 뇌병변 있었는데 활동보조 없던 시절이라 집에만 있다가."
"박순임. 이분은 지금 요양원 계세요. 여기서 10년 일했는데."
이름이 나올 때마다 배 선생님의 목소리가 조금씩 느려졌다.
그리고 이름 뒤에 붙는 문장들은 언제나 문서에 없는 것들이었다.
정보학에서는 이런 걸 맥락 정보라고 부른다.
문서 자체가 아니라 그 문서가 만들어진 상황과 관계와 이유에 대한 정보.
기록학에서는 이것이 없으면 문서는 반쪽이라고 가르친다.
같은 결의문도 12명이 썼는지 300명이 썼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문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단체에는 맥락 정보를 담은 문서가 한 장도 없었다.
회의록에는 결정 사항만 적혀 있고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는 없다.
사업 결과보고서에는 참여 인원 숫자만 있고 그 숫자가 어떻게 모였는지는 없다.
당연한 일이다.
행정에 제출할 서류를 쓰느라 하루가 다 갔을 테니까.
보조금을 받으려면 정해진 양식이 있고 그 양식에는 왜라는 칸이 없다.
30년 동안 이 단체가 남긴 문서의 대부분은 사실 이 단체의 기록이 아니라 지자체에 제출한 사본이었다.
운동은 여기 있었는데 기록에는 사업만 남았다.
여덟 번째 상자에서 손으로 쓴 노트 한 권이 나왔다.
표지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아 배 선생님도 뭔지 모르고 펼쳤다.
"어 이거 그거네."
"뭔데요."
"2011년에 우리가 농성했던 거요."
그해 이 단체는 활동지원 24시간 보장을 요구하며 시청 앞에서 40일 넘게 천막을 쳤다고 했다.
결과는 부분 수용이었다.
중증 최중증 몇 명분만 시간이 늘었고 나머지는 다음에 논의하자는 말로 끝났다.
"그때 안에서 많이 싸웠어요."
배 선생님이 노트를 넘기며 말했다.
"부분이라도 받자는 쪽이랑 이건 받으면 안 된다는 쪽이랑. 결국 받았는데 그다음부터 사람들이 좀 흩어졌어요. 서로 얼굴 보기 불편해져서."
그 노트에는 회의 때 나온 발언들이 요약되어 있었다.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까지 적혀 있었다.
그러니까 이 단체 30년 문서 중에서 왜라는 칸이 있는 유일한 기록이었다.
"이건 왜 이렇게 적어 두셨어요?"
"그때 제가 총무였는데 너무 답답해서요. 나중에 누가 물어보면 설명은 해야 할 것 같아서."
나중에 누가 물어보면.
그 문장 하나 때문에 15년 뒤의 내가 그날의 논쟁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록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제도가 아니라 답답한 사람 한 명이 만든다.
왜 젊은 사람이 없느냐고 묻기 전에
중간에 잠깐 쉬면서 배 선생님이 커피를 탔다.
믹스커피 봉지를 뜯는 소리가 났다.
"박사님 우리 젊은 사람이 없어요."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작년에 20대 활동가 한 명 들어왔었어요. 6개월 하다 나갔어요."
"왜 나갔대요?"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나는 그 말이 오래 걸렸다.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
그 청년이 이 사무실에 왔을 때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보조금 정산 서류와 사업 계획서와 실적 보고서.
그리고 이달의 활동지원 이용자 명단.
1997년 3월 12일에 12명이 시청 앞에 섰다는 사실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건 배 선생님 머릿속에만 있었고 배 선생님은 그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옛날 얘기 해봐야 뭐 하나 싶어서.
운동이 세대를 잇지 못하는 이유를 사람들은 흔히 인력난이나 처우 문제로 설명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날 다른 이유를 하나 봤다.
새로 온 사람이 자기가 어떤 흐름 위에 서 있는지를 알 방법이 없으면
그 사람은 자기 일을 사업으로만 이해하게 된다.
사업은 그만둘 수 있다. 흐름은 그만두기 어렵다.
기록이 없다는 건 단순히 과거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이 자기 위치를 모르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위치를 모르는 사람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한 가지 더 있었다.
상자를 다 훑는 동안 여성장애인 관련 문서는 유난히 적었다.
성폭력 상담 실적이 한 줄로 요약된 표가 몇 장 있을 뿐이었다.
"이건 남길 게 없나요?"
"그건 다 상담소로 넘어갔어요. 우리는 숫자만 받았고요."
숫자만 받았다는 말이 오래 남았다.
지역 운동에서 여성장애인 발달장애인 최중증장애인의 문제는
늘 특수한 사안으로 분류되어 다른 기관으로 넘어간다.
넘어가는 순간 그 사안은 이 단체의 기록에서 사라지고
숫자 한 줄로만 남는다.
그렇게 30년이 지나면 이 단체의 역사에는 이동권과 활동지원만 남는다.
운동 안에서 주변화된 목소리는 두 번 지워지는 셈이다.
한 번은 현장에서 한 번은 기록에서.
버릴 것과 남길 것
저녁 무렵 배 선생님이 물었다.
"박사님 그래서 뭘 남겨야 해요?"
나는 답을 준비해 갔었다.
행정 제출 서류는 지자체에 원본이 남아 있으니 버려도 되고
유인물과 성명서와 사진은 남기고
회의록은 선별해서 남기고.
그런데 그날 그 답을 말하지 못했다.
그날 하루 종일 내가 받아친 파일을 보면
가장 중요한 내용은 종이에 있지 않았다.
배 선생님의 목소리에 있었다.
"선생님 저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뭔데요."
"종이 정리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게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 이야기를 녹음하고 싶습니다."
배 선생님이 웃었다.
"내 얘기를 뭐 하러요. 나는 그냥 여기서 일한 사람인데."
"오늘 하루 종일 선생님이 종이를 읽어 주셨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이 읽어 주신 것 중에 종이에 없는 게 훨씬 많았어요. 그게 이 단체의 진짜 기록입니다."
한참 조용했다.
탱고가 배 선생님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녹음하면 어디에 써요?"
"일단 텍스트로 옮겨서 보관하고요. 나중에 새로 오는 활동가들이 읽을 수 있게 할 겁니다. 그리고 다른 지역 단체들도 자기 기록 정리할 때 참고할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배 선생님이 잠깐 뒤 이렇게 말했다.
"그럼 좀 부끄러운 얘기도 해도 돼요? 우리가 잘한 것만 있는 게 아니라서."
"그게 제일 필요합니다."
실패한 기록이 남지 않으면 다음 사람은 같은 실패를 처음부터 다시 한다.
운동사에서 가장 비싼 손실은 승리의 기억이 아니라 실패의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날 저녁 상자 정리를 중단했다.
대신 배 선생님이 첫 녹음을 했다.
30분쯤이었고 대부분 1997년 이야기였다.
녹음을 마치고 배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이런 얘기를 이렇게 오래 해본 게 처음이에요."
30년을 활동한 사람이 자기 활동에 대해 길게 말해 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지역 운동이 외롭다는 말은 대개 사람이 적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상자는 어떻게 됐냐 하면 결국 아직 그대로 있다.
사무실은 더 작은 곳으로 옮기기로 했고
상자 17개는 배 선생님 댁 베란다로 갔다.
좋은 해결바카라은 아니다.
습기가 있는 곳이고 몇 년 뒤면 종이가 더 상할 것이다.
그래도 이달 말에 버려지는 것보다는 낫다고 우리는 판단했다.
판단이라기보다는 미룬 것에 가깝다.
지역 운동의 많은 일이 그렇게 미뤄지고 있다.
눈이 없어서 보인 것
돌아오는 길에 이상한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볼 수 있었다면 그날 어떻게 했을까.
아마 혼자 상자를 뒤졌을 것이다.
빠르게 훑고 분류하고 목록을 만들고 반나절이면 끝났을 것이다.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배 선생님의 이야기는 한마디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 소리 내어 읽어야 했고
소리 내어 읽으려면 종이를 한 장씩 손에 들어야 했고
손에 들면 그 종이를 쓰던 날이 떠오르고
떠오르면 말이 나온다.
접근성이 없어서 생긴 우회로가 결과적으로 더 깊은 기록을 만들었다.
이걸 두고 장애가 축복이라는 식으로 말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 말은 대체로 게으르고 대체로 무례하다.
다만 이런 건 말할 수 있다.
효율적인 방식이 언제나 좋은 방식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우리가 효율이라고 부르는 것 중 상당수는
그냥 사람을 건너뛰는 기술이라는 것.
기록학에는 원질서 존중이라는 원칙이 있다.
문서를 만든 조직이 그것을 쌓아 둔 순서를 함부로 흐트러뜨리지 말라는 뜻이다.
순서 자체가 정보이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그 원칙의 다른 판본을 하나 배운 것 같았다.
사람이 기억을 꺼내는 순서도 함부로 건너뛰면 안 된다.
배 선생님은 종이를 손에 들었기 때문에 그날을 떠올렸다.
목록만 봤다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기록을 다루는 일은 종이를 다루는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람이 기억을 꺼낼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그 조건은 대체로 느리고 비효율적이고 손이 많이 간다.
제목: 기록의 아키텍처 혹은 목소리에만 남아 있는 것들.
지역의 장애운동은 늘 부족하다는 말로 설명된다.
돈이 부족하고 사람이 부족하고 관심이 부족하다.
전부 사실이다.
그런데 그 부족함의 목록에 잘 오르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기억의 부족.
지역 단체들은 30년을 싸우고도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 정리해 둔 문서가 없다.
있는 것은 보조금 정산 서류와 실적 보고서뿐이다.
행정 위탁 구조가 운동을 사업으로 만든다는 말은 예산의 문제로만 이야기되지만
사실은 기록의 문제이기도 하다.
행정이 요구하는 양식에는 왜라는 칸이 없고
그 칸이 없는 채로 30년이 지나면 왜는 아무 데도 남지 않는다.
기록되지 않은 운동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것이 없다.
물려줄 것이 없으면 새로 온 사람은 매번 처음부터 시작한다.
매번 처음부터 시작하는 조직은 결국 지친다.
지역 장애운동의 세대 단절은 사람이 안 와서가 아니라
온 사람에게 건네줄 이야기가 없어서 생긴 일이기도 하다.
결론: 운동은 기억에서 자란다.
그리고 기억은 저절로 기록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 앉아서 듣고 받아 적어야 기록이 된다.
17개의 상자보다 68세 활동가의 두 시간짜리 목소리가 더 중요한 순간이 있다.
지역의 운동사를 남기는 일은 향수가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출발선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그나저나 집에 돌아와 보보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보보가 듣더니 말했다.
그거 구술사잖아. 우리 과에도 하는 사람 있어.
나는 소개해 달라고 했다.
보보가 조건이 있다고 했다.
소개해 주면 이번 주 커피는 계속 네가 내리는 걸로.
어차피 요즘 커피는 다 내가 내린다.
탱고는 그날 상자 냄새를 잔뜩 묻히고 와서 저녁에 발을 닦아야 했다.
30년치 종이 냄새를 온몸에 묻히고 다닌 셈이니 저 녀석도 나름의 기록 보관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