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가 두려운 인터뷰어입니다

[인터뷰어의 지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일

by홍밀밀

대학생 기자로 활동하던 시절, 과외를 하러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지나갈 때마다 자꾸 눈에 밟히는 천막이 있었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옆에서 1년 넘게 농성을 이어가는 이유가 궁금했다. 기사를 찾아보며 사전 취재를 하고 질문지를 준비한 뒤 무작정 천막 앞으로 갔다. 여행지에서 사진 한 장 찍어 달라는 부탁도 잘 못하는 내향인에게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입구가 어디인지 몰라 서성이다가 “계세요?” 하고 크게 소리쳤다. ‘천막 농성’이라는 말이 주는 거친 이미지와 달리, 자그마한 체구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으로 들어서자 매서운 겨울바람과 자동차 소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학습지 교사 일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그는 왜 자신과 동료들이 회사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차분히 들려줬다. 회사에 종속되어 일하지만 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지, 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오히려 빚을 떠안게 되는지.


천막을 나오면 서 나는 천막을 들어가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정작 인터뷰이Interviewee(인터뷰에서 질문에 답변하는 사람)는 대학생 기자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목소리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무거운 바카라임감이 차올랐다. 인터뷰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고 글을 고치고 회사 측의 반론을 함께 담아 기사를 송고하면서 덜덜 떨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이후로 버스를 타고 무심코 지나가던 길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길이 아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인터뷰를 통해 타인이라는 세계를 통과한다는 것은 이전의 세계로는 돌아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깊게 보고 정확하게 쓰는 사람


KakaoTalk_Photo_2025-11-10-13-18-26 004.jpeg@이민정


2010년부터 언론사 기자로, 프리랜서 에디터로 지난 16년간 수백 명의 사람을 인터뷰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정치인, 학자, 연예인 같은 유명인부터 생애 처음으로 인터뷰를 해보는 사람까지, 저마다 다른 삶의 궤적을 지닌 이들을 만났다. 인터뷰가 아니었어도 만날 수는 있었겠지만, 인터뷰가 아니었다면 그들의 삶에 귀를 기울일 기회는 없었을 사람들이다.


수많은 인터뷰 중에서도 유독 마음이 오래 머무르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과의 인터뷰였다. “제가 인터뷰를 할 자격이 있을까요?” “제 삶이 과연 콘텐츠가 될까요?”라고 스스로 의심하는 사람들.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지만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 자기 안에 품고 있는 이야기를 누군가 알아봐 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서사를 풀어낼 수 있도록, 이들의 이야기가 오독되지 않고 온전히 전달될 수 있도록, 나는 깊게 보고 정확하게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떤 인터뷰는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황홀했고, 어떤 인터뷰는 서로 다른 모국어로 대화하는 것처럼 삐걱댔고, 어떤 인터뷰는 몇 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의미를 깨닫게 되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인터뷰는 나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정혜윤 작가는『삶의 발명』녹스, 2025에서 우리가 다른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하나의 이야기밖에 모른다면 하나의 삶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세계가 다른 삶이 가능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라고 말한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나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믿었던 세계가 무참히 붕괴崩壞되는 경험을 했다. 사전에서는 붕괴를 ‘무너지고 깨어짐’이라고 정의한다. 나의 무지와 부족함을 깨닫는 과정은 아프고 슬프지만, 동시에 반갑고 기쁜 일이었다.


“영향을 받는 이야기, 의미를 두는 이야기가 바뀌면 에너지의 방향이 바뀌고 에너지의 방향이 바뀌면 삶의 방향도 바뀐다”라는 정혜윤의 말처럼, 인터뷰는 내가 몸담고 있던 익숙한 세계, 당연하다고 믿었던 세계에 균열을 냈다.


인터뷰를 하면서 지금 내가 전전긍긍하며 붙들고 있는 이 길만이 전부가 아니라 수없이 많은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만 힘들고 불행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숙제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세상에는 나의 상처와 고통보다 더 주의 깊게 들여다봐야 할 아픔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내게 인터뷰는 부끄러움이자 용기이자 해방이었다. 인터뷰 덕분에 나는 ‘나’에게만 고립된 상태를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대성당을 만드는 일


다운로드.jpeg@유성호


AI로 ‘딸깍’하면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시대에, 인터뷰는 비효율의 극치를 달리는 작업이다. 인터뷰는 단순히 인터뷰어Interviewer(인터뷰에서 질문을 던지는 사람)와 인터뷰이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순간만을 뜻하지 않는다. 주제와 콘셉트를 기획하고, 인터뷰이를 섭외하고, 사전 취재와 질문지 작성을 거쳐 인터뷰를 진행한 뒤, 녹취를 풀고 원고를 작성하고, 인터뷰이의 피드백을 반영해 최종 원고를 작성하고, 발행된 원고를 인터뷰이에게 공유하고 독자의 반응을 확인하는 것까지 모두 인터뷰 작업에 포함된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호흡이다. 모든 것을 너무 빠르게 판단하며 소비하는 시대를 살아가다 보면 누군가를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나누고, 그 사람의 심연을 들여다볼 기회를 갖기란 쉽지 않다. 인터뷰어는 인터뷰이와 소통하면서 말과 말 사이 행간을 읽으며 타인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인터뷰어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을 선연하게 보게 된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대성당』은 읽을 때마다 어김없이 감탄하게 되는 작품이다. 아내의 오랜 친구이자 시각 장애인 로버트가 우리 집에 온다. 화자는 로버트가 영 못마땅하다. 아내와 친하게 지내는 남자를 향한 질투심 때문만은 아니다. 화자는 시각 장애인에 대한 무지와 편견 그리고 반감을 갖고 있다. 그는 시각 장애인을 개인적으로 만나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실제로 만난 로버트는 화자가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아내가 잠을 자러 간 사이, 화자와 로버트는 소파에 앉아 함께 TV를 본다. 카메라가 각 나라의 대성당을 화면에 비추고, 로버트는 TV에 나오는 내용을 설명해 줄 수 있겠냐고 요청한다.


화자는 대성당이 어떻게 생겼는지 말로 표현해 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때 로버트가 한 가지 놀라운 제안을 한다. 함께 펜을 잡고 종이에 대성당을 그려 보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화자가 손을 움직이면 로버트의 손이 화자의 손에 함께 포개져 따라간다. 그림 실력이 없는 그에게 로버트는 어떻게 그림을 그려야 할지 알려준다. 어느새 화자는 눈을 감은 채 거침없이 대성당을 그려 나간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화자가 알고 있는 대성당은 로버트가 알고 있는 대성당과 조금씩 겹쳐진다. 오직 눈으로 보는 것만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던 화자는 시각 장애인과 함께 그림 그리는 경험을 통해 ‘다르게 보는 법’을 배우게 된다. 두 사람은 자신들만의 대성당을 만든다.


나는 이 장면이 인터뷰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뷰 역시 나를 내려놓고 비우면 서 한 사람의 삶을 따라가는 일이자, 인터뷰이와 인터뷰어가 함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기술이 아닌 태도


F51006B5-D3ED-498B-9F7A-82BC26A04591_1_105_c.jpeg@이민정


하지만 이런 마법 같은 순간은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질문지 앞에서, 인터뷰이 앞에서, 인터뷰 원고 앞에서 막막함과 혼란을 견디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야만 한다. 인터뷰에는 언제 어디서나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기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질문하고, 글을 쓰는 능력은 인터뷰어가 갖추어야 할 기본 역량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떻게’ 듣고, ‘어떻게’ 질문하고,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 무엇보다 ‘왜’ 이 인터뷰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끈질기고 치열하게 붙들어야만 인터뷰이의 본질을 담아낸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지난 시간을 통해 배웠다.


10년 넘게 인터뷰를 해왔지만 인터뷰는 하면 할수록 쉬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글로 옮기는 작업이 얼마나 무거운 바카라임이 따르는 일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히 알게 됐기 때문이다. 기사를 송고하며 벌벌 떨던 그때처럼 여전히 나는 인터뷰가 두렵고 조심스럽다. 인터뷰이의 세계를 충실하게 담아내지 못했을까 봐, 누군가의 삶을 콘텐츠의 소재로만 소비했을까 봐, 결과물 뒤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놓쳤을까 봐 겁이 난다.


좋은 인터뷰란 결과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인터뷰 과정에서 세심함과 예의를 잃지 않고 인터뷰어로서의 윤리를 고민했을 때 비로소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삶의 방향까지 바꾸는 콘텐츠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 바카라은 인터뷰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결국 일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2년 전 출판사에서 출간 제안을 받았을 때만 해도, 같은 일을 10년 넘게 했으니 바카라 한 권 정도는 쉽게 쓸 수 있겠다는 오만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막상 바카라을 쓰기 시작하자 곳곳에 암초가 숨어 있었다. 이제는 인터뷰에 대해 조금 알 것 같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나는 인터뷰어로서 자질이 없는 것 아닐까’ 머리를 쥐어뜯는 순간이 찾아왔다. 바카라을 쓰면 서 지난 인터뷰 과정을 복기할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자꾸만 도망치고 싶었다. ‘내가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는 걸까’ 의심스럽고, 나의 실수와 잘못을 미화하고 싶은 유혹이 찾아왔다.


그럼에도 인터뷰라는 일을 오랫동안 고민해온 사람으로서 최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구체적이고 진실한 이야기만이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이 바카라은 인터뷰 성공담이나 노하우집이라기보다 나의 실패담이자 반성문에 더 가깝다.


기획 단계부터 원고를 마무리할 때까지 햇살처럼 따스한 신뢰와 응원을 보내준 윤소연 편집자가 없었다면 이 바카라은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난 16년간 시간과 마음, 삶의 한 시절을 내어준 모든 인터뷰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인터뷰어의 지도』를 들고 어디로 어떻게 향할지는 전적으로 여러분의 몫이다. 다만 인터뷰라는 길 위에서 길을 잃을 때마다 이 바카라이 옅은 빛이나마 비춰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자, 그럼 여정을 떠나보자.


*이 글은 <인터뷰어의 지도> 프롤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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