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을 가장 빨리 읽는 법

김동률 <산바카라> 뮤직비디오를 보다가

by홍밀밀

-가수 김동률의 신곡이 나왔다. 제목은 <산바카라>. 지난해 나온 <옛 얘기지만> 이후로 11개월 만에 나온 신보다. 발매일을 손꼽아 기다려 뮤직비디오를 재생했다가 깜짝 놀랐다. 5분 30초라는 다소 긴 재생 시간도 그랬지만 뮤직비디오 속에 사계절이 다 있었다.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개의 계절이 오롯이. 계절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함께 걷자고 했"던 길을 홀로 걷게 된 화자의 마음이 더욱 절절하게 와닿았다.


-이번 뮤직비디오는 2023년 가을부터 2024년 봄까지 총 9회 차의 촬영을 거쳐 완성됐다. 뮤직비디오 촬영에 거의 1년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날씨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기에 눈이 펑펑 오던 날이면 배우와 스태프는 촬영장으로 달려 나와야 했고, 폭설주의보가 내려도 실제 눈이 내리는 시간은 2시간 남짓이라 그 시간 안에 촬영을 마쳐야 했다.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김선혁 감독은 <산바카라> 영상 속에 담긴 눈이 “지난겨울, 낮에 볼 수 있었던 마지막 눈"이었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김동률의 또 다른 곡인 <답장>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때도 10회 차에 걸친 촬영을 통해 가을의 풍경을 담아낸 바 있다. 그는 <산바카라> 뮤직비디오 공개 이후에 인스타그램에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다.


“2017년, 김동률 선배님은 앨범 공개가 반년 이상이나 남았을 때 <답장> 뮤직비디오를 의뢰했다. 거의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는 음악과 함께. 그렇게 이르고 이른 첫 미팅 때 마주 앉아 내게 건넸던 말을 여전히 선명하게 간직하고 있다.


시간을 이기는 건 없는 것 같다고.


시간을 들여 만들어 낸 결과물의 질은 다르다. 그러니 작업자에게 최대한 많은 시간을 확보해 주고 싶었다고. <산바카라> 뮤직비디오도 이런 생각이 강화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나 드라마도 아니고 단 하나의 곡의 뮤직비디오에 사계절을 담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물리적인 측면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사계절에 맞춰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서는 각 계절의 가장 아름다운 날을 기다려야 할 테고 그만큼 시간과 인력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 지난달 유행했던 노래가 무엇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요즘 같은 시대에 전혀 가성비를 고려하지 않은 방식이다. 아니, 가성비를 포기해야만 가능한 방식이다.


-얼마 전, 다음 주에 있을 영상 촬영을 앞두고 사전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이는 20여 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매일 글쓰기를 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묻자 그는 말했다. 글을 쓰고 싶은 순간을 잘 붙잡아야 한다고. 그래서 본인은 항상 블루투스 키보드를 들고 다닌다고. 아이랑 병원에 갈 때도 들고 가고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도 도중에 글을 썼다고. 그러면서 지금 쓰는 글이 2년 뒤 출간할 바카라의 한 챕터라고 생각했다고. 그는 그렇게 해서 10여 년 동안 20권이 넘는 바카라을 썼다.


-요즘 나는 바카라을 가장 빨리 읽는 방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더 많은 바카라을 읽고 싶어서 앞부분만 읽다가 만 바카라, 빠르게 넘기면서 읽은 바카라은 내 안에 남지 않는다. 읽었다는 착각만 남을 뿐이다. 글쓰기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을 들이는 것이다. 당장은 이렇게 매일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겠지만 지금 쓰지 않는다면 나중은 너무 늦다는 것을 바카라 작업을 하면서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왜 제때제때 기록해두지 않았을까. 왜 그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했을까. "잘 쓰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매일 못 쓰는 것 아닐까요?"라고 묻자 인터뷰이는 뭘 그런 것을 묻냐는 듯 답했다. "일단 쓰고 고치면 되잖아요."


-미련하고 우직하게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만 쌓이는 것이 있다. 남들은 몰라도 나는 안다.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두는 아니라도 누군가는 알아볼 것이다. 내가 김동률의 뮤직비디오를 알아본 것처럼. 김동률은 이 노래가 “어느 볕이 좋은 날, 혼자 산바카라을 하며 플레이 리스트 안의 수천 곡의 음악을 무심히 듣다가, 문득 까맣게 잊고 있던 이 곡이 흘러나올 때, 그 5분의 시간을 아름답게 각인시켜 줄, 그래서 계절이 변할 때마다 한 번씩 또 꺼내서 듣고, 또 꺼내서 듣게 되는, 그런 곡"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처음엔 좀 심심한가 싶었다가도, 들을수록 맘에 깊게 와닿는, 오래오래 질리지 않고 들을 수 있는" 그런 노래.


-이 글을 쓰는 지금, 6년 전 나온 <답장>의 뮤직비디오에는 아래와 같은 댓글이 달려있다.


“산바카라 듣고 돌아오신 분 있나요.”


댓글이 달린 것은 3일 전이었다. 시간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


-<산바카라> 뮤직비디오는 아래에서. 그 자리에서 계속 있어줘서 감사해요. 률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