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3월 질문의 편지
슬롯생활 삼십 년 하고 은퇴하신 분께 뭐가 제일 좋으시냐고 여쭤본 적이 있다. 그때 그분께서 한치의 망설임 없이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도 되는 거라고 하셨다. 굳이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더 이상 엮이지 않아도 되는 것에서 진정한 자유로움을 느끼신다고. 생각해 보면 회사를 그만 둔 후에 나 역시 이 부분에서 큰 자유로움을 느꼈던 것 같다. 밥 먹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 평일 대낮의 인구 밀도 낮은 도심을 마음껏 누빌 때 역시 자유롭다고 느꼈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독일의 나체주의자들 영상을 봤다. 그들은 웬만하면 모든 것을 나체로 활동한다. 나체로 밥도 먹고 탁구도 치고 요가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수영도 했다. 레스토랑에 갈 때 '제가 나체주의자인데 옷을 안 입고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을 수 있을까요?'라고 전화해서 물어본다고 했다. 그러면 주인 성향에 따라 괜찮다고 오라고 하면 나체로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온다고. 식당 주인이나 그 식당에서 밥을 먹는 비나체주의자 사람들도 그냥 저 사람은 나체주의자니까 하고 그들의 그런 행동을 존중해 준다고 한다는 것이 동양인인 나에게는 적잖이 충격이었다. 그들에게 나체로 살아가면 뭐가 좋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나체로 생활할 때 바람이 살결에 닿는 그 느낌이 정말 좋다고. 온몸으로 자유로움을 느끼게 된다고.
나는 나체주의자야말로 개인의 자유로움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것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누군가는 그들이 타인에게 불쾌함이나 당황스러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그들이 그들의 자유를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해줄 것이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나는 과연 내 삶에서 얼마나 자유로움을 느끼며 추구하며 살고 있으며, 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인생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나의 자유를 추구한 경험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 밀은 타인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타인이 자유를 얻기 위한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자유보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없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누구든 시도해보고 싶다면, 자기가 원하는 삶의 양식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실천적으로 증명해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각자의 고유한 개성이 아니라 전통이나 다른 사람들이 행하는 관습에 따라 행동하게 되면, 결국 개인의 행복 그리고 슬롯의 다양성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내 삶에서 나의 고유성대로 자유를 추구해본 경험이 얼마나 있었을까. 이 글을 보는 당신은 어떨까.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가장 자신의 방식대로 자유로웠던 경험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 홍지
올해 2월에 달랏이라는 곳에 여행을 다녀왔다. 일주일 동안 혼자 떠난 여행이었다. 다른 나라에 혼자 여행을 간 건 난생 처음이었다. 그 무렵 나는 모든 게 지긋지긋했고, 번아웃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그곳이 어디든 한국어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달랏에 도착해서 일주일 동안 관광은 하지 않고 거의 숙소에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 돈으로 500원, 1000원 정도 하는 음식을 사먹고 그마저도 정해진 시간 없이 내가 먹고 싶을 때 먹었다. 밤새 음악을 틀어놓고 술을 마시며 글을 쓰기도 했다. 골목 속에 숨어 있는 수제와인 가게를 겨우 찾아내 산딸기 와인을 사오기도 했다. 그 가게는 젊은 부부와 아이, 아내의 여동생으로 보이는 가족이 거주하는 집이기도 했다. 나는 그 집 마루에 앉아 시음을 하고 와인을 샀다. 내가 앉아 있는 사이 그 집의 아이는 입으로 소리를 내며 자동차를 가지고 놀았다. 누군가와 무엇을, 언제 해야 한다는 의무감 없이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것을 했다. 일주일 후 나는 해야 할 일들이 있는 이곳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지긋지긋한 마음은 불현듯 찾아오지만 그래도 조금은 견딜 만해졌다. 나는 내가 끊임없이 주변에 신경쓰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내가 나만의 방식대로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은 혼자 여행을 떠날 때뿐인 것 같다. 이번 여행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 포도봉봉
침대에 누워 창밖으로 넘어가는 해의 노을을 본다. 오늘 침대에서 몇 번이나 일어났는지 곱씹어 본다. 휴일에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의식은 비슷한 시간에 제자리로 돌아온다. 자율 반사처럼 머리맡에 휴대폰과 TV 리모컨을 잡아 든다. 아무런 메세지도 없다. 광고 메일들을 지운다. 멍하니 누워 TV를 본다. 허기진 위가 쓰라리다. 무엇인가 차려 먹기가 무척이나 귀찮아 물병을 집어 들고 들이킨다. 희석된 위액만큼 나의 의식도 희석된다. 눈이 떠진다. 잠을 자도 피곤한 건 기분 탓일 것이다. 냄비에 물을 올리기 위해 일어나본다. 순간 어질하다. 너무 오래 누워 있었나 생각 해본다. 라면을 하나 끓여 먹고 다시 침대에 누워 전화기를 뒤적인다. 가십거리들의 헤드라인을 훑어보다 지도를 켠다. 목적지는 없다. 집 주변, 동네 주변을 확대했다 축소했다 한다. 배가 부르니 다시 의식이 흐려진다. 다시 의식이 돌아온 것은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의 신체에 대한 일말의 죄의식 때문일 것이다. 바깥 날씨가 좋은 날은 더욱 그렇다. 무작정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선다. 아무런 음악도 없이 집 앞 강가를 따라 난 산바카라로를 걷는다. 유람선이 오가는 선착장이 나올 때쯤이면 상점들과 음식점들이 늘어선 구시가지로 접어든다. 사람들에 섞여 구시가지 몇 블럭을 무작정 걷다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샤워를 한다. 다시는 외출이 없을 것이란 천명(闡明)이다. 샤워를 마치고 다시 침대에 누워 창밖으로 넘어가는 해의 노을을 본다. 오늘 침대에서 몇번이나 일어났는지를 곱씹어 본다. - 20세기소년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다, 재미와 자유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본다. 지속 시간이 짧지만 뭐랄까 재미와 뒤섞여 가장 자유롭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은 친한 사람들과 즐겁게 떠들고 놀고 먹으며 마실때인 듯하다. 지금도 일상에서 계속에서 누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삶의 전반에 있어 자유를 추구하고 느끼고 있냐고 묻는다면, 절름발이 같은 자유를 누리고 있는 듯하다. 기본값으로 관습과 제도와 현실에 얽매여 있는 것이 있다. 지속 시간이 짧은 자유의 순간들은 많지만, 지속 시간이 긴 자유를 획득하는 것은 힘든 일 같다. 지속 시간이 짧은 자유의 순간에 도취될 수록 삶의 전반에서 자유롭다는 느낌이나 생각을 갖기는 점점 어려월 질 것 같다. 그런 자유는 유흥처럼 한번의 구매로 온전히 소유할 수 없고 계속해서 재구매해야하는 소비상품들과 같다. 짧은 시간의 자유를 가득 채워 전반적으로 늘 자유롭다는 느낌을 갖는 방법도 있겠지만, 자기가 생각하는 삶의 양식대로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어려운 일 같다. 그런의미에서 나는 아직 자유로웠던 경험은 없었던 것같다. 반쯤의 자유도 값지긴 하지만,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조금 더 고민해봐야겠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양식은 무엇인지부터 정리하는 것을 포함해서 죽기 전에 한번쯤은 자기 방식대로 온전히 자유롭다는 느낌은 가져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 노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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