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자신의 SNS에 가볍게 던져진 한 줄의 말이었습니다.
“호평 받는 유튜브 클립 하나 봤는데 여성 아이돌과 피디가 사이좋게 노노 주고받고 있어 무척무척 속상했음”
이 별거 아닌 거 같고 소녀 감성적인 말투의 이 글은 겉으로 보여지고 들려지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 지금 이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네, 저 말은 MBC 한 PD(A)가 리센느 원이라는 멤버가 영상에서 "무섭노"라고 말한 것을 갖고 일베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다는 언급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리센느 원이라는 멤버는 일베 표현을 쓰며 조롱하는 철없는 사람이냐, 아니냐 라는 논쟁에 중심에 세워놓게 되는 말이 되었습니다.
이 지옥문을 연 것은 A가 사람을 보기 전에 프레임을 먼저 올렸고, 맥락을 보기 전에 의심을 먼저 퍼뜨렸기 때문입니다. 원이라는 사람의 고향, 말투, 생활언어, 당시 상황은 뒤로 밀렸습니다. 대신 “노노”라는 자기 머릿속의 감별 틀이 먼저 작동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이 사안은 언어에 대한 대화가 아니라, 한 사람의 생활언어를 공론장에서 의심의 대상으로 올려놓는 사건이 되어버렸습니다.
원이에게 “무섭노”는 새로 배운 말이 아닙니다. 억지로 만들어낸 말도 아닙니다. 거제에서 살아온 사람이 몸에 익혀온 생활언어의 일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태에서는 그 출발점이 통째로 무시됩니다.
“어제 태어나 사투리 모르냐는 말 들은 중년의 경상도 네이티브 심정... 여러분이 그 혐오표현을 내고장 사투리로 알고 계신 게 절 슬프게 하는 거에요. 아이고 마 대다 그냥 경상도 말에서 노를 다 들어내뿌자 그게 우리가 이 슬롯에 빚을 갚는 길이라면”
겉으로 보면 이 말은 굉장히 비장하고 도덕적으로 들립니다. “슬프다”, “빚을 갚는다”, “혐오표현을 거부해야 한다”. 그런데 저는 바로 이 대목이 가장 이상했습니다. 왜냐하면 저 말은 실제 그 말을 써 온 사람들보다, 그 말을 바깥에서 판단하는 사람의 확신을 더 위에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사안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그 지점이었습니다.
실제로 거제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은 뭐라고 말하느냐 하는 점입니다.
바로 움직인 것은 경남신문이었습니다. 실제로 거제에 가서, 80년 가까이 그곳에서 살아온 토박이 할머니들에게 “무섭노”를 쓰느냐고 물었습니다.
돌아온 답은 단순했습니다.
“무섭노나 무섭다나 다 그런 말 아니냐”, “괜찮노, 사투리 아이가”, “그거 완전 사투리지”
저는 이게 본질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그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 실제로 그 말을 입에 붙여 써온 사람들. 실제로 그 언어를 생활로 써온 사람들이 “그건 우리 말 맞다”고 말하는데, 바깥의 누군가는 자기 확신을 내려놓지 않습니다.
이건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닙니다. 서로 다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의 잘못됨 때문입니다. 오래 써온 말을, 바깥의 확신이 와서 다시 가르치려 드는 모양새입니다. 그것도 아주 그럴싸한 표정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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