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찾아본 서산해미읍성축제

HAEMI UNIVERSE : 1421, 시간의 문이 열리다

해미읍성에 찾아온 가을은 국화의 색과 오래된 돌의 질감, 나무 아래의 여유로 기억될 것 같은 여행지다. 축제 가 열리기 전 미리 걸어본 길에서 올해의 ‘시간의 문’은 이미 조금 열려 있었다. 그 문 너머에는 1421년의 역사와 2026년의 사람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축제가 시작되기 하루 전의 공간에는 특별한 분위기가 있다. 곧 사람들로 채워질 길을 조금 느리게 걸을 수 있고, 화려한 공연 뒤에 가려질 풍경도 먼저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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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7일 찾아간 서산 해미읍성은 그런 시간을 품고 있었다. 성문 앞에는 국화 화분이 놓여 있었고 성벽 위로 이어진 깃발은 오래된 돌담에 축제의 기운을 더하고 있었다. 흐린 하늘 아래 노란색과 자주색 꽃이 유난히 또렷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 국화꽃의 가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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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의 남문인 진남문을 바라보며 잠시 걸음을 늦추었다. 크기가 다른 돌들이 맞물려 만든 성벽과 그 위에 자리한 문루는 오랜 세월을 견딘 공간의 무게를 보여준다. 성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잔디밭과 나무, 낮게 이어지는 길이 이어진다. 축제 전날에도 산바카라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길에는 여유가 남아 있었다. 나무 아래에 머물거나 옛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성 안의 차분한 풍경과 어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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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23회 서산해미읍성축제는 10월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 동안 해미읍성 일원에서 열린다. 주제는 ‘HAEMI UNIVERSE : 1421, 시간의 문이 열리다’이다. 축성의 역사와 연결된 1421년을 출발점으로, 관람객이 공연과 체험을 통해 해미읍성의 시간을 만나도록 구성한 역사문화축제다. 개막식은 10월 9일 오후 7시로 안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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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이라는 표현은 실제 성문을 통과해 들어갈 때 더욱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같은 문을 지나더라도 누군가는 군사적 임무를 위해 들어왔을 것이고, 누군가는 관아를 찾아왔을 것이다. 오늘의 여행자는 산바카라하거나 축제를 즐기기 위해 이 문을 지난다. 공간은 남아 있지만,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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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열린 공간은 아니었다. 국가유산 안내에 따르면,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고 충청 지역의 군사를 지휘하기 위해 덕산에 있던 충청병마도절제사영을 해미로 옮기면서 1417년 축성을 시작해 1421년 완공했다. 이후 1652년 병영이 청주로 옮겨가기 전까지 약 230년 동안 충청 지역의 중요한 군사 거점으로 기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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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사를 알고 보면 성벽의 의미가 조금 달라진다. 여행자의 눈에는 오래된 돌담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바깥의 위협을 막아주는 경계였다. 성을 쌓고 지키는 일에는 많은 사람의 노동이 필요했을 것이다. 돌 하나를 바라보며 그 돌을 옮기고 맞추었을 손을 생각하게 된다. 600년이 넘는 역사는 왕과 장수의 이름뿐 아니라, 이름을 남기지 못한 사람들의 수고 위에도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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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의 건물 역시 당시의 생활과 통치 구조를 보여준다. 동헌은 병마절도사와 현감겸영장이 업무를 보던 곳으로, 일반 행정과 재판 등이 이루어졌다. 관리와 가족의 생활공간이었던 내아는 공무를 수행하던 동헌과 다른 성격을 지녔다. 건물 사이를 걷다 보면 해미읍성이 군사시설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이 일하고 살아가던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고 이곳의 역사를 웅장함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해미읍성에는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의 아픔도 남아 있다. 옥사와 회화나무 등은 신앙을 이유로 사람들이 투옥되고 고통받았던 시간을 전하고 있다. 축제를 즐기는 공간 안에 기억하고 돌아보아야 할 장소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잔디밭을 가로질러 걷다가 오래된 나무 앞에 서면, 시선이 자연스럽게 위로 향한다. 넓게 뻗은 가지 아래로 오늘의 사람들이 지나간다. 나무가 오래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계절과 사람을 지나왔다는 뜻일 것이다. 해미읍성에서는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바라보는 일과 그 풍경에 남은 역사를 생각하는 일이 함께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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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축제의 주요 프로그램도 이러한 공간의 역사에서 출발한다. 태종대왕 강무행렬과 대동축성행렬은 왕의 군사훈련과 성을 쌓던 사람들의 모습을 공연으로 만나는 프로그램이다. 주제공연 ‘달이 되어라’, 무예공연, 지역의 문화유산을 담은 ‘서산 헤리티지’도 예정되어 있다. ‘해미 더 클래식’과 해미 EDM파티 등은 오래된 성 안에 오늘의 음악을 더한다.


행렬을 바라보는 순간에는 산바카라길이 역사의 무대로 바뀔 것이다. 전날에는 조용히 걸었던 길에서 사람들이 복식을 갖추고 움직이고, 성벽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역사유산이 축제의 장소가 된다는 것은 건물을 보여주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안에서 일어났던 일을 오늘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게임형 미션 체험인 ‘RPG 해미귀환’을 비롯해 무과시험체험, 전통복식체험, 승마와 국궁, 서예, 연날리기 등이 안내되어 있다. 거북차 디지털 드로잉과 어린이 놀이존도 포함되어 있어 가족 방문객이 각자의 관심에 따라 축제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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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는 활을 쏘거나 옛 복식을 입어보는 경험이 역사에 대한 첫 질문이 될 수 있다. 왜 이런 옷을 입었는지, 성벽은 어떻게 쌓았는지, 이곳에서 누가 생활했는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바카라에서 읽은 내용이 실제 장소와 연결될 때 역사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기억된다. 어른 역시 체험을 통해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시대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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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또 다른 해미읍성이 준비되어 있다. 미디어파사드와 야간 미디어아트, 경관조명 콘텐츠가 성 안팎의 풍경을 바꾸고, 드론 라이팅쇼도 예정되어 있다. 블랙이글스 축하비행과 해미 AI영화제 역시 올해 프로그램에 포함된다. 전통혼례 재현, 파수꾼 교대의식, 지역예술인과 읍면동 참여공연은 지역 주민의 참여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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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보았던 성벽에 밤의 빛이 더해지면 성벽의 모습도 달라질 것이다. 오래된 공간에 새로운 기술이 들어오는 장면은 올해 축제의 의미와도 연결된다. 역사를 오늘의 언어로 다시 전하면서, 사람들이 그 장소에 관심을 갖고 머물도록 만드는 것이다. 서산시가 안내하는 지역상생 프로그램 ‘해미해피데이’처럼 성 밖의 상권과 주민으로 이어지는 구성도 축제가 지역 안에서 함께 움직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10월 8일의 방문에서는 개막 이후의 공연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대신 축제를 기다리는 해미읍성의 표정을 천천히 살펴볼 수 있었다. 길을 따라 놓인 국화 화분, 넓은 잔디밭, 가지를 펼친 나무, 성문 앞을 오가는 사람들이 먼저 눈에 남았다. 곧 많은 사람을 맞이할 공간이 잠시 고른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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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가 시작되면 이곳에는 음악과 행렬,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해질 것이다. 그때에도 한 번쯤은 성벽의 돌을 살펴보고, 동헌 앞에 머물고, 회화나무에 남은 기억을 생각해 보면 좋겠다. 즐거운 하루를 보내는 동안 이 장소가 왜 지금까지 남아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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