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사이로 한 장의 그림이 펼쳐지는 공간, 홍성 그림이 있는 정원
10월이 시작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주일이 지나가고 있다. 때론 여행하다 보면 많은 것을 보려고 걸음을 서두르게 되는 곳이 있고, 조금 덜 보더라도 천천히 머물고 싶은 곳이 있다. 홍성의 그림이 있는 정원은 후자에 가까운 여행지다. 길을 따라 나무를 바라보고 꽃이 핀 자리에서 잠시 멈춰보며 지나온 길을 한 번 돌아보는 동안 정원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진다.
처음에는 나무가 많은 곳으로 보이지만 걸을수록 나무와 바위, 꽃과 길 사이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홍성군 광천읍에 자리한 이곳은 ‘그림 같은 수목원’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름을 떠올리며 걷다 보면 그림은 반드시 액자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가지가 뻗어 나간 방향과 길이 휘어지는 모양, 낮은 꽃들이 둘러싼 바위까지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정원에서 먼저 눈여겨볼 것은 소나무다. 사시사철 푸르름이 있는 소나무는 줄기가 곧게 올라가는 나무도 있지만 몸을 기울이거나 가지를 옆으로 길게 펼친 나무도 있다. 짙은 초록의 잎 아래로 드러나는 줄기를 바라보면 저마다 다른 자세로 자리를 지켜온 시간이 느껴진다. 소나무를 중심으로 조경된 이 정원의 특징은 꽃이 적은 자리에서도 풍경의 중심을 잡아준다는 데 있다.
소나무를 감상할 때는 나무 한 그루만 가까이 바라보는 것과 조금 떨어져 주변까지 함께 보는 것을 번갈아 해 보면 좋다. 가까이에서는 줄기의 굴곡과 나무껍질의 결이 보이고 멀리에서는 가지 아래로 열린 공간과 뒤편의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같은 나무인데도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다른 풍경이 된다. 길 위로 뻗은 가지를 함께 바라보면 나무가 산바카라로에 그늘과 깊이를 만들어주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산바카라로 가장자리에 이어지는 분홍빛 꽃들은 정원에 부드러운 색을 더해주고 다. 바위 곁에 모여 피어 있거나 낮은 경계를 따라 이어지는 꽃들은 시선을 발밑으로 내려오게 한다. 위로는 소나무의 짙은 초록이 펼쳐지고 아래로는 작은 꽃들이 색을 보태면서 풍경에 높낮이가 생긴다. 꽃을 가까이 담아보는 것도 좋지만 꽃길 너머로 산바카라로가 이어지는 모습을 함께 보면 이곳의 분위기를 더 잘 느낄 수 있어서 추천해 본다.
정원의 길은 조금씩 휘어지며 다음 풍경을 보여준다. 길이 굽는 곳에서는 나무 뒤에 가려졌던 공간이 나타나고, 몇 걸음 더 옮기면 꽃과 바위의 배치가 새롭게 보인다. 이런 자리에서는 앞만 보며 걷기보다 잠시 옆을 바라보거나 지나온 방향을 돌아보는 것이 좋다. 들어올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무의 형태가 돌아보는 순간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바위 사이로 이어지는 계단과 돌이 놓인 공간도 감상할 만하다. 넓고 비교적 평탄한 산바카라로와 달리 이곳에서는 시선이 자연스럽게 위아래로 움직인다. 바위의 거친 표면 옆으로 잎이 겹쳐지고 그 사이에 길이 이어지면서 작은 숲 속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 정원이 꽃과 나무를 심는 일만으로 완성되는 공간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풍경이다. 돌의 크기와 놓인 방향도 주변 식물의 모습을 다르게 보이게 한다.
나무와 꽃 사이에서 만나는 조형물은 산바카라에 가벼운 변화를 준다. 푸른색 찻잔을 겹쳐 놓은 듯한 조형물은 짙은 녹음 속에서 또렷하게 드러난다. 자연을 바라보다가 익숙한 사물의 형태를 만나니 잠시 상상할 여지가 생긴다. 조형물만 화면에 담기보다 주변 소나무와 바위, 꽃을 함께 넣어보면 정원 안에서 그 색과 모양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연못 주변에서는 걸음을 조금 더 늦춰도 좋다. 물가의 나무와 조형물, 하늘을 함께 바라보면 숲길과는 다른 여백이 느껴진다. 흐린 날에는 색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나무의 윤곽과 공간의 구성이 도드라진다. 햇빛이 강한 날과는 다른 방식으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셈이다. 물 위에 비친 모습이 보인다면 실제 풍경과 반영을 번갈아 바라보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다.
그림이 있는 정원에는 사람이 오랫동안 나무를 돌보며 공간을 만들어온 이야기도 담겨 있다. 설립자 임진호 씨가 사고로 몸을 다친 아들을 위해 나무를 수집하고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는 배경은 이곳의 풍경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가지를 펼치기까지 필요한 시간을 생각하면, 정원을 걷는 일이 누군가가 쌓아온 시간을 만나는 일이 되기도 한다.
홍성의 그림이 있는 정원을 감상하는 방법은 어렵지가 않다. 마음에 드는 나무 앞에서 멈추고 꽃길의 굽이를 따라가고, 바위와 잎이 겹쳐지는 모습을 바라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정원을 모두 둘러보았다는 사실보다 어느 가지 아래에서 오래 서 있었는지, 어떤 길을 돌아보았는지가 더 선명하게 남을 수 있다.
정원을 나서며 떠올리게 되는 것도 그런 풍경들이 머리에 남아있게 된다. 길 위로 넓게 펼쳐진 소나무 가지, 바위 옆에 피어난 가을의 꽃과 나무 사이로 이어지던 산바카라로. 걸을 때는 각각의 풍경이었지만 돌아보면 한 장의 그림처럼 이어진다. 그림이 있는 정원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천천히 걸어본 뒤에 조금 더 가깝게 다가오는 가을이 즐거운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