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걷고 골목을 지나 한 그릇의 해물탕으로 만나는 통영
날씨가 좋은 날 강구안 주변에서 바라본 통영의 가을바다는 유난히 푸르게 느껴진다. 수평선 너머로 섬들이 점점이 이어지고 가까운 바다에는 통영이라는 도시를 오랫동안 먹여 살렸을 항구의 풍경이 펼쳐진다. 크고 작은 배가 오가는 바다 건너편에는 조선소의 크레인과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관광도시로만 알고 찾아온 사람에게는 조금 낯선 풍경일 수도 있지만 이것 역시 통영의 모습 중 하나다.
통영을 매번 찾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이 도시는 바다와 골목을 따로 떼어놓고 바라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통영의 바다는 단순히 바라보는 풍경에만 있지가 않다. 사람들의 삶이 이어져 온 일터이자 도시가 성장해 온 공간이다. 그래서 바다를 보고 있으면 예쁜 항구라는 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묵직함이 담겨있다. 바다에서 잡힌 물고기와 해산물이 시장으로 들어오고 다시 골목의 식당으로 이어지는 흐름도 이 도시에서는 자연스럽다.
바닷가를 뒤로하고 강구안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본다. 큰 도로에서 한 블록만 들어왔는데 분위기가 금세 달라진다. 오래된 건물 사이로 좁은 길이 이어지고 간판과 전깃줄, 작은 상점과 식당들이 골목의 풍경을 만든다. 최근 만들어진 여행지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지만 오래된 도시의 골목에는 시간이 만든 질감이 있다.
바닷가를 걷다가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오래된 골목이 나타나고 다시 몇 걸음 걷다 보면 골목 끝에서 푸른 바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통영을 여행하는 방법은 유명한 관광지를 하나씩 찾아가는 것보다 바다에서 골목으로 골목에서 시장과 음식점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 더 잘 어울린다.
강구안 골목 곳곳에는 '강구안 골목길'이라는 안내판도 세워져 있다. 오래전부터 이곳을 지켜온 식당과 상점, 새롭게 들어선 작은 가게들이 함께 골목을 이루고 있다. 어느 골목에는 도깨비골목이라는 이름도 붙어 있다. 이름 하나만으로도 그냥 지나쳤을 길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된다.
통영의 골목을 걷는 재미는 무엇이 나타날지 쉽게 예상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작은 카페를 지나면 오래된 식당이 나오고 조금 더 걸으면 사람들이 오가는 시장이 나타난다. 골목 끝에서 방향을 바꾸었는데 갑자기 바다가 보이기도 한다. 계획한 길보다 눈에 들어오는 길을 따라 걸어보는 것이 이곳에서는 더 재미있다.
오래된 도시에는 그 도시를 기억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통영은 예술가들의 도시이기도 하다. 골목을 걷다 보면 도시 곳곳에 남겨진 조형물과 안내판을 통해 통영을 거쳐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바다만 보고 돌아갔다면 알지 못했을 도시의 또 다른 모습이다. 관광지는 사진 몇 장으로 기억되지만 골목은 사람의 삶을 상상하게 만든다.
한참을 걷고 나니 자연스럽게 통영의 먹거리로 시선이 향한다. 바다가 가까운 도시에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일은 생각보다 즐겁다. 수조 안에는 살아 있는 생선들이 움직이고 식당 앞에서는 그날 들어온 해산물을 쉽게 볼 수 있다. 결국 이날의 선택은 뜨거운 해물탕이었다.
커다란 냄비가 테이블 위에 올라오는 순간부터 바다가 그대로 옮겨진 듯하다. 전복과 가리비, 홍합, 조개, 문어를 비롯해 여러 해산물이 냄비 위에 수북하게 올라가 있다. 처음에는 해산물 때문에 국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불을 켜고 조금 기다리면 조개가 하나둘 입을 벌리고 해산물에서 나온 맛이 국물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한다.
팔팔 끓기 시작한 해물탕에서는 매콤하면서도 시원한 바다의 맛이 난다. 가위로 문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조개와 전복을 하나씩 골라 먹는다. 바다를 한참 걷고 난 뒤 먹어서인지 국물 한 숟가락이 더욱 깊게 느껴진다. 좋은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날 걸었던 장소와 풍경까지 함께 기억하게 만들고 있었다.
특히 통영에서 먹는 해산물은 여행의 흐름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조금 전까지 바라보았던 바다가 음식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항구에서 시작된 하루가 골목을 지나 식탁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통영에서는 '무엇을 보았는가'만큼이나 '무엇을 먹었는가'도 여행의 중요한 기억이 된다.
배를 채우고 다시 밖으로 나오면 강구안의 바다가 기다리고 있다. 같은 바다인데도 식사를 하기 전과 후의 느낌은 조금 다르다. 서둘러 다음 여행지로 이동하기보다 강구안 주변을 다시 천천히 걸어본다. 차가 오가는 도로 옆으로 바다가 펼쳐지고, 오래된 상가와 횟집, 시장 풍경이 이어진다.
통영 강구안이 좋은 이유는 화려한 풍경 하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바다와 시장, 골목과 음식점, 오래된 도시의 흔적이 한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점에 있다. 골목 안에는 사람들의 생활이 있고 몇십 미터만 걸어 나가면 항구와 바다가 펼쳐진다. 도시와 바다가 서로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함께 살아온 듯 붙어 있다.
여행하면서 점점 느끼는 것이 있다. 유명한 장소 하나를 보고 돌아오는 것보다 그 도시의 하루를 따라가 보는 여행이 오래 기억된다는 것이다. 통영이라면 아침이나 낮에 바다를 걷고 강구안의 골목으로 들어가 오래된 도시의 표정을 만나본다. 출출해질 무렵 뜨거운 해물탕 한 냄비를 앞에 두고 바다의 맛을 느낀 뒤 다시 강구안으로 나와 천천히 항구를 바라본다. 통영의 여행은 바다에서 시작해 골목을 지나고 한 그릇의 해물탕을 맛본 뒤 다시 바다로 돌아오는 여행 속에서 통영의 매력을 충분히 느껴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