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많은 나무 바람 불다

by눈항아리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 그 말이 딱 맞았다. 아이들이 돌아가며 아프니 몇 달에 걸쳐 정신이 없었다. 시작은 나의 응급실 행이었다. 9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런데 거슬러 올라가며 생각해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여름부터 둘째 복이는 대두 알레르기와 각종 알레르기 진단을 받고 음식 투쟁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련은 9월이나 8월에 시작된 건 아니고 늘 존재했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한 아이만 아프면 병원행이 나들이나 관계 진전을 위한 시간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사소한 사건이 된다. 소소하게 알레르기 비염으로 감기로 병원에 드나드는 건 늘 있었던 일이니까.


위험은 늘 주변에 있었다. 이번에 우르르 한꺼번에 주저앉게 된 건 왜일까. 소소하게 아픈 것 말고 심각하게 아팠다. 하나만 아픈 게 아니라 가족들이 돌아가며 아팠다. 코로나나 독감처럼 돌아가며 아팠다. 차라리 독감이거나 코로나였다면, 똑같은 질병을 연속으로 마주하니까, 한 명이 아프면 돌아가며 아픈 걸 아니까 마음의 대처가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둘째 복이가 대두 알레르기 진단을 받고 얼마 후, 막내 복실이가 자반증 진단을 받았다. 9월 24일에는 내 가슴이 널뛰어 응급실에 다녀왔다. 9월 28일 첫째 복동이가 열이 나서 응급실에 다녀왔다. 그날 밤 다시 응급실로 갔다가 응급병동에 입원까지 하게 되었다. 복동이는 고2다. 학교 출석과 지각 등을 점수화해 목숨처럼 지키는 아이다. 아이가 그런 건 제도가 그렇기 때문이겠지만. 그런 아이가 고열로 4일이나 결석을 했다. 복동이의 입원이 확정된 날은 복실이의 진료일이었고 복실이는 그날 병원 진료를 미뤘다. 그 와중에 며칠 약을 못 먹게 되었다.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아프니 마음고생이야 말해 무엇할까. 씩씩하게 병원에 아이들을 싣고 다녔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나는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나 보다. 그렇게 토요일 어느 날 가시 아프기 시작했다. 일요일엔 몸져누웠다. 스스로 격리까지 해가며 혼자 아픔을 삼켰다. 그리고 맞은 월요일 아침은 다시 복실이의 진료일이었다. 2인 체계로 돌아가는 가게를 닫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내 몸이 걸어 다녔고 운전을 하고 다녔다. 월요일 아침이 되자 열이 쑥 내려가 움직일만했다. 움직일만한 게 아니라 움직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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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발견하기 위해 귀 기울이다 자연스레 글쓰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가족, 자연, 시골생활, 출퇴근길,사남매의 때늦은 육아 일기를 씁니다. 쓰면서 삶을 알아가고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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