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돌파구였다. 학교만 졸업하면 독립할 수 있었다. 명주언니는 상고에 가서 빨리 취직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반대했다. 상고에 가면 학원에 다녀야 했다. 타자, 부기, 주산 학원에 다녀야 취직이 된다고 했다. 학원비가 어마무지하게 많이 든다고 했다. 어쩌면 언니가 빨리 집에서 떠날까 봐 걱정이 됐는지도 모른다. 당장 필요한 일손이 없어지니까 그게 아쉬웠을지도 모르겠다.
명주 언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갔다. 대학을 갈 수 있을는지는 몰랐다. 아버지는 말했다. 대학을 나와야 결혼을 하지. 대학과 결혼의 상관관계를 그때는 알 수 없었지만 아버지의 그 말이 꽤나 근사하게 생각되었다. 왠지 우리를 위해주고 장래까지 걱정해 주는 듯한 따뜻한 말이었다.
당시 나는 천지 분간을 못 하던 처지라 집이 얼마나 가난한지 몰랐다. 한 살 많은 언니라고 그걸 알았을까. 나보다는 조금 더 많이 알았을까. 현실 파악이 되었을까. 재정 상태를 알았을까. 학교에 내야 하는 바카라값, 교납금을 밀리기 일쑤였다. 돈을 못 가지고 오면 손을 들어야 하고 남아야 하고 심지어는 방송으로 이름을 호명당했다.
이른 새벽 가끔 아버지의 전화 통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딸아이 교납금을 내야 하는 날이 지났는데 몇 만 원을 융통해 달라 부탁하는 전화였다. 염치도 없이 아침 댓바람부터 남의 집에 전화를 하다니. 나는 낯 부끄러워 그런 전화는 지금도 못 할 것 같다. 없으면 차라리 학교를 보내지 말지. 지금에 와서야 그런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때는 학교에 돈을 제때 못 챙길까 봐 전전긍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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