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동생이 지난 6월 14일 뉴욕에서 갑작스럽게 죽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치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른 아침 동생의 친한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 건강하고 일도 열심히 하는 간호사였는데. 동생은 독신이라 남편도 자식도 없었다. 동생은 미국에서 25년을 넘게 살았다.
당장 뉴욕으로 왔다. 동생의 장례식으로 나는 한국식 장례식을 생각했다. 그러나 장례식은 미국식으로 진행되어야 했다. 장의사의 장례식장에서 뷰잉(viewing)을 하기로 했다.
한국인 친구들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사망자의 얼굴을 봐도 괜찮겠느냐고. 그게 미국식이라고. 너무 많은 질문에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고 다음날 장례식이 진행되었다. 5시간 동안 진행된 장례식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한국에서처럼 2박 3일하는 장례식이 아니었다. 주로 동생이 일하던 뉴욕 플러싱 병원에서 찾아온 많은 이들은 동생을 안타까워하고 애도했다. 남들과 잘 어울려 살았던 동생의 선한 삶을 증명했다.
동생 사후 뒤처리를 하기 위해 사망 증명서를 끊어 미국 법무부 공증을 받아야 했다. 사망 증명서는 한국인 장의사가 끊어 주었다. 미국의 행정 시스템이 느리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한국인 답게 빠르고 신속하게 처리해 주었다. 법무부 공증을 받기 위해 브루클린 다리 근처에 있는 법무부 민원실을 찾아갔다.
민원실에서는 ‘아포스티유 (Apostille)’ 즉 공증 장표를 붙여야 한다고 안내했다. 여기까지는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안내에 따라 주정부 국무부 민원실을 찾아갔다. 민원실에는 오전 11시경 들어갔을 때 이미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공무원이 장표를 찍은 서류를 줄때 일일히 사람 이름을 불렀다.
이름이 불릴 때까지 앉아서 기다려야 했다. 언제 이름이 불릴 지 몰라 점심도 먹지 못하고 화장실에도 제대로 가지 못했다. 함께 기다리던 100명 가까운 미국인들도 끈질기게 기다렸다. 결국 오후 4시경 내 이름이 불렸다. 거의 5시간을 기다렸다. 한국이라면 시위가 일어나고 신문에 담당 공무원들의 이름이 실려 악플을 받아야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한국 공무원들 친절이 세계 1위 수준이라는 걸 깨달았다.
#한국공무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