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 작가 2

<재회 18>(26-38)

by백승협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

이 말 하나면 이해되지 않을 이가 누가 있겠는가? 단 세 마디로 만들어진 이 문장을 삶으로 소화해 내는 것은 녹록지 않고 또한 사람마다 별별일 것이다. 인격의 차이는 여기에서 다 드러날 것이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말이다.

내 사정만 중요하다. 남의 사정은 알 바 없다. 남의 사정이 내 사정이 되고 나서도 여전하거나 아이코 하고 깨닫고는 그제야 주위를 되돌아본다. 형편이 나아지면 또 이전의 삶으로 돌아간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온라인 게임에서는 Co-Working을 강조하는데 내 팀 사정이 회사의 사정보다 먼저이거나 자신이 가는 휴가는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밑의 직원이 가는 휴가는 못마땅해한다. 나를 돌아보니 그렇다는 거다. 내로남불을 장착하고 살아온 부끄러운 나날들이 이렇게 떠오른다.

주민센터에 있는 공무원이, 버스나 택시 기사가, 계산대에 있는 캐시어가, 콜센터 직원이 내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이라면, 친구나 선후배라면, 같은 교회를 다니는 교우라면, 역으로 그들의 상대가 그러하다면 인정사정 봐 주지 않고 내 사정만 버젓이 챙길까? 욕이나 불만을, 무시나 하대를 함부로 할까? 마음으로야 어떠하든지 그렇게 대놓고 하지는 않을 터이다.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

이 말은 정지아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늘 하던 말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그 말을 가벼이 여겨왔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이후에야 그 말의 의미를 알아 가게 된다. 그제야 그 말을 자신의 삶으로 녹여가기로 한다.

'사램이 오죽하면 글것냐. 아버지 십팔번이었다. 그 말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진작 아버지 말 들을 걸 그랬다. 아버지. 아버지 딸, 참 오래도 잘못 살았습니다. 그래도 뭐, 환갑 전에 알기는 했으니 쭉 모르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이번에 만난 정지아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2022)는 빨치산 아버지를 문상하러 온 다양한 사람들과 이래저래 얽힌 정지아 아버지의 이야기들이다. 딸 정지아가 알고 있었던 아버지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마치 증언하러 나온 사람들 같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아버지에 관한 편린 조각들이 이 말들과 겹쳐서 생명을 발한다. 그렇게 아버지의 본 모습을 알아가는 한 딸의 기록이다. 그것이 빨치산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된다.

이런 다큐 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풀어갈까? 숨기려 해도 도처에서 정지아의 마음이 엿보여서 읽을수록 애잔해진다. 그야말로 웃프게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민주 공화국에서 빨치산으로 낙인찍혀 살아간다는 것을 독자인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또한 그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도. 정지아가 용기 내어 세상에 이것을 알리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의 고리들로 나는 사고하겠는가? 그럴 리 만무하다. 그것만으로도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가 걸어온 삶, 하나하나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나의 아버지가 생각난다. 일 년에 두세 번 정도 아버지를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서 친근함보다는 마냥 어렵고 서먹했던 것 같다. 정지아 아버지의 가족이나 친인척에게 신원 조회가 삶의 태클이었다면 나에게는 초등 입학부터 매년 학교에 내야 하는 가정 신상 조사표가 그랬다. 호적대로 적어야 된다는 선생의 강한 어조가 아직도 생생하다. 멸공의 시대였다. 그걸 틀리면 경찰에 잡혀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강압적으로 들렸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큰 아버지 호적에 올라가 있었으니 때마다 나는 낯선 이름을 외워서 써야 했다.

그럼에도 나에게 가슴 깊이 아버지가 남겨 준 것이 있다. 바카라임감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나를 끝까지 챙겨주셨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하지도 않게.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아버지께 받은 것이 너무나 많다.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 감사한 마음뿐이다.

지금 두 아이의 아버지로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도 비친다. 정지아 아버지의 면면을 보면서 부끄러운 내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인간미가 구수한 그녀의 아버지와 달리 나에게는 그런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아서다. 그래도 굳이 말해 보라면 온라인 게임에 성실하게 임했다는 것(사실 이것은 그만큼 이걸 핑계로 가정에 덜 신경 썼다는 반증일 수 있다)과 신앙생활을 꾸준히 해 왔다는 것(이 또한 나의 외식적인 삶이 그들에게 더 진하게 드러나 보였을 수 있다)이다.

정지아처럼 나도 나의 아버지의 일부밖에 알 수 없듯이 나의 아이들도 그러할 것이다. 그들의 기억 속에 하나만 남기고 싶다면 '신앙'이다. 66권의 성경은 '하나님 사람, 이웃 사랑'을 말하고 있다. 간단하지만 말만으로는 안된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신앙이 있다면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 지속적으로 나의 본성과 싸워나가면서. 정지아 아버지의 말대로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고 싶다. 그렇게 기억되고 싶다. 녹록지 않겠지만 파이팅!

- 헤리의 반려바카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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