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오피스에서 가을을 쓰다
모처럼 수업이 없어 아침을 느긋하게 먹고 컴퓨터를 배낭에 넣어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가을의 정취도 느끼고, 신선한 바람도 쐬어볼까 싶어서 천천히 걸었다. 얼굴을 스치며 목까지 파고드는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움찔했다. 계절은 벌써부터 초겨울 분위기와 많이 닮아 있었다. 천천히 걸어 맥카페에 도착했다. 집에서 집중이 잘 되지 않을 때, 내가 가끔씩 찾는 곳이 바로 이곳, 나의 '맥오피스'(맥도널드+오피스)이다.
컴퓨터를 켜고 앉아 지난봄에 썼던 단편소설 하나를 열었다. 처음 소설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썼던 나의 첫 소설이었다. 올봄에 시작했던 소설 수업은 여름을 지나면서 아쉽게 끝이 나긴 했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소설보다는 수필이나 자기 계발서, 신앙서적을 주로 읽던 나에게 소설이라는 장르의 매력을 다시 알게 해 준 수업이었다. 처음에는 수필 쓰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혹해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수필보다 소설의 재미에 푹 빠져버렸다. 잘 쓰지는 못해도 잘 읽는 독자는 될 수는 있을 것 같다.
사실 나의 첫 소설은 소설이 아니었다. 며칠 동안 나름 열심히 써 내려간 소설이었지만, 결국 수필의 언저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초보작가의 습작에 불과했다.
그 소설을 6개월 만에 다시 꺼냈다. 지금이라고 내 실력이 더 좋아졌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무엇이 문제였고, 어떻게 수정할 수 있을지 보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서 첫 번째 퇴고를 시작했다. 읽어 내려가면서 대충 수정하는 데에만 꼬박 세 시간이 걸렸다.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 말의 연결이 부드럽지 않은 부분, 적당한 단어를 찾기 힘든 부분, 보여주기가 잘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또 다른 날의 퇴고를 기약하며 첫 번째 퇴고를 마쳤다.
문득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괜히 유리문 옆에 앉아있었나 싶게 찬기운이 내 몸을 감쌌다. 창밖으로 보이는 루마니아의 가을은 기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루마니아의 가을은 우기이다. 그래서 항상 어중간하다. 나무에 매달린 이파리는 푸르고 누런 색깔을 반반씩 나누어 가지고, 언제라도 떨어질 듯 힘겹게 가지를 붙들고 있었다. 어제도 그제도 비가 내렸다. 사흘이 멀다 하고 비가 내린다. 나뭇가지들은 화려한 옷을 입기도 전에 그 비를 이겨내지 못하고 떨어지는 빗방울에 옷을 벗는다. 억지로 벗겨진 누런 옷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나무는 벌거벗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며 부끄럽게 거리에 서 있다. 단풍이 들지 않는 가을, 겨울이 바싹 붙어있는 가을, 그 계절이 바로 루마니아의 가을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원래 다니던 길이 아닌 나무가 더 우거진 길을 선택했다. 작년에 걸었던 이 길은 다른 길보다 조금 더 가을 같았는데, 그래서 내심 기대를 했는데, 올해는 그 가을마저 보이지 않았다. 길가에 떨어져 이미 생명을 잃은 낙엽들이 줄을 지어 엎드려 있었다.
어중간한 가을을 보고 집에 돌아온 나는 한국의 가을이 그리워졌다. 한국을 떠난 뒤 20년 동안 한번도 가을에 한국을 방문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올봄 한국방문에서 20년 만에 벚꽃을 원없이 보았던 터라 앞으로 몇년은 아쉽지 않을 것 같았은데, 가을은 또 어떻게 해야 하나. 언젠가는 화려하고 분위기 있는 한국의 가을도 방문할 수 있길 기대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