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그래도 결혼식을 하기 잘했다

2024.04.22 성장로그

by신거니

"신랑, 입장!"


지나치고 보면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저 한 마디를 들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건 단순히 한국 슬롯에서 하나의 커다란 과업을 끝냈다는 선언을 넘어, 누군가를 내 삶의 0촌으로 맞아들인다는 그 커다란 결심에 대한 자각이다.


앞으로 걸어 나가며 생각했다. '와, 나 정말 신랑처럼 걷고 있잖아?' 물론 제삼자가 보기에는 어땠을지 알 수 없다. 어쩐지 자신이 없는 걸음이었을지, 아니면 씩씩한 '새신랑'같은 포부가 느껴지는 걸음이었을지는 말이다. 난생처음 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하나하나 아로새기듯 발을 디디고, 또 디뎠다. 그래, 이건 새로운 출발이지.


그렇다면 이 출발은 어디에서부터 왔을까 떠올려보았다. 식장을 예약했고, 양복을 맞췄고, 아니 그전에 부모님한테 결혼할 사람이 있다고 알렸고, 아니 그전에 여자친구와 함께 막 잠에 들려던 참이었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나랑 결혼할래?"라고 물었고, 난 잠시 그 목소리를 궁글이다가 "그래."라고 말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말이다.


아니, 사실 그전에 소개팅이 있었고, 그 소개팅은 독서모임 동료에게 받았고, 그 독서모임은 또 다른 독서모임 친구에게서 왔고, 그 친구를 만난 것도 우연의 일치였고, 그렇게 우연에 우연에 우연이 겹친 결과, 난 버진 로드 위를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바카라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에는 사랑에 빠질 확률을 묘사하는 기막힌 장면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비행기 옆자리에 앉았던 여성과 담소를 나누다 결국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되는데 그렇게 될 확률이 얼마나 낮냐는 거다. 우선 같은 시간의 비행기를 타야 하고, 그중에서도 바로 옆에 있는 자리에 마주 보고 앉아야 하고, 그 와중에 서로에게 끌려야 하고, 이런 식이다.


이건 서로의 관계를 특별하게 여기는 하나의 방법이다. 얼마나 우리의 사랑이 말도 안 되는 우연에 기대고 있는지를 가만히 톺아보는 것. 다른 방법으로는 바카라 『어린 왕자』에 나오는 '너는 세상에 있는 수천만 송이의 장미 가운데에서 나에게 가장 특별한 장미야. 왜냐하면 내가 매일같이 물을 주고 말을 걸고 잎에 쌓인 먼지를 털어주었으니까'가 있다.


개인의 인생에서 결혼은 참 특별한 사건이다. 무언가의 출발을, 또 다른 무언가의 끝을 암시하며 둘 사이를 갈라놓는다. 동시에 전혀 다르게 살아오던 두 사람의 결합이기도 하다. 이제 남은 시간을 서로에게 쏟겠다는 선언을 하는, 이 시대에 얼마 남지 않은 낭만이다. 그래서 비록 고생하며 여기까지 왔지만 그래도 결혼식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두 번은 없지만.


마지막으로 '어째서 그 사람이었는가'라는 질문에는 다음 문장으로 대신 답하고자 한다.


"나의 지성과 맞으며 나의 행복을 지지하고 내 마음의 친구인 그대를 인생의 반려자로 맞이합니다. 이제부터 동등한 동반자로 춤춰 나갑시다." - <빨간 머리 앤> 中

작가의 이전글세상이 아무리 빨리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