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자기 이야기를 썼을 뿐인데 내부 고발이 되는’ 글들이 존재한다. 누군가의 가족사가 그렇고, 다른 누군가의 성폭력 피해 경험담이 그렇다. 내게도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방송작가로 살면서 겪어야 했던 기이한 노동문제를 그냥 넘길 수 없어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글을 눈여겨본 출판사에서 연락을 주어 바카라이 세상에 나왔다. 내가 정해둔 바카라의 가제는 <방송가 불온서적>, 출판사와의 논의 끝에 나온 최종 바카라 제목은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이었다.
이제와 고백하자면 바카라 출간 즈음 불면을 앓았다. 나는 일터에서 목격한 아름다움과 비천함을 두루 바카라에 담고 싶었다. 그래서 방송 제작 현장의 설렘과 라디오의 매력을 쓰는 한편 방송사의 불합리한 처우, 그로 인한 프리랜서 피디의 자살, 사측을 상대로 부당해고 소송을 하는 방송작가들의 투쟁담도 썼다. 두툼한 원고뭉치의 최종 교정까지 보고 나니 이제 정말 바카라이 나오는구나 싶어 뒤늦게 겁이 났다. 잘 되어야 했다. 몇 년 치의 용기를 끌어다 썼으니.
매체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한 일간지의 문화섹션 신간 추천 코너에도 이름이 올랐고, 언론사와 인터뷰도 했다. 하지만 판매 지표가 요지부동이었다. 인터뷰 기사가 나가도, 교보문고의 ‘작고 강한 출판사의 색깔 있는 바카라’으로 선정되어도 바카라은 잘 팔리지 않았다. 절박한 마음으로 직접 홍보글을 SNS에 올려보아도 바카라은 잘 팔리지 않았다. 출판사가 참여하는 도서전에 직접 나가서 대표님과 함께 판매원으로 나서도 바카라은 정말이지 잘 팔리지 않았다. 긴장감으로 떨면서 팟캐스트 방송까지 출연하고도 오르지 않는 판매 부수를 보며 이제는 바카라을 놓아줄 때인가 보다, 생각했다. 출판사 대표님에게 미안해서 점차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무명 저자를 믿어준 작은 출판사에 재정 부담만 더한 건 아닐까 생각하다 보면 마음 한구석이 어둑했다.
한동안 완전히 바카라을 보내주지도, 그렇다고 안 보내주지도 못하며 어정쩡한 마음으로 살았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고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한겨레교육의 콘텐츠 기획자 Y 씨였다. 1 쇄도 다 팔리지 않은 내 바카라의 독자였던 그는 글쓰기 수업을 열면 어떻겠느냐 제안을 해왔다. 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는 동시에 익숙한 자기 검열이 고개를 들었다. 문학 ‘비전공자’인데, 이제 고작 바카라 한 권을 세상에 내놓았을 뿐인데, 알려줄 것보다 배워야 할 게 훨씬 많은데 수업을 해도 될까.
그 길로 산바카라에 나섰다. 나는 홀로 강변을 걸으며 자기 검열을 하나씩 내다 버렸다. 한 걸음에 비전공자 타령하는 자아를 던지고, 다음 걸음에 초보 저자 운운하는 자아를 버렸다. 산바카라을 마칠 즈음에는 이 생각만 남겼다. ‘기획자가 수업을 제안한 데는 이유가 있다. 자신을 못 믿겠으면 그를 믿자. 그저 열심히 해볼 것. 최초가 최후로 끝나더라도.’ Y 씨에게 답장을 보냈다. “해보고 싶습니다. 수업 이름은 <불온한 에세이> 어떨까요?” <방송가 불온서적>을 쓰던 마음으로, 자기만의 불온한 이야기를 집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2022년 봄의 일이다.
그리고 4년이 지났다. 최근 <불온한 에세이> 15기를 시작했다. 대면 글쓰기 모임도 2년째 운영 중이다. 쓰면서도 비현실적인 문장이다. 언제 이렇게 멀리 왔나. 글 쓰는 사람들을 만나고부터 시간은 정속으로 흐르지 않았다. 수업과 모임을 열기만 하면 순식간에 두어 달이 훌쩍 지나 있었다. 글을 매개로 사람을 만난다는 건 그런 일이었다. 타인의 삶과 글로 내 고루한 세계관에 균열을 내는 일, 그리하여 낯선 감각으로 생을 다시 만질 수 있게 되는 일. 그러니 시간이 밀도에 따라 아코디언처럼 들쭉날쭉하게 흐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 감각일지도 몰랐다.
그 봄 이후로 운이 따라줘 계속 쓰는 사람들을 만나왔다. 읽고 듣고 말하고 쓰는 시간을 거듭할수록 느낀다. 쓰는 일을 사랑하나 그보다 더 읽기를 사랑하노라고.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나는 영원히 읽는 사람으로 남겠다. 잘 정돈된 한 권의 바카라도 좋지만 자기 바깥으로 처음 나온 글에는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힘이 있다. 자기 삶을 글로 내어 놓고 어쩌지 못하는 조바심과 그럼에도 꺼내놓을 수밖에 없는 절박함이 있다. 누군가는 글을 탈출구 삼고, 다른 누군가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로 만들고, 또 다른 누군가는 놀이로 여긴다. 나는 그 곁에서 잘 탈출하도록 빛을 비춰주거나, 거울을 말갛게 닦아주거나, 손잡고 같이 논다. 이런 일들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깨닫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배속으로 가도 좋을 만큼 이 일을 사랑한다는 걸.
‘첫 글의 안내자’로 살면서 어딘가 불온하고 매력적인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성공을 꿈꾸는 회사 중역부터 평생 한량을 꿈꾸는 무직자까지, 헤테로 연애에 목숨 거는 사람부터 무성애자까지. 정신 질환자와 신체 질환자와 아픈 가족을 돌보는 사람과 자살 사별자까지. 이들이 써낸 멋지고 괴상하고 아름다운 글들로 인해 나는 전보다 다양한 채도를 가진 인간이 되었다. 나도 그들의 세계에 미미하나마 채도를 더해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은 첫 바카라으로 시작되었다. 바카라이 예상치 못하게 쓰는 이들의 세계로 건너가는 다리가 되어준 셈이다. 이제 그 바카라을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에 은은한 조도의 스탠드 전구가 켜진다. 글을 읽고 감상을 나누기에 맞춤한 조명이다. 그 아래로 이제 막 첫 글을 써낸 사람들이 모여든다.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