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_ 《태어남에 관하여》

두 번 태어나는 삶에 대하여

by고요정

1화_두 번 태어나는 삶에 대하여 — 《태어남에 관하여》

2026년의 첫 번째 바카라장을 넘기며, 나는 삶의 가장 맨 앞자리인 ‘시작’으로 돌아가 보기로 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얇은 바카라, 팀 켈러 목사님의 《태어남에 관하여》를 집어 든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새해의 문턱에서 내가 이 세상에 왔던 첫 순간과 지금 살아 숨 쉬는 의미를 다시 묻고, 흐트러진 삶의 호흡을 가다듬기 위한 고요한 재정비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내게 찾아왔던 첫 번째 아이와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 마주한 첫 손주를 생각했고, 내 삶에 깊이 뿌리내린 남편과 자녀들, 주변의 귀한 인연들을 어떻게 하면 더 온전한 사랑으로 삶 속에 펼쳐낼 수 있을지 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보통 ‘태어남’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는 갓 태어난 아기의 보드라운 살결과 작고 뜨거운 손가락, 혹은 처음 부모가 되던 날의 떨림을 떠올린다. 실제로 저자는 바카라의 전반부에서 우리가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는 육신의 출생을 이야기한다. 세상에 스스로의 의지로 태어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으며, 모든 생명은 누군가의 몸을 빌려 전적인 돌봄과 헌신 속에서만 비로소 삶을 시작할 수 있다.

활자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나는 생명을 품고 길러냈던 지나온 날들의 시간과 다시 마주했다. 한 생명이 세상에 온다는 것은 한 사람의 우주가 통째로 흔들리는 지각변동과도 같다. 내 힘으로 다 통제할 수 없는 작고 연약한 존재를 품에 안았을 때,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생명의 주권자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게 된다. 태어남은 단순한 생물학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에게 잠시 맡겨진 거룩한 신비라는 저자의 문장에 오랫동안 눈길이 머물렀다.

그 거룩한 신비를 요즘 나는 손주를 바라볼 때마다 날마다 새롭게 마주한다. 내 마음의 한계를 뛰어넘어 차오르는 저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 아기사슴 같기도 하고 갓 태어난 강아지 같기도 한 작은 생명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절로 경외감이 인다. 하지만 그토록 무구한 아이의 눈망울을 마주하다가도 문득 가슴 한구석이 아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작고 어여쁜 생명 또한 언젠가는 거친 ‘삶의 광장’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 추호의 의심도 없는 우리네 인생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내게도 내 존재의 시작을 원망하며 광장을 헤매던 시절이 있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걸…….’ 삶의 무게가 버거워 그런 탄식을 삼키던 시기가 있었다. 한때는 결혼을 하지 말았으면 얼마나 홀가분했을까 후회하며, 미혼으로 당당하게 경력을 쌓아가는 커리어우먼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심지어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남자로, 아니 키가 훤칠한 북유럽인으로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서글픈 상상을 해본 적도 있다. 작고 왜소한 체구로 덩치 큰 서양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니, 나의 미국 생활은 마치 발바닥만 닌자처럼 바퀴가 달린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바퀴를 굴리며 쉼 없이 달리는 동안에도 마음 한편에는 늘 작아지는 듯한 위축감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렇게 고단했던 육신의 세월을 보듬어 안으며 두 번째 장을 넘기자, 이 작은 바카라이 진짜로 건네고 싶었던 이야기가 더욱 깊어졌다. 육신의 탄생을 넘어선 두 번째 출생, 바로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에 관한 이야기다.

“한 번 태어나면 두 번 죽고, 두 번 태어나면 한 번 죽는다.”

바카라 속에 등장하는 이 오래된 격언 앞에서 나는 한참 동안 바카라장을 넘기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의 품에서 한 번 태어난다. 그러나 육신의 시간만 살다 가는 삶은 끝내 유한함 앞에 멈춰 설 수밖에 없다. 밤중에 찾아와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라고 묻던 니고데모의 질문은, 어쩌면 광장의 한복판에서 위축된 채 달리기만 하던 지난날 나의 질문이기도 했다. 저자는 거듭남이란 단순히 결심을 굳게 하여 ‘조금 더 착하고 나은 사람’이 되는 도덕적 수양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마치 갓난아기가 세상의 빛을 처음 보듯, 내 안의 중심이 나 자신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옮겨가는 ‘전혀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 문장 앞에서 나는 발바닥이 닳도록 달려온 이 광역한 ‘광장의 학교’를 무사히 이수하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비로소 깨달았다. 한때는 ‘고난이 곧 축복이다’라는 말이 현실을 모르는 어불성설처럼 들렸지만, 세월의 끝에서 돌아보니 그 역설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진리였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육신의 시간이 조금씩 닳아가는 과정일지 모른다. 하지만 영적인 눈이 뜨여 두 번째 태어남을 경험한 사람에게 세월은 소멸이 아니라 성숙의 시간이다. 갓 태어난 생명이 자라나듯, 우리의 영혼 역시 고통과 기쁨의 계절을 통과하며 평생에 걸쳐 조금씩 자라난다.

나는 이제 내 삶에 깊이 뿌리내린 귀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이 바카라을 덮는다. 내 손주와 자녀들, 남편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모두 각자의 몫으로 주어진 ‘광장의 학교’에서 배움을 마치고, 제대로 거듭나는 은혜와 예기치 못한 기쁨을 맛보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란다. 광장을 지나며 겪게 되는 막막함과 불신앙조차 영혼을 살찌우는 거름이 되어, 어느 날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 터널의 끝에서 마음이 밝아지고 눈이 깨끗해진 ‘거듭난 니고데모’가 되기를. 그리하여 우리가 함께 생명이 주는 감사의 자리, 기적의 자리에 이르는 은혜를 누리기를 소망한다.

바카라을 덮으며 창밖의 빛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태어남’은 인생의 맨 처음에 단 한 번 일어나고 끝나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었다. 굳어 있던 내 마음이 진리의 문장 앞에서 다시 부드러워질 때, 내 고집을 내려놓고 은혜의 숨을 깊이 들이마실 때, 우리는 오늘도 새롭게 태어난다.

2026년, 활자 사이로 걸어가는 이 산바카라길의 첫걸음에서 나는 다시 묻는다. 나는 오늘, 어제보다 조금 더 새로운 생명으로 깨어 있는가. 두 번 태어난 자에게 허락된 그 고요하고도 단단한 평안으로, 올해의 나머지 페이지들을 천천히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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