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에게행복시티라고 말하는 장소가 있다. 행복시티? 그게어디지? 당연 내 고향 울산이다. 나에게 울산은 늘 근심과 걱정을 덜어주고 행복만을 가져다주는 도시다. 초, 중, 고, 대학교까지 모두 울산에서 나왔고27년이 넘는 물리적 시간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도 있겠다. 마을의 고요, 자연의 아늑함 또한 늘 내 마음을 정화시킨다.
일과 삶이 철저히 분리된 삶도 한몫한다.만약 내가 울산에서 근무를 했더라면 지금처럼 울산을 좋아하지 못했을 테다.
카페에서 본 우리 마을
이번 설을 맞아 울산에 5일 정도 있으면서 마을 전체를 한번 산바카라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자주 공부했었던 카페에 오랜만에 들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데 아주머니가 나를 기억해 주셨다. 왜이렇게 오랜만에 왔냐면서 케잌도 공짜로 주셨다. 누군가 나를 기억해 준다는 게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일이었는지 뒤늦게 생각해 냈다.
서울은많은 사람들이 오가고회전율이 높다. 모든 게 빠르다.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게 쉽지 않다.
강남의 빌딩숲에서온라인 게임동료들과 빈 공간, 적막을 두려워하는 점심식사보다 혼자가도 늘 정겹고 편안한 이 분위기가 좋다.
산바카라을 하다새롭게 알게 된 사실:우리 마을엔청둥오리도 있다.
울산발 KTX와 다시 서울발 KTX에 몸을 싣는 생각들과 감정의 파고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울산역으로 가는 기차는 설렘과 위로로 정의할 수 있겠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 혼자 있는 엄마와 이런저런 많은 얘기를 나누며 힘든 서울살이의 위로를 받는다. 나이가 서른이 한참 넘었지만 늘 투정 섞인 내 말에도 한없이 나를 무조건적으로 받아주는 엄마를 보면 눈시울이붉어진다.
세월이 흘러도 늘 변하지 않는 것들에 감사하다. 집안의 풍경, 엄마의 낡은 가방, 차, 마을의 카페 아주머니, 어릴 적 자주 가던 맛집, 미용실, 내가 매일 타던 버스까지도. 늘 변함이 없기에묵묵히 쌓인 소중한 추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다.
고향의 친구들과는 어릴 적 함께했던사진을 똑같이 다시 보고 박장대소를 한다.행복한 기억만을 안고 우린 서로 그렇게 살아간다. 그땐 아무것도 없었던 우린데 뭐가 그렇게 행복했고 즐거웠을까?
서울은 좋은 만남들 속에서도 이해관계가 늘 섞여 있어 마냥 무조건적으로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늘 본인 이익을 우선시로 두고 눈치보기 바쁘며 나에게 도움이 될 사람에게 각자 치열하게 아부를 떤다. 몸보다는 마음이 더 지치고 버거운 상황들을 쉽게 마주한다.
서울역으로 올라가는 기차를 탈 때는 이 생각들을 한 단어로 함축하기가 참 힘들다.이 기차는 5만원으로 단지 서울이 아니라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준 발이 되어주었다.기억 속많은 순간들이 서서히 옅어지며 오버랩된다.수많은 감정의 파고에 휩쓸린다.
면접을 보러 서울로 올라가는 이 자리에서 손을 벌벌 떨며 외웠던 손 때가 묻은 꾸깃꾸깃한 대본들, 옆에서 아저씨가 잘 보라며 넥타이도 매 줬었지. 그땐 그 결과가 세상의 전부인 것만 같았다.
미국행 비행기를 타려고 인천공항으로 가는 이 기차 자리에서는 1분을 남기고 겨우 가까스로 탔었지. 내가 예약해 둔 버스 시간을 잘못 착각해 비행기를 놓칠까 봐 급하게 탔던 KTX였다. 마지막 떠나는 순간까지 엄마는 주머니에 있는 모든 돈 만 원짜리 몇 장을 내 주머니에 넣으며건강히 잘 다녀오라고 나를 안아줬다. 난 KTX에서 몇만원을 손에 들고 오열을 했다.
지금 이 순간 KTX 창가 속에서도 많은 생각들과 추억들이 더해진다. 며칠 지냈던 이 울산에서 내가 엄마한테 말실수 한 건 없는지, 더 챙겨주어야 할 것은 없었는지, 엄마의 건강은 어떤지. 늘 하늘 같고 커 보였던 어릴적의 엄마는 지금 참 작다. 작은 것에도 행복해하고 늘 자식의 기쁨이 본인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이야기하는 엄마의 마음은 아직은 내가 이해를 못 하겠다. 아직 자식이 없어서 그럴 테다. 본인의 인생보다 더 가치 있는 자식의 삶을 바라는 우리 엄마들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오신 걸까.
우리 세가족과 매형이랑 함께 대왕암공원에 갔다. 가족이 하나 더 늘었다는 건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가장 큰 자산이다. 마음이 뻥 뚫리는 바다를 보며 다시 나도 재정비에 나선다. 더 잘해야 할 일들, 더 잘해야 할 사람들, 더 잘할 수 있는 용기와 다짐들을 다시 가슴에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