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지구의 막걸리와는 다를 텐데
아르테미스 1호가 무사히 달 궤도를 돌고 지구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하던 날, 언제나 그렇듯 양조장 한편에서 발효 중인 술독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보글보글 올라오는 탄산 기포들은 마치 작고 투명한 행성처럼 보였죠.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만약 중력이 없는 우주에서 막걸리를 만들면, 저 기포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우리가 매일 마시는 막걸리 한 잔에는 지구의 중력이 설계한 정교한 물리 법칙이 숨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화성으로 가는 우주선 안에서 막걸리를 빚는다면, 그 술은 우리가 알던 그 맛일까요?
막걸리가 익어가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요약하면 '미생물의 에너지 대사'입니다. 누룩 속의 효모가 쌀의 당분을 먹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는 과정이죠. 지구에서 이 과정은 매우 역동적입니다. 이산화탄소는 액체보다 가볍기에 위로 솟구치고, 상대적으로 무거운 효모와 쌀 찌꺼기는 아래로 가라앉습니다. 이 자연스러운 부력 덕분에 술덧(발효가 진행 중인 술) 내부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움직임이 만들어집니다. 발효과정에서 발생한 열 때문에 대류 현상도 일어납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국자가 술을 계속 저어주는 것과 같죠. 덕분에 발효 온도는 고르게 유지되고, 효모들은 신선한 당분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아래가 사라진 우주 정거장(ISS)에서는 이 모든 풍경이 뒤바뀝니다.
이것은 단순한 상상이 아닙니다. 이미 인류는 우주에서의 발효 가능성을 타진해 왔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21년 진행된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실험입니다. 그들은 일본의 전통 발효식품인 미소(된장)를 국제우주정거장에서 30일간 발효시킨 뒤 지구로 가져왔습니다. 분석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우주에서도 발효는 일어난다"는 것이 확인되었죠. 다만, 지구에서 만든 된장과는 미생물의 구성과 향 성분의 농도가 확연히 달랐습니다.
더 구체적인 수치는 맥주 효모 연구에서 나옵니다. 미국 플로리다 대학(University of Florida) 연구팀이 무중력 상태를 재현한 장치에서 맥주 효모를 배양한 결과, 발효 속도가 지구보다 약 33%나 빨라졌습니다. 중력이 없으니 효모가 바닥에 가라앉지 않고 액체 전체에 둥둥 떠다니며 사방에 널린 당분을 훨씬 효율적으로 섭취했기 때문입니다.
발효가 빠르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우주 막걸리의 가장 큰 적은 바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기포'입니다. 지구에서는 이산화탄소가 공기 중으로 날아가 버리지만, 무중력 상태에서는 기포가 액체 밖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가볍고 무거운 무게의 차이가 없으니 부력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죠. 거품이 터지지 않은 채 액체 안에 머물며 효모 세포 주변을 빽빽하게 감싸게 되죠.
이것은 효모에게 치명적입니다. 자신이 내뱉은 이산화탄소에 갇혀 버리는, 일종의 '가스 중독'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주 실험 결과에 따르면, 이 현상 때문에 맥주나 막걸리의 맛을 결정하는 핵심 성분인 이소아밀아세테이트(바나나나 멜론 같은 달콤한 과일 향을 내는 성분) 등 휘발성 향미 성분(공기 중으로 날아가 코를 즐겁게 해주는 물질)이 지구보다 현저히 적게 생성되거나 변질되었습니다. 우주 막걸리는 우리가 아는 그 향긋한 내음 대신, 다소 밋밋하거나 낯선 화학적 풍미를 가질 확률이 높습니다.
현실적인 문제도 남습니다. 막걸리의 매력은 뽀얀 지게미를 고르게 섞어 마시는 데 있죠. 하지만 우주에서는 침전물이 가라앉지 않기에 흔들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입자가 균일하게 분포된 '완벽하게 섞인 상태'가 유지됩니다.
하지만 마시는 과정은 고역일 것입니다. 컵에 따르는 순간 술은 사방으로 흩어지는 방울이 될 것이고, 탄산 기포는 액체 속에 갇혀 목구멍을 따갑게 찌를 겁니다. 그래서 우주 비행사들은 아마도 빨대가 달린 특수 파우치에 막걸리를 담아 마셔야 할 겁니다.
막걸리 사발을 부딪치며 나누는 정취는 사라지겠지만, 그 파우치 안에는 지구라는 행성의 물리 법칙을 벗어난 미생물들의 치열한 생존 기록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양조장에서 매일같이 미생물을 대하며 깨닫는 점이 있습니다. 발효는 환경에 순응하는 과정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미생물의 투쟁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제 역할은 맛과 향을 올리는 미생물들이 좀 더 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고요.
우주 막걸리는 지구 막걸리의 서투른 복사본이 아닐 것입니다. 중력이라는 구속에서 벗어난 미생물들이 우주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써 내려간 전혀 다른 종류의 발효 음료겠죠. 언젠가 인류가 달이나 화성에 정착하게 된다면, 그곳의 기후와 중력이 빚어낸 '첫 번째 외계 막걸리'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게 될까요? 어떤 이름이 되든 간에 우리는 어떻게든 성공할 겁니다. 늘 그랬듯이 말이죠.
오늘 밤, 막걸리 한 잔을 기울이며 저 먼 우주 어디선가 몽글몽글 피어오를 기포의 미래를 상상해 봅니다.
독자 여러분은 우주에 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혹은 어떤 일이 궁금하신가요? 댓글로 달아 주세요. 같이 문제를 해결해 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