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AI에게 번역을 부탁한 다음에 남은 일
영어로 된 내 소설을 처음 열었다.
읽혔다. 끝까지 막히지 않고 읽혔다. 그래서 더 몰랐다. 읽힌다는 것과 제대로 옮겨졌다는 것이 같은 말인지.
한국어 원고라면 읽다가 이상한 데서 멈출 수 있다. 이 사람은 이런 말 안 하는데, 하고. 영어는 그게 안 됐다. 이상한 데서 멈추려면 이상한 걸 알아봐야 하는데, 나는 영어를 그만큼 모른다.
번역을 부탁하는 건 한 번이면 됐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
《하얀 밤의 사랑》에는 수연, 정희, 미경, 서윤이 나온다.
이름은 내가 지었다. 그런데 그 밤은 지어낸 게 아니다. 나는 신생아실에서 밤을 보냈고, 거기서 같은 옷을 입고도 전혀 다른 사람인 여자들을 봤다.
소설에서 네 사람은 같은 일 앞에서 다른 말을 한다. 말하는 순서도, 삼키는 말도 다르다.
그게 영어에서도 남아 있어야 했다.
이름만 수연이고 정희인 채 넷이 똑같이 말하면, 내가 쓴 건 없어진다. 같이 밤을 지킨 사람들이 한 사람으로 뭉개지는 것. 그것만은 싫었다.
*
그런데 영어 문장 하나하나가 그 사람 말투인지는 내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했다. 번역이 지켜야 할 것을 표로 만들었다. 두 장이었다.
한 장은 인물표. 이름의 영문 표기, 나이, 서로의 관계.
한 장은 용어표. 신생아실에서 쓰는 말을 영어로 어떻게 적을지. 인큐베이터, 속싸개 같은 물건 이름도 있고, 물건이 아닌 것도 있었다.
내가 일하던 신생아실에서는 서로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나이가 달라도, 직급이 달라도. 영어에는 그 말이 없다. 그 거리감을 어떻게 옮기나. 이것도 표에 적었다.
표를 만들다 보니 알게 됐다. 내 머릿속에는 있는데 원고에는 안 쓴 게 많았다. 왜 말을 아꼈는지, 왜 거기서 돌아섰는지. 나는 아니까 독자도 알 줄 알고 넘어간 자리들.
영어판 만들려고 시작한 일이 한국어 원고를 다시 읽는 일이 됐다.
*
번역문은 항목을 나눠서 물었다.
빠진 데 없는지.
이름이나 나이, 관계가 바뀐 데 없는지.
시간 순서가 그대로인지.
대사가 그 사람 말투인지.
신생아실 말이 맞게 갔는지.
원문에 없던 설명이 붙지는 않았는지.
전체적으로 잘됐는지 봐줘,라고 하면 잘됐다는 답만 돌아왔다. 항목으로 나눠서 물으니 그제야 답이 달라졌다. 여기가 빠졌다, 이 이름이 바뀌었다.
번역한 AI가 괜찮다고 하는 걸로 끝낼 수는 없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 달라고 했고, 원문이랑 맞춰 볼 자리를 짚어 달라고 했다.
그래도 남는 게 있었다. 설명을 들어도 내가 판단 못 하는 자리.
나는 원래 이야기를 안다. 문장이 부족해도 아는 걸로 채워서 읽는다. 다른 사람도 그렇게 읽히는지는 내가 알 수 없었다.
*
그래서 폴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지인이다. 폴은 닉네임이다. 저녁이었다.
“폴, 잘 지내시죠? 부탁이 있어서요. 제가 아마존에 출간을 하려고 해요. 영어 소설을 하나 썼는데, 좀 봐주실 수 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달라고 했다. 문장이 맞는지가 아니라, 이게 한 권의 소설로 읽히는지. 수연이 한 말이 다음 장면까지 이어지는지. 정희와 미경, 서윤의 선택을 따라갈 수 있는지.
전화를 끊고 원고를 메일로 보냈다. AI랑 만든 원고를 처음으로 사람한테 건넸다.
*
며칠 뒤 연락이 왔다. 그대로 출간해도 되겠다고 했다.
그 답을 읽고 마음이 놓였다.
그동안 나는 계속 원고에서 고칠 데를 찾고 있었다. 빠진 거 없나, 잘못 간 거 없나, 내가 모르고 넘어간 거 없나. 볼 항목은 있었는데, 언제 그만 봐도 되는지는 몰랐다. 혼자서는 끝까지 확신이 안 서는 자리였다.
누군가 내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줬다는 것도 고마웠다. 몇 문장이 아니라, 네 여자 이야기 전체를 읽고 준 답이었다.
*
번역문이 생기면 바로 바카라을 올리는 줄 알았다.
실제로는 그 사이에 표 두 장을 만들고, 항목을 나눠 묻고, 사람한테 읽어 달라고 하는 일이 있었다.
다른 나라 독자가 네 여자의 선택에 다 동의할 필요는 없다. 다만 왜 거기까지 갔는지는 따라올 수 있었으면 했다. 한국어로 그걸 쓰려고 애썼으니까.
수연은 수연으로, 정희는 정희로.
미경과 서윤도 각자의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그대로 출간해도 되겠다는 한 줄을 들고, 다음 화면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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