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사장이 꼭 알아야 할 소비자의 시선들
최근 드립커피에 입문했다. 커피 좀 한다는 카페를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를 정리하고자 글을 쓴다.
첫째는, 커피에 대한 수요가 한 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커피는 그냥 누군가는 카페인을 위해, 누군가는 오래 앉아있을 자리가 필요해서 먹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맛있으면 좋지만, 진짜 목적은 공간이나 시간, 에너지에 있지 커피 그 자체가 아니었다. 비싼 돈을 주고 한 잔에 만 오천 원짜리 드립커피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기는 했지만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막상 나 자신이 공간이 아닌 커피의 맛을 즐기기 시작하자, 여기에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세계 간의 간극이 꽤 컸다. 커피 시장은 아주 뚜렷한 몇 가지 수요층이 서로 분리된 채로 존재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커피 수요는 대략적으로 세 가지 집단으로 나뉘어 있다. 기능형, 공간형, 그리고 미식형이다.
기능형은 말 그대로 커피라는 음료의 기능을 위해 커피를 찾는 사람들이다. 핵심 목적은 각성, 집중, 피로 회복이다. 이들의 브랜드 선택 기준은 맛이나 향보다는 가격과 속도에 있다. 빨리, 싸게, 그리고 많이 카페인을 섭취해야 하기 때문에 저렴하고 양이 많은 저가 커피를 선호한다.
이 수요층을 겨냥한 것이 메가커피, 컴포즈커피, 더벤티 등의 저가 커피 브랜드다. 매장 수가 많아 어디에나 있고 접근성이 좋다.
공간형은 카페라는 특유의 공간을 향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커피를 찾는 사람들이다. 체류 목적은 공부, 작업, 미팅, 수다 등으로 다양하다. 이들의 카페 선택 기준은 목적에 따라서 좌석의 편안함, 매장의 분위기, 와이파이나 콘센트의 유무, 브랜드의 예측가능성 등이 있다.
수다냐, 작업이냐에 따라 잘 맞는 카페의 모양이 다르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거실 같은 분위기의 아늑한 개인 카페가 좋다. 그러나 작업이나 공부를 위해서는 오래 앉아있어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가 적합하다.
이 수요층을 타깃으로 한 카페로는 스타벅스, 투썸플레이스, 할리스와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 그리고 다양한 인테리어의 개인 카페가 있다.
마지막으로 미식형은 커피 그 자체의 맛과 향을 좇는 사람들이다. 유일하게 프랜차이즈보다 개인 카페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분야다. 이들은 와인과 위스키 마니아들처럼 커피를 분석의 대상으로 본다. 산지, 품종, 로스팅, 추출 방식, 산미와 바디감과 같은 요소를 섬세하게 구별하며 그 차이를 즐긴다. 이들의 선택 기준은 원두의 종류나 바리스타의 실력, 많은 요소들의 매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커피의 퀄리티다.
최근에는 이런 커피 미식가들을 위한 카페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인테리어나 접근성을 포기하고 커피의 퀄리티에 총력을 기울인 곳도 많다. 미식형 카페는 하나하나가 장인 정신과 개성으로 무장하여 자부심을 가지고 커피를 서빙한다. 스타벅스에서도 이런 트렌드를 좇기 위해 리저브 라인을 내놓은 바 있다.
그리고 경험하기에, 이 세 가지 수요층은 생각보다 더 분리되어 있다. 잘 섞이지 않는다. 필터커피의 맛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1,900원이면 살 수 있는 커피 한 잔에 19,000원을 지불하지는 않는다. 주로 작업이나 공부를 위해 카페를 찾던 나도 '오래 앉아있을 수 있는가, 편안한가'가 선택의 기준이었지 맛을 보고 찾아가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왠지 그러고 싶어져 마신 핸드드립 커피의 맛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이 맛을 한번 더 경험하고 싶어 핸드드립 전문점을 찾게 됐다. 그러다 또 다양한 맛을 느껴보고 싶어 이곳저곳에서 여러 산지의 커피를 주문하게 됐다. 돈이 많이 들었지만 비싼 레스토랑에서 외식하는 셈으로 쳤다. 이 맛을 알고 나니, 공간을 목적으로 방문했던 프랜차이즈 카페의 커피가 너무나도 쓰고 심심하게 느껴졌다! 옛날엔 맛있다고 잘만 마셨는데도.
그 차이가 재미있다. 만약 카페를 한다면 이 세 가지 수요층 중 어디를 타깃으로 할 것인가를 명확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찾지 못하는 애매한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확실해야 한다. 커피를 찾는 사람의 동기는 생각보다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둘째는, 새삼스럽지만 인간은 변한다는 사실이다.
커피에 대한 나의 태도는 계속해서 변해 왔다. 대학생 때는 살기 위해 마시는 생명수 같은 것이었다. 등교길에 빠르게 테이크아웃 할 수 있는 천 원짜리 커피를 마셨다. 커피 한 잔에 2천 원이 넘으면 사치였다.
노트북으로 작업할 일이 많아지면서부터는 공간을 위한 수요층으로 넘어갔다. 프랜차이즈 브랜드 한 가지를 정해놓고 거기만 갔다. 오래 앉아있어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애초에 그런 사람들을 타깃으로 했기에 점주에게 큰 민폐가 되지도 않는다. 스탬프나 쿠폰도 쏠쏠해서 자주 가면 그렇게 비싸지도 않다. 어느 지점을 가도 일관된 분위기를 기대할 수 있는 점도 좋았다. 커피 맛도 나름 쓸만했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인해 건강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체력과 컨디션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잠을 잘 자고 싶어 커피를 아예 끊어보기도 했다. 가능하면 차를 마셨고, 꼭 카페를 가야 한다면 디카페인을 선택했다. 이 변화가 안정된 습관으로 잡힌 게 불과 한 달 전이었다.
그리고 최근, 드립커피의 맛에 반해버렸다. 심심하고 시큼하다 생각했던 맛이 프랜차이즈 커피와는 차원이 다른 다채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맛있게만 먹었던 최애 브랜드의 커피가 '쓰기만 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아직 원산지나 가공 방식, 워시드니 내추럴이니 하는 복잡한 개념에 따른 차이까지는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커피가 단조롭고, 어떤 것이 그렇지 않은지 정도는 느끼게 되었다.
이 변화가 조금 우습다고 생각했다. "나, 건강을 위해 커피를 끊었어."라고 당당히 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하루에 두 잔씩 무지하게 비싼 커피를 마시고 있다니. 사람의 말이란, 결심이란 이리도 쉽게 변해버리는 것이다. 적절한 계기만 있다면.
커피만 그런 게 아니다. 계기가 있다면 사람은 변한다. 가치관도, 말투도, 행동도, 취향도, 모두 변할 수 있다. 그런 변화는 결심해서 되는 게 아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자극이 주어졌을 때 내 의도와 상관없이 불현듯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너무 단단하게 정의 내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지금은 이렇더라도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고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살면 좋지 않을까. 그럼 한 번의 삶을 더 다채로운 색으로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는 '커피가 다 똑같지 뭐',라고 생각하다가도, 딱 한 잔으로 그 말이 바뀌어버리는 것처럼.
사람은 의외로 순식간에 바뀔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