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는 필요없다 '미움'과 '이쁨'에 대한 소고 벌써 2년째 매일 새벽마다 글을 올리는 밴드가 있는데 늘.. 그래, 그렇지. 라며 인지하고 있던 '미움받을 용기'라는 글귀가 오늘따라 유난히 내 신경을 건드린다. 그래서 글자그대로 '미움받을 용기'내고 딴지 한 번 걸어보련다! 왜 용기내야 할, 하고 많은 것들 중에 '미움받는' 것에까지 용기가 필요하단 말인가? 내가 그리도 나약한가? 한번도 욕먹지 않고(아니면, 욕인지 구분못하고) 살았던 공주도, 늘 남의 눈치만 살피며 눈칫밥만 먹 으 며 산 것도 아닌데 말이다. 미움에 용기가 필요하다면 대립극에 있는 이쁨받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 해 야 맞다. 물론, 내 양심에 흡족하지 않은 칭찬을 받을 때엔 거절의 용기도 필요하지만 정작 이쁨받을 땐 넙죽 받으면서 미움에만 용기가 필요하다면 약간 비겁하지 않나? 만약 미움 에 용기가 필요할 정도로 미움받는 것이 괴롭다면 오히려 나에게 미움을 준 사람에게 감사하라. 내가 칭찬에 길들여져 안하무인이 되지 않도록 , 나만 나를 모르는 바보가 되지 않도록 도와준 정말 고마운 사람이니 말이다. 용기가 필요한 시점은 뭔가 안하던 또는, 못하는 무언가를 시도할 때인데 미움을 한 번도 안 받아봤다는 것인지 아니면 미움받는지 몰랐다는 것인지 여하튼, 이 둘 모두 자기 자신을 모르는 경우 다. 어찌 살면서 미움을 한 번도 안 받아봤을까? 말이 안 된다. 어찌 살면서 내가 미운짓을 했구나를 한 번도 못 느껴봤을까? 이 또한 말이 안된다. 그러니 '미움받는' 것에 용기는 필요없다. 내가 나도 모르게 미운짓을 할 때가 있지. 또는 밉지 않은 짓이더라도 남의 눈에 밉게 비칠 때도 있지. 또는 이유없이 누군가는 내가 밉겠지. 또는 세상에 무언가를 던지기 위해 애써 미운짓을 끌어와야할 때도 있겠지. 여기에 우리는 미움이라는 감정 이전에 이성 을 출두 시켜보자. 나도 모르게 미운짓하는 건 뭐, 어쩔 수 없다. 사람의 잘못도 알고 저지르는 것보다 모르고 저지르는 게 천가지 만가지니까. 미운짓한 것 없이 그냥 이유없는 밉상이라면 그건 내 몫이 아니라 날 미워하는 그 사람이 치를 계산서이니 이 또한 상관할 바 아니며 세상에 던지기 위해 애써 미운짓을 끌어와야 한다면 이건 미움에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에 던질' 그 도전에 용기가 필요한 것이니 제발 이성을 써야 할 곳에 감정을 낭비하지 말자! 그리고! 미움받겠다는 것은 이쁨받겠다는 것 이다! 마치, 아가들이 엄마의 관심을 끌려고 미운짓을 일부러 하는 것처럼 미운 짓은 이뻐지기 위한 몸부림이니 이것은 미움받을 용기가 아니라 이쁨받을 용기인 것이다. 미움받지 않으려 애쓰는 에너지를 더 이쁜 나로 만드는 방향으로 틀어보면 어떨까? 어차피 여기나 저기나 에너지를 써야 하니 말이다. 또, 내가 밉든 안밉든 감정의 노예가 되지 는 말자. 이쁜 짓은 이쁜대로 미운 짓은 미운대로 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감정이고 다 나를 키우기 위해 세상에 내지르는 반응 이다. 우리가 성장한다는 것은 보다 더 인간적으로 나아진다는 것. 인간적으로 나아진다는 것은 이성적인 사고가 성숙해간다는 것. 이성적인 사고가 성숙해진다는 것은 감정통제와 조절에 유능해진다는 것. 그러니 미움받을 감정 에까지 용기를 보태기보다 이성적사고를 키우는 데 더 용기를 보태어 더 인간적으로 성숙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어떨까? 자연스럽게 이렇게 방향을 튼 나는 내게로 오는 미움까지도 모두 담을 수 있는 큰 사람이 되어 있을테니 말이다. 남들이 나를 미워하든 이뻐하든 내가 나를 더 이뻐하는 쪽으로 우리, 용기내보면 어떨까? * 이 글은 '미움받을 용기'라는 특정 바카라의 내용이나 저자와는 무관하며 지극히 글자그대로의 조합에 대한 지담의 개인적인 의견임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 글 발행하자마자 신기한 일이 있어 이렇게 제 카페 새벽일기장에 적었네요. 그냥 공유합니다.^^ https://cafe.naver.com/joowonw/55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