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나와 이름이 같았던 아이

러브레터 레퍼런스

by임경주



숨을 참고 잠수해 들어간다. 깊이 더 깊이. 이대로 계속 숨을 참으면 죽는 걸까?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는다는 게 뭘까. 죽고 나면 뭐가 있는 걸까? 서진이는… 잘 있을까? 물속에서 물방울처럼 웅크리고 있었던 진호의 몸이 펴졌고 수면 위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서진이를 보낸 화장터에서 인사하고 그만 돌아서려 했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가지 않았으면 장모가 되었을 사람. 서진의 어머니께서 집에 가자고, 같이 가서 밥 먹자고 손을 꼭 잡으신다. 이대로 보내면 진짜 남이 될 것 같다고.


어머님이 식사를 차리시는 동안 서진의 방에 들어와 있다. 방은 그대로다. 나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 바카라상에 놓여 있고 즐겨 입던 옷도 그대로 걸려 있다. 침대에 걸터앉아본다. 이 침대에서 서로가 서로를 꼭 껴안았다. 불과 며칠전이다. 노크소리에 놀라 바카라상의자로 이동했고 태연한 척하다가 웃었다. 그렇다. 결혼을 앞둔 사이였고 서진의 뱃속에는 우리의 아이가 생겨 있었다.


사인은 목졸림에 의한 질식사다. 서진은 프로파일러, 즉 범죄행동분석관으로 직무수행 중에 순직했다. 사체를 찾아야 했다. 내가 붙잡았던 연쇄살인피의자의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사고가 일어나는 건 한 순간이다. 돌이켜보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다 나가달라고 할 때 끝까지 말렸어야 했다. 괴물에게도 어린 시절은 있다고 믿었던 그녀의 순수는 산산조각 났다. 다신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립고 그리워 중학교 앨범을 다시 펼쳐본다. 차서진. 그 안에서 그녀와 이름이 똑같은 한 남학생을 보았다.


!


깜짝 놀랐다. 차서진. 난 줄 알았다. 내 어린 시절의 사진인 줄로만 알았다. 나와 너무 닮았다. 앨범을 함께 보았을 때 그녀가 이 페이지를 빠르게 넘겼던 장면이 떠오른다. 내 이름은 박진우. 나도 경찰이다. 현장을 뛰는 형사다. 그녀와 같은 이름에 나와 꼭 닮은 남자 차서진이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알아냈다. 지금 만나러 간다. 부산이다.




차서진은 작가다. KTX안에서 그의 작품들을 e북으로 먼저 만나보았다. 그녀가 꽤 등장했다. 여전히 아름답고 착한 사람이었다. 근데, 첫 키스는 담배 맛이었다고? 서진의 첫 키스는 정말 서진이었던 걸까? 둘이 도대체 어떤 사이였던 것일까.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 해운대의 스타벅에 들어섰을 때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았다. 세상의 모든 빛과 소음이 사라지고 오직 단 두 사람, 나와 차서진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부고를 전했다. 결혼을 앞둔 사이였다. 많이 사랑했다. 아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작가님을 보니까 그 녀석이 왜 날 좋아했는지 알겠네요. 서진이… 작가님 좋아했던 거죠?

아니요. 저만 좋아했어요. 그 친구가 날… 아니요, 아닐 겁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형사 직감입니다.


차서진이 얘기를 들려준다. 나는 차서진의 기억 속에서 그녀를 다시 만난다. 어린 시절,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도 순수했던 모습을.




20년 전, 봄. 부산 사하구 사하중학교 1학년 교실.

시끌벅적하다.


조용조용.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하며 얼굴을 확인한다.


차서진.

네.

네.

뭐야? 누구야? 아, 이름이 똑같구나. 음 넌 큰 서진, 넌 작은 서진으로 하자.


큰 서진, 작은 서진. 학생들이 따라 하며 소리 내어 웃는다. 뭐야? 키도 내가 더 큰 거 같은데 내가 왜 작은 서진이지? 작은 서진의 부끄럽고 못 마땅한 얼굴에 큰 서진이 뭐? 뭐, 어쩌라고? 라며 불쾌해했다. 아예 대놓고 정색한다. 자기도 큰 서진이라고 불리게 되는 것이 싫었나 보다. 작은 서진은 그래서 더 기가 막혔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


음… 갑자기 자신감이… 이미 때 묻은 내가 이걸 그려낼 수 있을지…

칠판에 당번 이름이 적히는데 큰 서진 작은 서진이 적혀 있어 작은 서진이 열받아 다 지우고 차서진 차서진으로 쓰고

비 오는 날 우산장면 이건 너무 흔한가…

글짓기 대회에서 수상작과 수상자가 뒤바뀌고

둘 중 한 사람이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위로해 주고 위로받고 도서관 대여카드에 이름…

서진도 사실은 서진을 엄청 좋아했다는…

뭐 이런 기억 속으로 진호가 죽은 서진의 어린 모습을 다시 만나는 과정… 네네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응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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