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즐거움들

내맘대로 일기 78

byEAST

빈둥빈둥, 이러다 소중한 오전이 후딱 지나갈라, 조바심에 산바카라길 나선다. 어제 때 아니게 비바람 거세더니 세상에나 날이 감쪽같이 활짝 갰다. 바람도 적당히 불어 걷기 아주 좋다. 나오길 참 잘했네, 흥얼거리며 6월 5일을 걷는다.


그러고 보니 화성 산바카라길 오랜만이다. 나선 김에 단골 카페에 들른다. 주인 내외가 반긴다. 즐겨 마시는 아이스 카페라테 한 잔 주문하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 온라인카지노에 발행된 글을 읽는다. 열어 둔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고,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을 들으니 리듬 따라 잠이 부드럽게 찾아온다. 그러다 새소리에 잠이 깬다. 기분 좋은 몽롱함에 잠시 몸을 맡긴다.


슬슬 다시 산바카라길을 나선다. 산으로 난 오솔길 따라 오르락내리락, 정상으로 난 길로 접어든다. 서장대(화성장대). 정조대왕이 훈련을 직접 지휘했다는 곳. 비록 이루지 못한 꿈이지만 그는 이곳 수원으로 도읍을 옮기려 했다지. 정조대왕이 되어서 눈 아래 펼쳐진 풍경을 본다. 깨끗하다. 멀리 장안문(북문)과 창룡문(동문)이 아스라이 보인다.

서장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 왼쪽으로 장안문, 오른쪽 상단으로 창룡문이 까마득히 보인다.

익스큐즈 미.

뭐라구? 낯선 말에 깜짝 놀란다.

장대같이 큰 외국인, 카메라를 들고 찍어 달란다. 원 모어, 원 모어, 원 스텝 백, 백! 외치며 가로 세로로 연신 찍는다. 우리 한국인들 사진에 진심이다. 해브 어 나이스 트립, 립 서비스까지 잊지 않는다. 외국인은 엄지를 척 세우고, 땡큐! 땡큐! 하며 활짝 웃는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화서문 방향으로 내려간다. 그새 못 보던 빵가게가 오픈한 게 보인다. 시나몬 롤을 파는 곳이다. 향긋한 냄새에 이끌려 들어간다. 젊은 사장이다. 이제 두 달 되었다고. 이탈리아 아내랑 결혼했고, 아내의 꿈인 베이커리를 열고자 이곳 수원으로 오게 되었단다. 새롭게 수원에 정착한 젊은 내외의 행복을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어느새 오후 1시가 넘었다. 햇빛이 따가워진다. 서서히 다리가 아프다.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배도 고프다. 손에 든 시나몬 롤 봉투로 자꾸 눈이 간다. 침이 고인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횡단보도 신호에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른다. 그러다 옆에 세워진 사각 모양의 철제 통을 본다. 뭐지? 뭐라 쓰여있다. 우하하! 웃음이 터졌다. 누가 정조의 도시 아니랄까 봐. 어명이다. 이리 옷너라! 헌 옷 수거함 덕분에 크게 웃었다. 소소한 즐거움들 가득 담고 발걸음 가볍게 집으로 돌아온다.

어명이오. 이리 옷을 넣으시오. 안 그러면......


작가의 이전글바람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