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내 마음은 왜 그렇게 움직일까

by은파랑

1890년, 하버드의 윌리엄 제임스는
교과서에 낯선 문장을 적어 넣었다.
"우리는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울기 때문에 슬픈 것이다."

사람들은 순서가 거꾸로라며 웃었다.
그는 곰을 만난 사람을 예로 들었다.
곰을 보고 무서워서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다리가 먼저 달아나고
몸의 반응을 알아차린 마음이
뒤늦게 "무섭다"라고 이름 붙인다.

그 뒤 백 년 넘게 이 문장은 논쟁 속에서 살아남았다.
오늘의 신경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정리한다.
마음은 몸에서 올라온 신호를 받아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이건 아마 불안일 거야"라고 짐작해 이름을 붙인다.
같은 두근거림도
시험장에서는 두려움이 되고
첫 만남에서는 설렘이 된다.

우리 마음이 갑자기 가라앉거나 끓어오르는 것은
이유 없는 변덕이 아니다.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고,
기억이 신호를 읽고,
읽은 대로 감정이 태어난다.
그 과정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서
우리는 늘 결과만 만난다.

그래서 어떤 날은 별일 없는데도 마음이 무겁다.
잠을 설쳤거나, 배가 고프거나,
어제 들은 말이 몸 어딘가에 남아 있을 때
몸의 신호를 마음이 슬픔이라고 읽어버린다.
감정이 나를 배신한 것이 아니라
몸과 기억이 만든 번역이 조금 빗나갔을 뿐이다.

이를 알고 나면 마음을 다루는 길이 열린다.
첫째는 몸을 먼저 살피는 일이다.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잤는지, 숨은 얕지 않은지.
마음을 고치기 전에 몸의 신호를 돌려놓으면
같은 하루가 한결 다르게 읽힌다.

둘째는 이름을 다시 붙여보는 일이다.
"나는 불안하다" 대신
"가슴이 빨리 뛰고 있구나. 이건 긴장일 수도 있겠다."
설렘과 두려움은 몸에서 거의 같은 얼굴을 한다.
조금 너그러운 이름을 고르는 것만으로
마음이 걸어갈 길이 달라진다.

셋째는 기억의 습관을 알아보는 일이다.
왜 늘 같은 말 앞에서 무너지는지,
왜 같은 장면에서 화가 나는지.
마음은 과거에 배운 대로 읽기 때문에
오래된 상처가 지금의 장면을 대신 해석하곤 한다.
"이건 지금의 일일까, 그때의 일일까."
질문 하나가 해석을 한 박자 늦춰준다.

넷째는 서두르지 않는 일이다.
감정이 지나가는 데는 보통 몇 분이면 충분하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이후 오래 이어지는 것은
감정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생각이다.
파도가 오면 파도라고 이름만 불러주고
지나가게 두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방법을 써도 마음이 오래 가라앉고
일상이 무너질 만큼 이어진다면
그건 혼자 풀 숙제가 아니다.
몸의 병을 의사에게 보이듯
마음의 병도 전문가에게 보이면 된다.
도움을 청하는 것 역시
마음을 다루는 훌륭한 방법이다.

오늘 마음이 낯설게 움직인다면
이렇게 말해보자.
"무슨 일이야. 몸이 먼저 말하고 있구나.
천천히 듣고 이름을 붙여줄게."

마음은 제멋대로 움직이는 괴물이 아니라
몸과 기억이 함께 쓰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번역이다.
번역을 곁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되는 것,
마음을 이해하고 다룬다는 말은
결국 그런 뜻이다.


은파랑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brunch membership
은파랑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은파랑은 얘기꾼입니다.

5,373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305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423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4화화는 마음의 경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