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미트파이

by은파랑

영국 부엌에서는
파이를 식혀서 먹거나

접시 위에 올려
으깬 감자를 곁들여 먹었다.

바다를 건너 먼 남쪽 대륙에 닿은
파이는

조금씩
다른 모습이 되어 갔다.

한 손에 쥐고
뜨거울 때 베어 먹는 파이

고기로 속을 가득 채운
손바닥만 한 파이

1870년대
애들레이드의 밤거리에

말이 끄는
파이 수레가 나타났다.

스코틀랜드에서 건너온 제과사도
큰길 모퉁이에 수레를 세우고

밤늦도록
뜨거운 파이를 팔았다.

우체국 앞 수레는
우체국이 문을 닫는 저녁 다섯 시에 불을 켜고

자정 무렵까지
문을 열어두었다.

창구 앞에는
신사도 노동자도

술집에서 나온 이도
늦게 일을 마친 이도

나란히 줄을 섰다.

1890년대
수레에서 새로운 한 그릇이 태어났다.

걸쭉하게 끓인 초록빛 완두콩 수프를
넓은 그릇에 붓고

위에
뜨거운 미트파이를 뒤집어 띄운다.

붉은 토마토소스를
둥글게 끼얹는다.

사람들은 그것을
파이 플로터라 불렀다.

떠 있는 파이

1938년
수레가 하나둘 사라져 가자

한 신문기자는
완두콩 바다에 띄운 뜨거운 파이가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글을 썼다.

같은 무렵
시드니 부둣가 울루물루에서는

해리의 수레 식당이
밤의 선원들을 맞았다.

멜버른 다리 위에서는
한 사내가 밤새 불을 켜고

파이를 팔았다.

1947년
빅토리아의 금광 도시 벤디고에서

한 젊은이가 만든 파이는
옛 동요의 한 구절을 이름으로 얻었다.

스물네 마리 검은 새를
파이 속에 구웠더니

파이는
이 나라 풋볼 경기장의 상징이 되었다.

바닥에는
단단하고 고소한 반죽을 깐다.

손에 쥐어도
속이 새지 않도록

안에
다진 소고기와 양파를 넉넉히 채운다.

오래 졸인 진한 그레이비가
고기 사이사이를 적신다.

후추를 톡톡 뿌리고
얇은 반죽을 겹겹이 접은 뚜껑을 덮는다.

오븐에 넣으면
뚜껑이 부풀어 오르며 황금빛으로 익어간다.

뜨거운 파이 위에
붉은 토마토소스를 한 줄 짜 올린다.

조심스럽게 한 입 베어 물면
바삭
겹겹의 뚜껑이 부서져 흩날린다.

뜨거운 그레이비가
혀끝을 먼저 데우고

부드럽게 뭉개진 고기의
진하고 짭짤한 맛이

입안 가득
차오른다.

토마토소스의 달큰하고 새콤한 맛이
묵직함을 가볍게 들어 올린다.

뜨거워서 후후 불고
또 한 입

부스러기가 옷 위로 떨어져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겨울 경기장 찬바람 속에서
사람들은 한 손에 파이를 쥐고

다른 손을 흔들며
목청껏 응원한다.

파이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차가운 공기 속으로 흩어진다.

이 나라 사람들은
해마다 한 사람이 열두 개가 넘는 파이를 먹는다.

세상에서 파이를
가장 많이 먹는 사람들

누군가는 이 파이를
국민 음식이라 불렀다.

호주 미트파이 하나에는

바다 건너온 옛 나라의 부엌과
밤거리 수레 앞에 나란히 서던 모든 사람들과

찬바람 속 경기장의
뜨거운 함성이

바삭하게, 뜨겁게
함께 구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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