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치를 넘은 순간

그래서 난 오늘도 수영장에 간다. 02

by최영훈

나이 오십이 넘어 자신의 한계를 넘는 일은 쉽지 않다. 당연히 흔치도 않다. 아니, 솔직히 그런 걸 시도나 하겠나. 대체로 평안과 평온을 찾을 나이다. 일상은 무덤덤하게 돌아가고 침대에선 겨우 선방하고 사춘기 딸의 눈치를 보며 하루가 무사히 끝나기를 바란다. 딱 하루치의 평온을 염원하며 잠들기를 반복하는 날들이 이어진다. 그러나 인생은, 대체로 예상치 못한 극적인 순간을, 어떤 모멘텀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것도 아주 예상치 못한 곳에서, 기대치 않았던 사람과 순간에 말이다.


작은 허들을 넘어선 순간들

최근 넘어선 역치는 수영이다. 4월 말? 아니 5월 초든가. 어느 날, 체력의 벽 하나를 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느낌은 금세 확신이 됐다. 우선 몸풀기 자유형 다섯 바퀴에서 앞 주자와의 간격이 사라졌다. 보통 이때, 난 천천히 돌았다. 어차피 내 뒤엔 나보다 더 느린 사람이기에 앞의 주자들이 속도를 내며 멀어질 때 난 심드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난 바짝 따라붙었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고 그 뒤의 운동도 수월하게 마쳤다.


컨디션이 유독 좋았던 날이다 싶어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연이어해 봤다. 괜찮았다. 비슷한 시기에 접영 100미터도 했다. 어떤 이의 SNS를 보니 동호인이 접영 100미터를 할 수 있으면 고수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혹시나 해서 해 봤더니 됐다. 여하간 분명, 어떤 보이지 않던 한계를 넘었고, 그 이후로 내 수영은 약간 다른 단계로 진입했다.


다른 차원의 역치 극복도 있었다. 최근 학원에서는 내게 클래스인 배우기를 종용하고 있다. 온라인 콘텐츠 생산을 위해서다. 이 나이에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스트레스라 피하려 했으나 그 콘텐츠에는 내가 생각해도 적임자여서 배우기로 했다. 이 학원 와서 캔바와 미리캔버스도 처음 사용해 봤고 AI도 처음 사용했다. 이쯤 되면 학원은 단순히 이직과 전직의 공간과 그 영역이 아니라 인생의 어떤 전환점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클래스인을 몇 번 해보니, 워낙에 직관적인 툴이라 금세 적응이 됐다. 6주간 온라인 특강을 하는데, 이 기간, 숙련도가 올라갈 듯.


부작용, 혹은 후유증

물론, 부작용도 있다. 나이가 있기에 그만큼 체력이 예전 같지 않으니 어떤 하나의 벽을 넘을 때마다 몸이 받는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크다. 그 여파로 최근 발바닥과 손바닥에 뭐가 난 뒤 껍질이 벗겨지기도 했다. 뭐, 그렇다고 걷지도 못하고 설거지도 못할 정도도 아니며 수영을 못할 정도도 아니었다. 이제는 사라지고 있다.

“도전!”이라고 외치고, 머리에 질끈 끈을 동여매고 도전에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일은 내게 흔치 않다. 성격에 안 맞다. 그러나 살다 보면 부득이하게 도전 아닌 도전과 마주하게 된다. 자신의 체력을 조금 더 뛰어넘는 뭔가를, 이제까지의 삶의 경험 안에 없는 새로운 뭔가를 하기를 요구받고 해야만 하며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만 회피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제법 나쁘지 않은 중년의 삶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요즘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고 있다. 학원에 꽂혀 있기에 궁금하여 읽고 있는데,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대사와 맥락 없는 상황이 전개되는데, 묘하게 재미있다. 이거 실제 연극으로 보면 의외로 황당한 재미가 있겠는데,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 또한 하나의 허들이라면 허들, 역치라면 역치를 넘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려운 건 어려운 데로, 황당한 건 황당한 데로 그 나름의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건, 뭔가 내가 가진 고정관념, 혹은 상식을 넘어섰다는 뜻 아닐까? 그렇다면, 계속 이렇게 유연하게 나이를 먹는다면, 이 또한 그럭저럭 제법 나쁘지 않은 중년으로 가는 데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