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의 파괴와 다원적 시선
장자(莊子, 기원전369?-기원전286) 의 철학과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의 예술은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에서 탄생했지만, 기존의 틀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려 했다는 점에서 놀라운 공명(共鳴)을 보여준다.
장자의 제물론(齊物論) - 사물을 하나의 고정된 관점으로 보지 않고, 만물이 저마다의 가치를 지녔음을 인정한다.
피카소의 입체주의(Cubism) - 전통적인 '1점 투시도'를 버리고, 하나의 대상의 앞면, 옆면, 뒷면을 한 화면에 동시에 해체하여 결합했다.
피카소의 작업은 마치 장자가 말한 제물론의 사유를 시각예술로 구현한 것처럼 보인다. 시대와 장소를 넘어선 공통된 사고방식을 볼 수 있다.
<莊子>다시 읽는 원전 장자. 45쪽. 안동림 역주. 1993. 현암사
<장자철학> 리우샤오간 씀. 최진석 옮김. 1987. 조합공동체 소나무.
<장자 내편> 49쪽. 김창환 옮김. 2012. 을유문화사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노자(老子, 기원전571-기원전471))다. 장자를 말하면서 노자사상을 끌어들인 것은 틀린 것일까?
‘노자’와 ‘장자’는 같은 뿌리(노장철학)다. 두 사람은 동양 철학에서 '노장사상'으로 묶인다. 노자가 "인위적인 제도를 버리고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며 무위자연의 기초를 세웠다면, 장자는 이를 이어받아 예술과 삶의 영역에서 개인의 절대적인 자유(유유자적悠悠自適)로 발전시켰다.
장자의 심재(心齋)와 좌망(坐忘)-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를 잊어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길 때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고 했다.
좌망(坐忘)은 조용히 앉아서 자신을 묶고 있는 세상의 지식, 도덕, 편견을 모두 잊어버리는 경지다. 피카소는 전통 미술의 규칙(원근법, 해부학)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린 파괴적 창조를 했다. 장자의 좌망을 떠올리게 한다.
심재(心齋)는 마음을 굶긴다는 뜻으로, 욕심과 고정관념을 비워내고 순수한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아이처럼 그리는 법을 터득하는 데 평생이 걸렸다"던 피카소의 말처럼, 기교를 비워내고 순수로 돌아간 상태와 일치한다.
노자가 슬롯·정치적인 틀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자(무위자연)고 했다면, 장자는 거기서 더 나아가 내 마음을 비워(심재·좌망) 예술가처럼 자유롭게 살자고 외친 것이다. 피카소는 "아이처럼 그리는 법을 배우는 데 평생이 걸렸다"고 말하며, 계산된 기술을 넘어 무의식적이고 순수한 본연의 창작 상태를 추구했다. 피카소의 작업은 억지로 꾸미지 않는 ‘자연스러움’과 ‘아동 같은 순수함’이 최고의 예술적 경지임을 시사한다.
장자의 무용지용- 세상이 말하는 ‘쓸모없음’이 사실은 자신을 보존하고 본질을 지키는 가장 큰 ‘쓸모’가 된다는 역설이다. 피카소는 버려진 자전거 안장과 핸들로 <황소 머리>라는 걸작을 만들었다. 쓰레기(무용)가 위대한 예술(유용)로 변모한 오브제의 재해석이다. 세상이 정해놓은 가치 기준을 전복하여 사물의 새로운 존재 가치를 발견했다. 현대 화가들에게는 흔한 작업 방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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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wikiart.org/en/pablo-picasso/bulls-head-1942
피카소 <황소머리> 1942. 브론즈. 33.5 x 43.5cm 피카소 미술관, 파리, 프랑스. ©파블로 피카소재단
피카소는 어느 날 길가에 버려진 낡은 자전거의 안장과 핸들을 발견했다. 안장을 뒤집어 황소의 얼굴(머리)로 삼고, 핸들을 그 위에 거꾸로 붙여 황소의 뿔을 완성했다. 두 부품을 용접하여 붙인 뒤, 청동으로 캐스팅(주조)하여 하나의 완벽한 조각품으로 탈바꿈시켰다.
당시 서양 조각은 돌을 깎거나 찰흙을 빚어 대상을 똑같이 재현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피카소는 레디메이드를 연상시키는 발견된 오브제의 조합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했다. 대상을 정교하게 묘사하지 않고도, 사물의 배치를 바꾸는 것만으로 본질을 표현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뻔한 '버려진 자전거 부품(세상이 말하는 쓸모없음, 무용)'이, 예술가의 직관적인 시선을 거쳐 수백억 원의 가치를 지닌 '위대한 걸작(유용)'으로 전복되었다. 사물의 고정된 이름(자전거)을 지워버리고 새로운 존재(황소)를 탄생시킨 방식은, 편견을 버려야 만물의 본질이 보인다는 장자의 제물론(齊物論)적 태도와도 일치한다.
피카소는 1943년 사진작가 브라사이(Gyula Halász Brassaï, 1899-1984)와의 대화에서 사물을 보자마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번개처럼 아이디어가 합쳐졌다'고 회고했다.(브라사이의 저서 <피카소와의 대화 (Conversations with Picasso)>). 이는 장자가 말한, 감각적 계산을 지우고 온전히 직관으로 대상을 마주하는 심재(心齋)의 상태와 고스란히 겹쳐진다.
도어 애쉬턴(Dore Ashton, 1928-2017)이 엮은 저서 <예술에 관한 피카소의 말 (Picasso on Art)>에서 피카소는 황소 머리가 다시 쓰레기장으로 돌아가 자전거 부품이 되는 '이중의 변형'을 꿈꿨다. 쓸모없음이 쓸모 있음이 되고, 다시 쓸모없음으로 순환하는 구조는 만물의 경계를 허물고 순환을 긍정했던 장자의 '제물론'과 '무용지용'의 흥미로운 서양적 변주다.
피카소의 말을 곱씹어보면 <황소머리>는 예술이란 기술이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그 자체임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모범 답안이라는 생각이다.
장자의 호접몽(胡蝶夢)-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분별이 사라지는 절대적 동화의 경지다. 피카소는 대상을 그릴 때 그것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본질을 흡수하는 직관적 방식을 사용했다. 그의 집요한 예술적 몰입을 알 수 있다. 피카소는 주체(예술가)와 객체(자연·대상)의 이분법적 경계를 허물고 하나가 되는 경험을 중시했다.
동양 철학과 서양 현대 미술의 거장이 보여주는 놀라운 평행이론은 인류의 창조성이 결국 하나의 본질로 통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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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79766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1907. 캔버스에 유채, 243.9 x 233.7cm. 뉴욕 현대미술관, 뉴욕, 미국
© 2026 파블로 피카소 재단 / 미국 미술저작권협회(ARS), 뉴욕.
제목에 나오는 '아비뇽'은 프랑스의 도시가 아니라, 피카소가 살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창가(홍등가) 거리 이름이다.
화면에는 다섯 명의 나체 여성들이 등장한다. 피카소는 이들을 아름답고 우아하게 묘사하는 대신, 날카로운 기하학적 형태로 쪼개어 거칠고 도발적인 모습으로 표현했다.
서양 미술사에서 르네상스 이후 500년간 이어진 전통을 완전히 무너뜨린 현대 미술의 출발점이자 입체주의(Cubism)의 서막을 연 위대한 걸작이다. 이 작품이 미술사를 뒤흔든 이유는 전통적인 원근법과 명암법을 완전히 쓰레기통에 버렸기 때문이다.
서양 미술은 르네상스 이후 하나의 고정된 눈(1점 투시도)으로 본 세상만 그렸다. 하지만 피카소는 이 작품에서 한 인물의 앞모습과 옆모습, 뒷모습을 한 화면에 동시에 그려 넣었다. 오른쪽 아래 앉아 있는 여인은 등을 돌리고 있지만, 얼굴은 관객을 향해 180도 돌아가 있다. 다시점(Multiple Viewpoints)의 그림이다.
오른쪽 두 여성의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기괴한 아프리카 원시 가면의 형태를 하고 있다. 피카소는 서양의 정형화된 미적 기준에서 벗어나 원시 미술의 강렬한 생명력과 주술적 힘을 추구했다. 장자 내편 제2편 '제물론(齊物論)'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제물론의 핵심은 "이것과 저것의 경계를 허물고, 사물을 하나의 고정된 잣대로 시비(是非)를 가리지 말라"는 것이다. 피카소가 한 화면에 여러 각도의 시선을 공존시킨 '다시점'은,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은 하나의 관점은 없다"는 장자의 제물론적 세계관을 캔버스 위에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과 같다.
장자는 아름다움과 추함 역시 인간이 만든 상대적인 편견일 뿐이라고 했다. 피카소가 서양 미학의 기준에서 추하고 기괴한 아프리카 가면에 매료되어 전통적 미의 기준을 파괴한 것은, 인간의 인위적인 분별심을 깨부수고자 했던 장자의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이 작품이 처음 완성되었을 때, 피카소의 동료 예술가들과 평론가들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피카소가 미쳤다", "이건 예술이 아니라 밧줄을 먹고 석유를 마신 것 같다"며 혹평했다. 하지만 이 파괴적인 시도가 있었기에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 브라크(Georges Braque, 1882-1963)등 동시대 화가들이 자극을 받아 현대 미술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
<莊子>다시 읽는 원전 장자. 89쪽. 안동림 역주. 1993. 현암사
<莊子>다시 읽는 원전 장자. 91쪽. 안동림 역주. 1993. 현암사
장자는 <양생주> 편에서 소를 잡는 포정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도(道)를 설명한다. 포정의 칼날이 소의 복잡한 뼈와 살 사이 빈틈을 따라 막힘없이 흘러가듯, 예술가 역시 세상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부딪히지 않고 본질의 틈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존재다. 피카소가 거침없는 선 하나로 대상을 해체하고 재조합했던 창작의 순간은, 포정이 칼을 들어 소를 해체하던 신화적 경지와 완벽하게 닮아 있다.
소를 잡는 포정의 칼날(신들린 기술)과 피카소의 거침없는 붓질(직관적 창조)이 같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포정이 "눈이 아니라 신기(神氣)로 소를 대한다"고 한 것처럼, 피카소의 여러 인터뷰를 종합해보면 그는 "나는 보는 것을 그리지 않고 생각하는 것을 그린다"고 말하였다. 두 거장 모두 감각적 표상을 넘어 본질을 꿰뚫는 직관을 사용했음을 비교한다. 기술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곧 삶의 도(道)가 되는 경지에서 두 인물이 만난다. 시공간을 초월한 만남이다.
피카소의 그림이 내 취향은 아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면까지 다 보여주려고 했던 그의 사상은 존경한다.
장자 사상을 조금 알게 된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다. 또 그후 20여년쯤 흘렀을까, 미술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 나는 피카소와 장자사상을 연결하고 싶었다. 참 어려운 일이라 자꾸만 뒤로 미루어왔다.
장자에 대한 이해도 많이 부족하고, 피카소를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이 둘을 연결하는 글을 쓴다는 것이 쉬울리가 있겠는가. 제대로 쓸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끝내 못쓰고 죽을 것같아서 편안한 마음으로(이것 또한 동양사상일까?), 머리 쥐어짜지 않고 가볍게 쓰기로 했다. 이 주제는 혹시 내게 여력이 있다면 제대로 잘 쓸 글목록중에 하나다.
나의 몇 가지 글목록... 이건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