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인데, 한국을 잘 몰랐다
저는 한국 문화예술이 무료나 저가로 기획·제작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이 있습니다. 수십 년 전 태국에 살고 있을 때, 휴가 기간 중 한국에 잠깐 들어와 한정된 시간 동안 아이를 데리고 체험을 열심히 다녔는데, 한국적 체험의 퀄리티가 너무 낮고 스토리 맥락이 부족하거나 한정된 예산에 맞춰서 만든 것 같은 느낌이 많았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작은 것 하나에도 의미를 담는 섬세한 미적 감각이 있었는데, 현대의 우리는 그에 못 미치는 것 같았죠. 어떤 현대 공예가가 만든 것보다 박물관 안에 있는 고미술이 더 아름다워 보였어요. 기술은 분명 더 발달했을 텐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옛 선조들처럼 그렇게 만들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한국인이지만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서 더 알고 싶었는데, 한국적인 것을 제대로 배우려면 진입 장벽이 너무 높고… 너무 비싸고, 멀리 가야 하고… 너무 비효율적인 것 같았어요. 한국인이 한국적인 것을 배우려는데 왜 이렇게 어렵지? 시골에 사는 분들은 그런 걸 왜 그 돈을 주고 배우냐고 하고… 서양의 발레나 뮤지컬은 20~30만 원을 주고 가서 봐도, 국악은 무료라도 안 보러 가죠.
그래서 그동안 3~4년 동안 제가 직접 만들어 보았어요.
기획하고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입장료가 더 비싸져야 마땅한데… 오는 사람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것 같고… '이 비용을 다 지불해야 하나…' 그러다 보니 지인 초대로 근근이 이어지고, 수익은 발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사이에서 기획자는 늘 딜레마에 빠져 '이 돈을 다 받아도 되나' 눈치 보고… 손해 보더라도 사람들이 많이 올 수 있게 하려고 늘 손해 보고… 바쁜 와중에도 매일 이른 아침 눈을 부릅뜨고 지원 사업을 알아봐야 하고, 과중한 서류 작업이 밀려 있는 현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해 보면 좋을 경험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이 굴레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정말 없는 걸까요?
한국 문화가 제값을 받는 구조를 만들고 싶습니다.
한국문화예술 체험은 '저렴하거나 무료여야 한다'는 인식과 지원금 의존 구조 때문에 한정된 예산에 맞춰 제작되고, 그 결과 품질이 낮아져 제대로 한국 문화를 알고 싶은 사람들은 만족할 만한 경험을 얻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반면 깊이 있는 경험은 비싸고, 멀고, 진입장벽이 높은 편입니다. 창작자는 제값을 받지 못해 지속가능성을 잃고, 향유자는 한국 문화의 진짜 가치를 만나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보고 싶습니다.
열두달(주)은 짧은 시간에 한 곳에서 깊이 있게 경험할 수 있는 고품질 한국문화예술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값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관객(해외 거주 한인 가정, 외국인, 기업)의 수익을 일반 관객 프로그램에 재투자하는 구조로, 한국문화예술이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는 생태계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후원 구조의 차이: 조선의 뛰어난 공예품 상당수는 왕실과 관청 소속 장인(경공장)이 최고급 재료와 넉넉한 시간을 보장받으며 만든 것이었어요. 비용보다 완성도가 우선인 구조였죠. 지금의 무료·저가 체험은 대개 지자체 단년도 예산, 최저가 입찰 위탁, "참여 인원 몇 명"이라는 성과지표로 굴러갑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스토리와 맥락을 설계할 여유가 거의 없어요.
전승의 단절: 일제강점기, 전쟁,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며 도제식으로 이어지던 손기술과 "왜 이렇게 만드는지"에 대한 감각이 많이 끊겼습니다. 기술이 발달해도 옛 방식이 어려운 이유는 도구가 아니라 이 축적된 경험과 시간 때문이에요.
문화에 제값을 치르지 않는 인식이 결국 만드는 사람에게 시간과 대가를 주지 못하고, 그게 퀄리티로 돌아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한편 요즘은 국립중앙박물관 굿즈가 품절될 만큼 인기를 끌고, 전통을 깊이 공부한 젊은 공예가들이 제값을 받는 브랜드를 만드는 흐름도 생겨서, 제가 태국에 있던 그 시절과는 분명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갖고 변화하는 속도보다 우리의 소중한 것이 사라지고 있는 속도가 더 빠른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것에서 멈추지 말고 오히려 한 단계 더 들어가서, 왜 이러한 문제가 생겼는지 그 원인을 한번 생각해 보고 이야기 나눠보고 싶어졌습니다. 왜 한국문화예술 경험은 저렴하거나 무료여야 한다는 인식이 형성되었는지, 왜 지원금에 의존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 구조가 왜 콘텐츠의 품질과 창작자의 지속가능성까지 연결되었는지를 관찰해보려고 합니다.
해결방안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우리가 해결하려는 문제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가 먼저 명확해져야 하는 것 같아서 저부터 객관적인 관점으로 다시 바라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국가가 첫 번째 후원자가 되었고, 그 목적이 '시장'이 아니라 '보존'과 '복지'였습니다. 1960년대 문화재보호법과 무형문화재 제도 이후 전통문화는 "사라지지 않게 국가가 지키는 것"으로 자리 잡았어요. 2000년대 이후에는 문화향유권, 문화복지라는 틀이 더해지면서 전통문화는 "국민 누구나 누려야 할 공공재"가 되었고요. 방향 자체는 옳았지만, 결과적으로 전통문화는 돈을 내고 사는 상품이 아니라 공공이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라는 이미지가 굳어졌습니다. 발레나 뮤지컬은 처음부터 민간 시장에서 티켓을 팔며 자리 잡았기 때문에 "원래 돈 내고 보는 것"이라는 기준점이 다르게 형성된 거죠.
가격이 품질의 신호로 작동합니다. 문화 체험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경험재'라서, 직접 해보기 전에는 품질을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가격을 품질의 대리 지표로 씁니다. 무료가 많으면 "무료일 만한 수준"이라는 인상이 생기고, 그 인상 때문에 다시 돈을 안 내려 하는 순환이 생겨요. "국악은 무료라도 안 간다"는 말씀은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 신호 효과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근대화가 '전통 = 낡은 것, 서양 = 세련된 것'이라는 위계를 남겼습니다.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근대화를 겪으면서 전통은 극복하거나 벗어나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 시기가 길었어요. 시골 어르신들이 "그걸 왜 돈 주고 배우냐"고 하시는 것도, 그분들에게는 그게 일상의 기억이지 교양이나 예술로 인식되지 않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체험'이라는 형식 자체가 기대치를 낮췄습니다. 학교 현장학습, 관광지의 한복 입어보기, 1~2시간짜리 만들기 키트처럼 아이 대상, 단시간, 저비용 형식이 '한국 문화 체험'의 기본값이 되었어요. 사람들 머릿속에서 이 카테고리의 가격대가 이미 정해져 버린 셈입니다.
수요가 약한 상태에서 공급을 유지하려면 공공 재원밖에 없었습니다. 민간 수요가 충분히 자라지 않은 분야에서 국가가 떠받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에요. 문제는 이게 일시적 마중물이 아니라 영구적인 구조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공공 무료 프로그램이 민간 유료 시장을 밀어냅니다. 같은 동네에서 비슷해 보이는 체험이 무료로 제공되면, 민간 기획자가 제값을 받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민간도 지원사업에 들어가게 되고, 지원사업 안에서는 다시 무료나 저가로 운영하게 되죠. 우리가 "매일 아침 지원사업 공고를 찾는" 현실이 바로 이 구조의 결과로 보입니다. 지원 제도의 설계 방식이 품질보다 규모를 보상합니다. 단년도 예산, 최저가 입찰, 참여 인원 중심의 성과지표는 "얼마나 깊었나"보다 "몇 명이 왔나"를 묻습니다. 스토리와 맥락을 설계하는 데 드는 시간은 서류에 잘 드러나지 않으니, 합리적인 기획자일수록 그 부분을 줄이게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여기서 고리가 완성됩니다. 낮은 가격 기대 → 한정된 예산 → 기획·연구·리허설 시간 부족 → 평범한 경험 → "역시 이 정도구나"라는 인식 강화 → 다시 낮은 가격 기대. 경제학에서 '레몬 시장'이라 부르는 현상과 비슷해서, 품질을 구별하기 어려운 시장에서는 좋은 공급자가 제값을 못 받고 떠나고 평균 품질이 계속 내려갑니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제값을 못 받으니 다음 작업에 투자할 여력이 없고, 결국 장인이 오래 한 가지에 몰두해야 쌓이는 깊이가 생기지 않습니다. 말씀하신 전승의 단절도 이 지점과 연결돼요. 도제식 전승은 결국 "배우는 동안 먹고살 수 있는 구조"가 있어야 가능한데, 그 구조가 무너진 겁니다.
원인 분석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반론에도 답할 수 있어야 해서, 몇 가지 짚어볼게요.
박물관 고미술이 현대 공예보다 아름다워 보이는 데에는 '생존자 편향'도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박물관에 남은 것은 당대 최고 수준의 작품 중에서도 수백 년을 살아남아 선별된 것들이고, 당시에도 평범하거나 조악한 물건은 훨씬 많았을 거예요. 그러니 비교 대상은 "선조 전체 vs 현대 전체"가 아니라 "당대 최고 수준을 만들던 조건 vs 지금의 조건"이 되어야 논리가 더 단단해집니다. 경공장 이야기가 바로 그 조건의 차이를 보여주는 좋은 근거입니다.
"싸다 = 품질이 낮다"가 항상 성립하지는 않습니다. 국립국악원 공연처럼 가격은 낮지만 수준이 높은 사례도 있어요.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가격 자체라기보다 "공공이 충분한 예산을 들여 직접 만드는 소수의 고품질 프로그램"과 "최저가로 위탁된 다수의 저품질 프로그램"이 섞여서, 관객이 둘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데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보면 해결 방향도 '가격 올리기'에서 '품질이 구별되게 만들기'로 조금 이동하게 되죠.
마지막으로 해외 거주 한인 가정, 외국인, 기업이 정말 제값을 낼 의사가 있는지도 가설로 두고 검증해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 세 집단이 교차 보조 모델의 핵심인 만큼, 지난 3~4년간 실제로 누가 돈을 냈고 누가 망설였는지 데이터가 있다면 그게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향유실태조사나 예술인 실태조사 같은 공공 자료도 인식 부분을 객관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찾아보려합니다.
정리하면, 저는 근본 원인을 "전통문화가 시장이 아니라 보존과 복지의 틀 안에서만 자라면서, 품질을 구별하고 보상하는 장치가 만들어지지 못한 것"으로 요약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