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을 가득 채운,
혹은 뜨거운 물을 반쯤 채운 잔을 준비하고
그라인더에서 위이이잉 하며 갈려나오는
고운 커피 가루를 받는다.
탬퍼 손잡이로 톡톡 두드린 후
다시 평평하게 만들고
몸의 무게를 실어 꾸욱 누른다.
달궈진 그룹헤드에 걸어
시계 반대방향으로 힘껏 돌린 다음, 추출 버튼을 누른다.
제자리에 틀림없이 잘 앉았다면
가느다란 두 줄기의 커피가 양쪽으로 졸졸 흘러나오겠지.
혹시라도 콸콸 나온다면
균형이 맞지 않는 어느 한 쪽으로
물이 급하게 빠져나가고 있는 것
그러면 커피가 가진 여러 맛 가운데
일부밖에 우러나지 못한다.
떨어지는 에스프레소의 무게를 재는 저울의 숫자가 올라갈 때
입으로 함께 세어본다.
10초.. 15초.. 20초..
원하는 맛들이 충분히 우러 나왔을 시점에
텁텁하고 쓴맛까지 다 나오지 않게, 멈춘다.
준비한 잔에 붓고 코로 향을 맡아보고,
입술에 닿는 감촉을 확인하며
천천히 맛을 본다.
가지고 있는 모든 면이 충분히 표현되고 있는지
서로 다투거나 억누르고 있지는 않은지
화사한 느낌을 주는지
희고 아름다운 꽃,
빛나는 열매였던 날들을 뒤로한 채
옷 벗겨지고, 볶아져 곱게 갈려나온 너
거대한 압력과 뜨거운 물 속에 녹아나온
향긋하고 부드러운 생명을 마시며
이 삶에도 점점 가해지고 있는
차갑고 무거운 압력을 본다.
그것이 머리 위에 툭, 떨어지는
무게를 잠자코 받아들인다.
불필요한 움직임을 줄이고
있는 그대로 맛있게 압착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