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접한 아빠소식

by은은한 온도


우편이 하나 도착했다. 내 이름 석자가 정확히 적혀있는 봉투를 보며 의아했다. 하던 일을 마무리하자마자 봉투를 뜯어봤다.



제목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부양의무자 조사 관련 자료제출 요청

[신청이 김00]



아빠였다.



아빠는 늘 이런 식이다. 느닷없이 갑자기 소식을 전해온다. 자신이 아직 여기 있다고 소리라도 치듯이 잊어버릴만하면 꼭 잔잔한 일상에 돌을 던지고 사라진다.



우편 속 4번 항목의 굵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가족관계 해체인 경우, 소명서(붙임 2)를 제출



마음이 무거웠다. 씁쓸하기도 했다. 한국어로 딱 표현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감정이 가득 얽혔다.



나참. 차라리 보란 듯이 잘 살지. 이런 거 신청은 왜 해서.



동생에게 연락을 넣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동생은 '언젠가 이런 거 올 줄 알았잖아' 했고, 엄마는 바로 옆도시에 살아 무섭다는 반응을 했다.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데.... 자그마치 27년이나 흘렀는데도 엄마에게 아빠는 여전히 두려운 사람이었다.



나도 놀랬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살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혹시 오며 가며 우리 애들을 봤을까 봐 걱정부터 들었다. 그런 걱정이 가장 먼저 들었다는 사실에 이내 슬퍼졌다. 더불어 서류를 보며 자꾸만 떠오르는 의문 때문에 아팠다. 진짜 생계가 막역해서 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의도가 있는 건지.



나참. 아빠는 도대체 어떻게 살았길래. 딸이 이런 생각이 먼저 들게 하나.



담당 주무관님과 통화를 했다. 동봉되었던 나머지 서류들은 다 안 보내고 되고, 마지막 장인 가족관계 해체 및 미부양 소명서만 회신해 달라고 했다. 다른 말들은 다 그렇게 저렇게 들었는데 유독 나에게 찌릿 다가오는 말이 있었다.



"신청자가 가족관계 단절이라고 주장을 해서요."



통화를 끊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왜 눈물이 흐르는지 나조차 이유를 모르겠는 눈물이 그냥 뺨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아빠와의 마지막 통화 생각이 났다. 자신이 암에 걸려 곧 죽는다고 했다. 신기했다. 아빠의 입에서 나오는 그 어떤 말에서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는 나도 막장이라 죽어간다고 말하는 아빠에게 비속어를 섞어가며 들이받았다. 아빠 또한 딸한테 하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욕을 퍼부었다. 호적에서 판다고 했다. 그러라고 했다. 아빠는 분노의 치를 떨다가 뚝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 같은 딸년은 필요 없다고 했다. 나도, 아빠 같은 아빠 필요 없다.



한때, 진심으로 성을 바꿀까 생각해 본 적 있다. 나한테 남겨져있는 아빠의 모든 흔적을 지우고 싶어서. 피를 다 뽑을 수는 없으니까 성이라도 바꿔보자 싶어서. 그런데 고민만 했다. 실제로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일이 번거롭다는 핑계를 대며 끝내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껏 아빠의 성을 쓰고 있다.



아빠는 알까? 그래도 내가 아빠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아빠는 나를 원망하고 억울해하겠지만 나는 그 정도는 아니라는 걸.



한참을 울다 아빠 나이를 계산해 봤다. 70이었다. 어느새 일흔이 되어버린 야속한 시간 속에서 다시 한번 눈물이 흘렀다.



아빠는 가족관계 단절을 주장하며 슬펐을까? 화가 났을까? 억울했을까? 답답했을까? 아빠는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며 후회할까? 후회한다고 해도 슬프고, 후회 안 한다고 해도 슬프다.



어쩌면 다음에 들을 아빠소식은 연고의 고 일지도 모르겠다. 그때 또 어떤 슬픔이 찾아올지. 어떤 종류의 눈물이 흐를지. 아마도 우리 딸들은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의 아빠의 모습을 보게 되겠지.



부디 아빠가 무사히 슬롯보장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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