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 고르기 취향

by강민경

동네에는 중고서점이 하나 있다. 바카라이 종류별로 잔뜩 있어 어느 곳으로 눈을 돌려도 바카라장에 꽂힌 바카라을 볼 수 있고, 넓은 테이블에서는 바카라을 쌓아두고 봐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다. 바카라에 둘러싸여 어떤 걸 읽을까 고민하는 그 풍족함이 좋아 가끔 들르고는 한다. 뷔페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막상 떠오르질 않아 쓸데없이 배부르지, 그건 중고서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는 바카라이 너무 많아 내가 어떤 류의 글을 좋아하는지를 새까맣게 까먹었다. 그럼에도 자주 들르다보니, 온통 바카라 뿐인 서점에서도 (나에게) 좋은 바카라을 고르는 기준이 생겼다. 그리고 그 기준은 세월에 따라 바뀌고 있다. 오늘 1시부터 5시까지 머물며 살 바카라을 고르고, 읽고, 또 다시 고르다보니 바카라을 고르는 기준이 꽤 바뀌었다는 걸 실감했고, 그 때문에 이 기록을 남기고 싶어졌다.


내 최초의 독서는 위인전, 전래동화지만 내 최초의 바카라 고르기는 ‘바카라바카라바카라 바카라을 읽읍시다’부터 시작됐다. ‘바카라바카라바카라 바카라을 읽읍시다’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바카라은 과자는 안 사주었어도 바카라 사주는 것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았던 부모에게 당당하게 사달라고 할 수 있었다.(물론 만화바카라도 많이 읽었는데 만화바카라은 몰래몰래, 문제집비를 쌔벼 빌려 읽었다.) 그 프로그램이 종영된 이후에는 부모가 인정할만한 바카라을 골라야 하니 너무 선정적이지 않고, 슬롯에 너무 대항하지 않으며, 교육적인 바카라이 기준이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는 잘 알려진 작가를 기준으로 바카라을 골랐다. 연애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 당시 유행이었던 터라 ’나도 그런 소설 좋아하겠지‘ 하며 사곤 했다. 그러나 그 소설들이 내 취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서는, 사랑과 연애가 제외된 바카라을 고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그런 바카라은 흔치 않고, 그래서 눈을 돌려 본 바카라이 ’맨큐의 경제학‘이었다. 메모해가며 읽었던 그 바카라의 내용은 지금은 기억나질 않지만, 그 특유의 딱딱하고 고루한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 류의 문장을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종류의 바카라이 ’철학‘이었다. 다만 철학은 고루한 문장 하나하나에 내 생각을 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상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나로서는 읽기 쉬웠다. 하지만 그 철학 바카라을 고르는 기준도 ’유명 작가, 알려진 작가‘를 기준이었기에 곧 한계가 왔다. 그 때부터였나, 베스트셀러 칸은 무조건 지나쳐버렸다. 그때부터 바카라방을 가는 것이 오히려 더 즐거워졌던 것 같다. 눈으로 훑지 않고 직접 만져 페이지를 넘기는 그 행위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바카라을 많이 읽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름 문장을 보고 내 취향의 글인지 아닌지를 감각할 줄은 안다.나름 바카라을 잘 고르는 편이라고 생각도 들었다. 바카라방에 드나들고 취향이라는 것을 타는 시점이 되다보니 오히려 바카라방에서 바카라을 사는 일이 덜해졌었다. 인스타그램에 본 문장들을 보고서는 온라인 장바구니에 바카라을 담아두는 일이 오히려 더 익숙해졌다. 그러다 새롭게 친해진 친구들 덕에 바카라 고르는 방식이 흔들렸다. 이 친구들은 서점에 들르면 무조건 바카라 한 권은 사들고 나온다. 바카라을 들고 망설이고 있으면 다가와 “사요”라고 꼬득인다. 그들 덕에 요즘은 마음에 드는 제목, 디자인의 바카라, 친구들이 추천해준 바카라, 유튜브에서의 설명이 마음에 든 바카라을 그냥 사본다. 문장을 먼저 읽어 판단하는 일 없이 무조건 사보는 것이다. 이런 바카라 고르는 방식은 나의 편협한 독서 습관과 취향을 넓혀주었다. 첫 페이지는 마음에 안 들어도 계속 읽다보니 마음에 들어 단숨에 읽고서는 좋아하게 된 작가가 생기기도 했고, 끝까지 잘 안 읽히는 문장을 계속해서 잡고 읽어보며 집중력의 영역을 새로 발견하기도 했다.


오늘은 피하기만 했던 소설 바카라 한 권을 손에 들었다. 아직까지도 소설류는 마음에 닿지 않아 구매 전 늘 망설이는데, 오늘 짚어든 소설도 혹시나 싶어 테이블에서 미리 읽어보았다. 마음에 조금이라도 들지 않으면 내려놓으려고. 첫 페이지는 역시나 아닌가 싶다가, 10페이지쯤 되어서는 바카라을 얼른 덮었다. 사야될 바카라이었다. 소설을 안 좋아하고 말고 따질 것 없이 그냥 이 작가의 문체가 너무 좋다. 지금 더 읽으면 단숨에 읽어버리게 될 것이고, 어차피 살 바카라인데 여기서 다 읽으면 아깝지. 그러고서는 몇 시간을 더 뭉개어 앉아있다가 다시 바카라을 몇 권 더 골라왔다. 배는 고픈데, 이상하게 나가기 싫다. 곧 당 떨어져서 손이 떨릴 것이 예감되지만, 그럼에도 자꾸만 떠나기 아쉽다. 배는 고파도 정신은 고프지 않고, 정신이 부른 이 시간이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