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의 역사: 살라망카에서 관타나모까지』(그림씨,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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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0년, 스페인의 바야돌리드 궁전에서는 역사적인 논쟁이 펼쳐진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스페인은 식민화 과정에서 수많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노예로 삼았다. 이 잔혹한 식민통치에 스페인 내부에서조차 비판적 의견이 세를 얻을 정도였다. 학살과 노예화로 인해 식민지의 노동력이 격감하면서, 스페인의 경제를 뒷받침할 식민지의 경제력이 유지되기 어려울 수준이 되자, 스페인 왕 카를로스 1세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지위와 권리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위한 위원회를 소집한다. 이것이 '바야돌리드 논쟁'이다.
히네스 데 세풀베다 신부는 원주민들이 이성이 없고, 문명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야만으로부터 구해내고 그들이 행하는 야만의 희생자를 구제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강제력을 동원해서라도 그들을 개종시키고, 문명의 세례를 받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그간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화하기 위한 정당화의 논리 그 자체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주장을 출간하기 위해선 도미니코 수도회의 허가가 필요했다는 점이다. 도미니코 수도회에 소속된 사제들은 그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바르토롤메 데 라스 카사스는 도미니코 수도회의 신부였다. 그는 얼마 전 멕시코 치아파스의 초대 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어, 식민 당국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착취하고 학살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터였다. 과거 아메리카 대륙에서 서품되었을 때, 라스 카사스는 식민 당국의 잔혹한 통치를 고발하는 편지를 교황청에 보낸 바 있다. 당시 교황 바울로 3세는 칙서 『하느님의 초월성(Sublimis Dei)』을 통해, 원주민들을 교육과 설득을 통해서 개종시켜야 한다는 답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바야돌리드 논쟁에 세풀베다에 맞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지위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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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논쟁의 맥락¹은 잘 정리된 논문의 몫으로 넘기고, 당장은 그 결과에 집중해보자. 교황의 특사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지성을 갖추고 기독교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을 노예로 삼거나 가혹한 방식으로 통치해선 안된다고 정리했다. 라스 카사스의 손을 들어준 것일까? 논쟁이 끝난 후, 두 사람은 서로 자신이 승리했다고 말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대립의 외양 아래엔 서로가 은밀하게 동의하는 공통의 토양이 있었기 때문이다. 라스 카사스도 원주민들을 '개종'시켜 문명의 일부로 포섭해야 한다는 점엔 동의했다. 강제력을 적용하느냐의 여부만 달랐을 뿐, 아메리카 대륙의 유산은 '문명'으로 여겨지지 않았고, 아메리카 원주민들 역시 '인간'으로서 제대로 여겨지지 않았다. 총과 칼, 혹은 경전이라는 수단을 두고 싸웠을 뿐, 우리와 그들이라는 구분은 존재했다.
'만민법', 즉 인간이라면 누구나 적용되어야 하는 법칙을 천명함으로서 라스 카사스는 세계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의 가능성을 열었지만, 실제로는 우리와 그들이라는 정치적 구분선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국제법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긴장은 법의 바닥에 내재하고 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평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지만, 누가 인간이 될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건 현실 정치의 논리에 달려 있다. 보편적 언어의 외양 아래에 '우리' 바깥의 세계를 향한 폭력이 처음부터 배태되어 있었다. 보편적 권리는 늘 식민 지배와 노예 무역, 강제 노동과 착취라는 현실에 의해 비웃음을 살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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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그들의 경계선은 국제법의 언어 위에서 늘 밀고 당겨지기를 반복했다. 국제법은 처음부터 '전장'이었다. 긍정적인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자면, 국제법의 역사는 비록 부침이 있기는 해도 우리의 경계를 점차 확장해온 투쟁의 과정이었다. 물론 조금 냉소적으로 바라보자면 이렇게 되물을 수 있다. 그 '우리'가 대체 누구인가? 서구 문명이 생각하는 인간일텐데, 그말인 즉슨 이 경계가 확장되어 왔다는 건 '비서구 문명도 서구 문명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어떤 끌어올려짐의 역사라는 게 아닌가? 이런 서사 속에선 주체는 늘 서구 문명의 몫이고, 비서구 문명은 그에 대한 반응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물론 마냥 냉소적으로만 볼 건 아니다. 분명히 국제법은 강자의 언어였다. 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인, 아시아인, 가난한 사람들, 여성, 장애인 등에겐 적용되는 법이 아니었다. 문명은 늘 소수의 것이었다. 특정한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국가들 사이에서만 공존을 보장하고, 이익을 분배하는 국제법은 늘 말이 현실을 초과했다. 이 '초과'는 약자의 기회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보편의 원칙을 편파적으로 적용하려 시도할때, 피식민국가들은 이 보편의 원칙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라는 압력으로 반응했다. 국제법은 제국주의자들의 행위를 제약하는 보편 윤리의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 미약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죽음이 이 초과하는 말에 힘을 보탰다. 식민지에서 흘린 피식민지 인민들의 피, 대규모 전쟁 과정에서 식민 모국의 해방을 위해 흘린 피식민지 군인의 피, 다른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로 죽어야 했던 수백만명의 목숨이, 끔찍한 혼란을 종식시키기 위한 협상을 만들어내고 국제법의 필요성을 각인시켰다. 다른 방법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지만, 늘 강자들은 피와 죽음 이후에야 움직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였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국제법이 명목상으로나마 이만한 힘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인민의 피와 분노 덕분이었다. 강대국의 언어로 시작한 국제법이, 오늘날 전복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보편의 언어로 기능할 수 있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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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의 역사: 살라망카에서 관타나모까지』(올리비에 코르텐, 피에르 클랭 글, 제라르 브도레 그림, 이수진 옮김, 옥창준 감수, 그림씨, 2026)를 접하게 됐다. 이 바카라은 그래픽 노블의 형식을 빌려, 국제법의 씨앗을 심은 살라망카 학파의 바야돌리드 논쟁에서부터 오늘날 국제법의 한계와 파국을 상징하는 관타나모 교도소에 이르기까지, 국제법의 이상과 발전 그리고 한계를 찬찬히 훑는다. 글의 깊이가 전혀 얕지 않지만, 국제법에 대해 막연한 의구심을 품거나 관심을 보였을 보통의 독자들을 향해 친절하게 말을 건다.
문명의 경계와 문명 바깥에 대한 문명의 태도를 결정하는 언어로서 국제법은 그 표현과 달리 늘 바깥 세계에 대한 '개입'과 '폭력'의 근거였다. 국제법의 밑바닥에 흐르는 이 치유 불가능해보이는 균열을 넘어서, 국제법을 그 표현에 걸맞게 적용할 수 있도록 조직과 규범을 갱신하는 게 가능할까? 이 바카라은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적어도 나보다는 더 높게 치는 듯 보인다. 이 바카라의 마지막에 소개된 사례처럼 국제법은 때로 약자가 강자의 언어를 빌려 강자의 행동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렇게 갱신해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바카라에서 반복되는 수많은 절망적 사건들을 감싸고 있다. 어제보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이 '만민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올 수 있다는 믿음이, 이 바카라을 관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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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명의 기자가 팔레스타인에서 목숨을 잃어가는 때에, 국제법은 필요없다는 무도한 자가 세계 최강대국의 지도자로 군림하는 때에, '국제법'을 잉태한 '만민법'의 이상은 더욱 소중해진다. 우리는 실정법이 이상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냉소가 아니라, 그 이상에 걸맞는 실질적인 조치들이 이루어지기를 요구해야 한다. 만민법의 적용을 받는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선을 끊임없이 밀어붙여야 한다. 국제법이 단순한 조문이나 국가간의 계약을 넘어서서 인권, 민주주의, 탈식민지주의 등 보편적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운동하고 저항하는 것, 그리하여 국제법이라는 영역에서 투쟁을 지속해나가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국제법이 휴지조각이 되는 시대에 『국제법의 역사: 살라망카에서 관타나모까지』를 읽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이고 냉소하는 데에만 머물지 않겠다는 일종의 다짐과 같다. 국제법의 이상을 '문자 그대로' 실현하려는 그 전복적인 행위들을 수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들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탐색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달리 될 수 있었고 / 달리 될 수 있다면,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힘은 어떤 것이었는가. 또한 그 반대로 가능성은 어떻게 침묵당하고 가능성으로서만 남았는가. 손쉽게 희망하고 손쉽게 절망하기보다 이 전장의 시작과 끝을 더듬어보며 무엇이 남았는지 따져볼 때다.
전쟁광들이 인류의 존속을 걸고 무모한 내기를 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이 언어를 우리의 것으로서 만들 수 있는 작은 가능성 - 그리고 유일한 가능성 - 을 절박하게 모색할 수밖에 없다. 지구의 편에서, 인류의 편에서 국제법은 희미한 희망일 뿐이지만, 때로는 작은 가능성에 기대야만 하는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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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카라의 장점은 진보와 보편 윤리에 대한 순진한 믿음와 국제정치에 대한 냉소적 태도 사이의 어떤 '접점'을 찾아나가는 데 있다. 그래픽 노블의 두 화자인 남편과 아내는 각각의 태도를 상징하는데, 이 둘은 바카라의 마지막에 다다르면 서로를 닮아 새로운 자리로 이동한다. 남편은 믿음을 끊임없이 붕괴시키는 사건들의 연쇄 속에서 얼마간 냉소적으로 변한다면, 아내는 법이 늘 강자의 언어라 믿었지만 끝내 약자가 전유할 수 있는 근거로서도 작용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우리는 이 부부 '싸움'의 한 복판에서, 국제법이라는 전장에서 벌어지는 싸움의 형세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어느 편에 서야 할 것인지 결정할 수도 있다. 그러한 입장을 정리하기 위한 입문서로서 이 바카라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국제법을 믿든, 믿지 않든 국제법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다듬어졌으며 변화되어 왔는지에 대한 공부부터 시작하는 게 먼저일텐데, 이 바카라이 그 첫 입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전문가의 언어로 남아 있던 '국제법'을 일반 눈높이로 데려오는 바카라³이 그리 흔한가. 싸움의 무기를 쥐여주는 바카라이 얼마나 귀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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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전복의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데에 아주 큰 희망을 걸지 않는다. 그것조차 구조가 만들어내는 작은 틈인지도 모른다. 구조가 예상 못한 균열이라기보다, 그 정도의 의도적 '오독'과 전복은 구조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산발적인 반란 시도들로 잦아들 것이라는 말이다. 문자 그대로 법을 해석하고, 거기서 어떤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만으로는, 체계적으로 비대칭적 권력관계를 재생산해내는 국제법이라는 장치를 전유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전복의 가능성만을 맛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무엇인가를 바꾸어내기 위해서 전복의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단서를 찾으려는 게 아닌가?
국제법이라는 게 새로운 해석만으로 정말로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면, 수백 명의 기자 동료들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무고하게 죽어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 아동들이 그들을 과녁으로 삼아 쏜 총알에 죽거나 불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수십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갔을 것이다. 인류가 저질러 온 비인도적인 범죄는 더 이상 반복되지 못했을 것이다.
국제법은 그 프로젝트의 목표를 늘 배신했고, 국제법으로 규제받는 국가는 언제나 약소국이거나 상황상 코너에 몰린 강대국이었다. 비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자가 강대국의 비호를 받는다면, 그들은 늘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되지만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법정에 서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전쟁에서 패배하거나, 강대국들의 관심 바깥에 있는 범죄자라면, 죽어서라도 법정에 불려나올 것이다.
국제법이 비대칭적 권력관계를 재생산하고 있는 구조에 대한 고민 - 예컨대 무력한 총회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안보리, 그리고 안보리의 의사결정의 특수성으로 인해 중요한 문제는 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한 채 범죄가 그대로 진행되도록 내버려두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타파할 것인가? - 이 따라붙지 않는 한, '초과'는 늘 산발적인 시도들이 될 뿐이다. 역사 이해 다음의 단계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인데.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어떻게 가야 한다는 말인가?)
한편으로 우리는 비-서구의 입장에서, 서구라는 이름의 보편이 얼마나 특수한 것인지 그 토대에 질문을 던지고, 보편의 경계를 넓히거나 보편의 이름에 지울 수 없는 특수성의 흔적을 남겨놓는 방식으로 이 전장에 대응하고 있다. 바카라에서처럼 국제법의 기나긴 역사를 서양 문명이라는 보편의 이름을 확장해 간 투쟁의 역사로 볼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법을 서구와 비-서구 사이의 조응과 투쟁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특수한 것들의 역사로 만들어가는 역사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국제법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바도 달라질 것이다. 어쨌든 길잡이가 있어야 우리는 그 길을 가보고 후기를 남길 수 있는 것이니. 먼저 나선 이들의 뒤꽁무늬를 일단 잘 따라가보자.
주
1) 신정환, 「신대륙의 '정당한 전쟁'과 만민법 - 프란시스코 데 비토리아를 중심으로」, 《중남미연구》 제43권 1호, 2024년 2월 28일, 239-270쪽.
2) 생도맹그의 노예제를 끝장낸 '검은 나폴레옹' 투생 루베르튀르는 1789년 발발한 프랑스 혁명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보편의 언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그는 '프랑스 혁명 정신'을 프랑스 제국의 식민 지배를 끝내는 명분으로 삼았다. 물론, 혁명국가인 프랑스에게 흑인은 '자유, 평등, 박애'의 대상이 아니었다. 보편적 언어엔 경계가 없었지만, 적용될 수 있는 대상은 늘 특정한 인종, 국민, 민족에 한정되어 있었다.
3) 옥창준, 「그래픽노블로 본 국제법의 역사 - 올리비에 코르텐·피에르 클랭 지음, 제라르 브도레 그림, 『국제법의 역사:살라망카에서 관타나모까지』」, 《서양사연구》 제74권, 2026년, 289-290쪽.